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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주기와 돈받고 팔기' 뭐가 더 착한 일인가


입력 2017.12.02 08:41 수정 2017.12.02 21:26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사고 파는 것은 인간 번영의 중요한 수단

무상출산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분배는 재화의 빈곤 초래

북한 조선중앙TV가 4일 보도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3월16일 공장' 현지지도 모습. 트럭을 생산하는 이 공장에서 김 위원장은 현대적인 자동차공업의 창설을 독려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가 4일 보도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3월16일 공장' 현지지도 모습. 트럭을 생산하는 이 공장에서 김 위원장은 현대적인 자동차공업의 창설을 독려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연합뉴스

대학에 이따금 강의를 하러 가면 학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다.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거저 주는 것과 돈을 받고 파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착한 일이냐?”고 묻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기 전에 먼저 독자들께서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하실지 궁금하다. 아마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바로 개별 독자께서 세상을 보는 눈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재화가 늘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재화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경제학에서는 재화가 원하는 것보다 부족한 상황을 희소성이라고 부른다. 경제학은 희소한 재화를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라는 것이 중요한 연구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 주제에서 중요한 질문의 하나가 바로 ‘거저 주는 것’과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거저 주는 것이 돈을 받고 파는 것보다 착한 일이라고 인식한다. 왜냐하면 대가를 받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하리라고 말한다(물론 돈이 많아지게 되면 그 사람들이 진짜 그렇게 할지는 별개지만). 또한 세상에서는 크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도 하고 존경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거저 주는 행위를 자선이나 선행 등의 아주 아름다운 용어로 찬사하기도 한다.

거저 주는 것으로 20세기를 통해서 가장 존경을 받은 분이 마리아 테레사 수녀이다. 그녀가 미국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 때 많은 미국 의원들이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에 입맞춤을 하는 존경을 표했다. 아마 ‘세계의 황제’라고 일컬을만한 권력을 가졌다는 미국의 대통령들 중에도 이런 존경을 받은 사람이 없는 데 비하면 놀라운 일이다. 거저 주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착한 일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평생을 바쳐 빈민 구제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아름답고 고매한 사람이 그런 존경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고도 기꺼운 일이기도 하다.

반면 사람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가 원하는 물건을 흥정해서 파는 것은 착한 일이 아니거나 덜 착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대가를 받고 자신이 가진 물건을 남에게 양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거래 행위는 그래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만들어진 시장도 툭하면 사악한 존재로 몰려 폐쇄하거나 그 기능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세력들이 나타났고, 시장에서 거래 촉진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존경 받기보다는 야바위꾼과 유사한‘장사꾼’이라는 이름으로 천시되어 왔다. 대개 이들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행해 오는 동안 사회의 가장 아래쪽에 속하는 계급을 형성했고 그 발언권도 대단히 약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장사꾼’이라는 말은 시장 거래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해 온 기업가들과 그 종사자들을 폄하하는 말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재계에 스캔들이 생길 때마다 공개적으로 폄하하는 핵심 논지에는 이런 인식이 들어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소위 재벌을 포함하는 바로 이 ‘장사꾼’들이 세계적인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여 우리는 오늘날 그 과실을 만끽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소위 식자층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장사꾼’은 기업인과 기업을 보는 인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제대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철수와 영희 두 사람으로 구성된 아주 단순한 사회를 생각해 보자. 두 사람은 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철수가 일해서 물고기 다섯 마리를 잡았다. 이를 배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철수가 이 가운데 영희가 원하는 두 마리를 ‘거저 주는’ 것이다. 철수가 영희에게 이렇게 두 마리를 거저 준 것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착한 일을 한 것이다. 당연히 철수가 칭찬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가 가진 전체 재화는 철수가 잡아 온 다섯 마리 물고기뿐이다.

