'막말정치 vs 품격정치' 논란이 부끄럽다

최종편집시간 : 2017년 12월 17일 00:03:20
'막말정치 vs 품격정치' 논란이 부끄럽다
<칼럼>품격 지키는건 민주주의 사회 가장 중요한 덕목
경쟁해야할 당내 비주류를 적으로 돌리는 막말 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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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03 09:35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역시 여야 대치가 심화되니 또 ‘막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막말’의 원조는 현 여권이다. 그들은 서로 ‘사이다 발언’을 경쟁하며 국민들을 선동하곤 했다. 그게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역사의 방향을 돌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갑갑한 현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시원한 막말이 효험이 있었다. 막말에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역사속의 많은 혁명과 반란도 그랬다.

‘왕후장상의 피가 따로 있나?’라는 발찍한 발언은 왕조시대에 더할 수 없는 ‘막말’이었겠지만, 현대에서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는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꾸기 위한 정상적인 방법이 없을 때, 그래서 비정상적인 방법이 꼭 필요할 때 ‘막말’은 좋은 촉매제가 된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 된다. 역사적 방향과 맞기 때문이다. 지난해 탄핵정국도 그랬다.

탄핵정국에서야 그랬다지만, 그 전후의 상황에서 ‘막말’은 민심을 타락시킬 뿐이다. 교도소나 교실의 어두운 곳에서 욕 잘하는 사람이 일단 먹고 들어가듯, 세상은 막말에 농락당하고 있다. 건강한 사회는 막말을 걸러내고 힘 못쓰게 하며 사회질서를 유지하지만, 망해가는 사회에서는 막말하는 사람들이 주인행세를 한다.

과거 여권은 현직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인 전직 대통령을 ‘귀태’라며 조롱했다. 이를 주제로 국회에서 보기 민망한 그림전시회까지 개최했다. 그게 민주주의고 표현의 자유라고 했다. 당시 정부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끌려갔다.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고 ‘막말’인지 불분명했고 이를 판단할 잣대는 진영에 따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법적 잣대는 불비했고 이를 뒷받침할 공감대는 부족했다.

큰 틀에서 보면 그런 정도로 대처에 미숙해서 정권이 망가졌다. 재미를 본 세력들은 정권을 잡고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정부에서 승인한 사드배치를 막겠다고 주민을 선동하기 위해 춤을 추며 노래로 막말을 했다. 성주에 내려가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싫어~"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그 이후에 자신의 정부에서 발표한 실험결과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 마디 않고 지금까지 딴전이다. 한미FTA, 광우병, 천안함 등 수많은 괴담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탄핵정국에서 조차 ‘사이다’보다 ‘고구마’가 그 결실을 차지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당시 막말은 듣기엔 시원하지만, 미래를 맡기기에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답답하지만 영양가(설탕이 아닌 탄수화물)가 있어 보이는 이에게 미래를 맡겼던 것이리라. 그런데, 그 ‘사이다발언’을 일삼고 이에 편승하는 사람들이 계산서를 내세우며 전리품을 사적으로 나누자고 한다. 막말을 내려놓지 않고 협박하기도 한다. 정부를 협박하고 야당을 협박하고 국민을 협박한다.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막말논란은 보수진영에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앞장서는 분위기다. 야당에서는 요즘 정적에 대한 막말보다 당내 인사에 대한 막말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막말은 그 특성상 더욱 막가게 되어 있다. 상호간에 장군멍군을 거듭하며, 그 과정에서 더욱 자극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바퀴벌레’, ‘암덩어리’, ‘고름’ 등 듣기 민망한 발언이 난무한다. 보수진영의 막말은 홍준표 대표가 주도한다. 리더가 앞장서는 것은 보수진영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논란이 끝없이 이어지자 김태흠 최고위원이 “당내 갈등을 유발하고 듣기에 민망한 표현을 하시는데 말씀을 신중하게 하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공식회의에서 말했다. 다음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홍준표 대표에게 ‘대표로서 품격을 지켜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에 대한 홍 대표의 반응은 “나는 품격이 없다”며 이회창 전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품격으로 정치하는 게 아니다”고 맞섰다. 당연히 양진영의 지지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그 발언이 있었던 때가 지난달 29일이다. 10여일 전인 14일, 의총에서 이양수 의원과 ‘막말논쟁’을 벌이고. 뒤풀이에서 SNS를 자제하겠다고 약속한 이후의 일이다.

지금도 잠시 SNS를 자제하고 있으나 언제 다시 ‘막말’이 쏟아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원내대표 경선이 시작되는 시기고, 대표의 막말이 ‘비주류 연대’의 빌미가 될 수 있어 자제하는 것이겠지만, 경선 주자가 확정되고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다시 재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막말은 해서는 안되는가? 그렇다. 정치인은 갈등을 조정하며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직군이므로 적개심 같은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더욱이 선동을 해서도 안된다.

막말과 선동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적과 경쟁자를 잘 구별해서 해야 한다. 적에 대한 막말은 때에 따라서 필요하다. 공동의 적은 ‘우리’를 뭉치게 하기 때문이다. 경쟁자는 다르다 그들도 ‘우리’다. 동업자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적은 외적이다. 지금은 북한일 수 밖에 없다. 북한과 그의 동지가 아니라면 모두 우리 동지가 될 수 있다. 당연히 막말을 해서는 안된다. 적의 존재는 ‘우리’를 뭉치게 한다. 그 ‘우리’의 범위는 물론 대한민국의 국민 전체다. 여기에는 야당도 포함된다. 야당은 국내정치에서 경쟁자일 수는 있지만, 대통령의 적은 아니다. 오히려 역할을 잘하는 야당은 ‘성공한 정권’의 필수요소다.

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적은 여당이다. 당내 비주류는 경쟁자다. 좋은 경쟁자는 성공의 필수요건이다. 그들을 적으로 삼아 막말을 하는 것은 성공을 방해할 뿐 아니라 시스템을 파괴한다. 지금같이 허약하고 위기에 처한 야당은 더욱 그렇다.

막말을 최소화하고 품격을 지키는 것은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말할 필요 없는 덕목이다. 현재만을 사는 충동적인 사람은 막말을 거침없이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고 후손을 생각하는 지도자는 막말을 삼갈 것이다. 욕하기를 일삼는 가장이 있는 집에서 좋은 자식이 길러지긴 힘든 일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리더는 스스로 언행과 성품으로 국민을 이끌고 후손을 교화시키는 것이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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