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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국정원을 해체하든지


입력 2017.11.19 04:45 수정 2017.11.19 04:48        황태순 / 정치평론가

<칼럼>국가정보원, 대통령 직속 기관의 태생적 한계

국정원의 메인서버가 열렸다. 그러면…홀딱 벗겨져

서훈 국정원장 (자료사진) ⓒ국회사진취재단 서훈 국정원장 (자료사진) ⓒ국회사진취재단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동네북 신세다. 최고의 정보기관이 시쳇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전전임 정부의 국정원장(원세훈)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 중이다. 전임 정부 세 명의 국정원장 중 두 국정원장(남재준, 이병기)은 구속되었고, 다른 한 국정원장(이병호)에 대한 영장은 기각됐지만 검찰은 조만간 영장을 재청구할 기세다.

전임 국정원장들이 받고 있는 혐의는 그야말로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죄목들이다. 영화배우 출신의 정치인을 음해하기 위해서 합성 노출사진을 게재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소중한 혈세로 정말 국가안보를 위해서 쓰여야 할 특수활동비 40억 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상납요구’에 따라 청와대로 슬그머니 넘어갔다고 한다.

국가정보원, 대통령 직속 기관의 태생적 한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는 1961년 5·16직후 창설된 후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부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중앙정보부는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의 국정원법 2조는 국정원의 지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중정은 정치공작사령부였다. 유신시절 유정회 국회의원 선발은 중정이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안기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체제수호의 첨병이 되어야 할 정보기관이 정권수호의 번견(番犬)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후 국회에 정보위원회가 설치되고 국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되면서 과거 음습한 정치공작사령부의 어두운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세력의 동향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여전히 불법 도·감청, 미행, 동향파악 등 옛 버릇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결국 어떠한 경우에도 정보기관을 정치적으로 쓰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실천이 없이는 항상 ‘도루묵’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어느 대통령이 치명적 유혹을 마다할 수 있을까.


남재준 전 국정원장 (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남재준 전 국정원장 (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정원의 메인서버가 열렸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규정했다. 그리고 지난 6월19일 대표적 진보학자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외부인사 8명, 내부인원 5명)를 발족시켰다. 이들 민간위원들은 비밀취급인가도 없는 상태(물론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자 비밀취급인가를 뒤늦게 발급했다)에서 국정원의 내밀한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국정원의 메인서버가 열렸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모든 것을 들여다봤다. 개혁발전위원회의 민간위원들은 언젠가는 원래의 자기자리로 돌아간다. 가장 비밀스러워야 할 정보기관이 홀딱 벗겨진 것이다. 우선 걱정이 되는 것은 세계 어느 우방이 우리와 정보를 교류하려 들까. 그 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이런 상태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자부심은 고사하고 목을 잔뜩 움츠린 상태에서 일손을 놓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지금도 사실상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생존을 건 대치중이다.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체제수호의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해온 정보기관원들이 손을 놓게 되면 과연 누가 쾌재를 부를까. 지금 이 순간에도 3천~3만 명에 이른다는 북한의 사이버·해커 전사들은 우리를 시시각각 공격하고 있다. 온갖 모략과 이간책으로 우리사회를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결국 분열되도록 온갖 수를 다 쓰고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도 대표적인 심리전

초한지를 보면 한 고조 유방의 책사 진평은 초패왕 항우를 무너뜨리기 위해 모략계책을 쓴다. 항우의 사신 앞에서 항우의 최고 참모인 범증을 칭찬한 것이다. 그러자 항우는 범증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범증을 내친다. 그리고 나중에 항우는 한나라 군사에게 포위된 채 한신의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심리전에 완전히 붕괴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손자병법도 ‘상병벌모’(上兵伐謀)로 모략을 전략전술의 최고로 꼽았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심리전, 위장된 평화공세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서 정보기관에는 정보수집과 함께 방첩기능이 있는 것이고, 대공수사기능도 있는 것이다. 또 이와는 별도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특수공작의 기능도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서부터 관행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분명 잘잘못을 가려서 처벌할 것은 처벌하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적폐청산도 결국은 제도의 개선을 통해서 앞으로 또다시 잘못된 관행이 살아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저인망식 싹쓸이 처벌위주로 진행된다면 이는 자칫하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정보기관을 대통령과 떼어놓아야

미국의 경우 해외정보수집 및 공작기능은 중앙정보국(CIA)에서 한다. 방첩기능과 대공수사기능의 역할은 연방수사국(FBI)이 도맡아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연임해도 8년)인데 반해 FBI국장의 임기는 5년이고 연임하여 10년을 채우는 것이 사실상 확립된 전통이다. 즉 정파적 이해를 떠나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국정원은 이미 정보기관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메인서버가 사실상 완전히 공개된 꼴이고, 이제는 회계장부까지 검찰의 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정보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나 있을까. 차제에 발전적 해체를 통해서 국정원을 완전히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거듭 나게 할 수는 없을까.

다만 국내정치개입은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대통령이 자신의 구미에 맞게 이리저리 굴리지 못하도록 국정원법 2조(대통령 직속기관)를 폐지하고 국정원장 임기제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한 사안이다. 그리고 국회 정보위원회의 정보기관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여 일탈에 빠지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위원들도 그에 걸 맞는 행태를 보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국정원 개혁의 방안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대공수사권의 검찰·경찰 이관은 우리의 방첩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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