물론 영희가 이 시간에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그렇다. 다른 하나는 철수가 물고기를 영희에게 파는 것이다. 이럴 경우 영희는 놀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물고기를 사기 위해 일할 것이다. 영희가 사과 열 개를 채취했다고 하자. 영희는 철수에게 사과 여섯 개를 주고 물고기 두 마리를 샀다. 이럴 경우 이 사회는 사고파는 행위로 말미암아 물고기 다섯 마리에 더하여 사과 열 개가 추가로 생긴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의 인식은 철수가 대가를 받고 팔았으니 당연히 ‘장사꾼이 제 잇속을 챙긴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착한 일이라고 보기보다는 혹여 철수가 물고기 두 마리를 영희에게 사과 여섯 개를 받고 판 것이 부당한 이익을 챙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바라본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구성한 사회는 철수가 거저 주기보다 값을 받고 팔았기 때문에 철수가 잡은 다섯 마리의 물고기에 더해서 영희가 생산한 열 개의 사과가 존재한다.

이미 전제했듯이 거저 주는 것은 대가 없이 남에게 무언가 호의를 베푼다는 면에서 착한 일을 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의 살림이 윤택해지려면 거저 주는 것보다 사고파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사회는 마땅히 자선만큼 또는 그보다 더 ‘거래를 어떻게 촉진시킬 것인가’를 노력하는 사람들을 우대하고 그것을 촉진시키는 제도적인 틀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선은 특별히 마음을 먹어야 행할 수 있는 일이기에 대단히 어려운 것이고, 스스로의 이익에 반(反)하는 그런 방식으로 부(富)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인센티브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게 하거나 공평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가난 구제는 임금님도 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겠나.

그러나 값을 받고 사고파는 일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익만 된다면 누구나 그런 일을 행할 인센티브를 가진다. 아담 스미스 이래 경제학이 시장에서 가격을 통한 희소한 자원의 배분이 지금까지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다른 방식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이유이다(후생경제학 제1정리). 시장거래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는 사회가 보유한 모든 재화가 가격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을 토대로 가장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배분되도록 하여 거래 전보다 거래 후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더 큰 경제적 만족(효용)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경제학의 설파는 수백 년이 넘게 이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조차도 시장과 가격의 놀라운 가치 창출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외국 유학까지 가서 경제학을 배웠다는 고매한 박사와 교수들 가운데도 여전히 시장과 거래를 폄하하고 거저 주는 것(복지)을 사회의 운용 원리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 간의 아름다운 미덕은 총체적으로 모아보면 미덕이 아니라 서로를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꽤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거저 주는 것보다 사고파는 것이 사람들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은 사회 체제에 대한 20세기의 실험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들은 이제 북한을 제외하고는 실로 다 붕괴되어 사고파는 체제로의 전환을 이루고 경제를 어떻게 부흥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서 같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온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큼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도 없다.

무상출산,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분배, 무상의료 등 모든 것이 공짜인 소위 ‘지상낙원’이라고 떠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아직도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조차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인민들이 ‘감옥국가(prison state)’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 김정은 일당을 포함한 소수의 독재자들만 여기서 벗어나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생산한 소득을 착취하여 핵무기 등의 전쟁 물자화하고 있다. 과연 그들의 말로가 어떠할 것인가는 가보지 않아도 미리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은 이렇게 재화만 심각한 결핍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자유가 유린되고 있어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지상 낙원이 그런 곳이라면 차라리 지옥이 낮지 않을까? 반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이며 괴뢰라고 비난하고, 내부의 불순분자들이 ‘헬조선’이라고 비판하는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와 6.25동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 거저 주는 것보다 사고파는 시장을 확대하여 오늘의 부흥을 이루었다. 나라 안에서만이 아니라 나라 밖에서도 세계 각국에 사는 사람들과 사고팔고 경쟁하여 승리함으로써 오늘날 국민들이 놀라운 풍요와 번영, 그리고 자유와 인권을 구가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이다.

이런 경제학의 이론적 규명과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최악의 공산주의(과연 북한의 주사파적 주장을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를 교조적으로 광신하고 지지하는 자들이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통탄스럽고도 놀라운 일이다. 또한 이러한 사조의 연장선상에서 사고하면서 경제와 안보, 자유와 민주주의, 헌법과 법률의 변개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자들이 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사고파는 것이 자유로운 자유 시장경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류가 발견해낸 인간 번영의 주요한 수단이며, 이를 어떻게 제도로 정착시키고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나라와 경제의 부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사람들의 수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수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현재의 번영을 누리기는커녕 퇴보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거저 주는 것보다 사고파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는 사실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번영의 전제에 공감할 때까지.

글/이주선 동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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