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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발전은 자유의 적인가?


입력 2017.11.09 06:53 수정 2017.11.09 07:06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정치의 영역으로 가두려는 좌파들의 음모

영화 '트렌센덴스' 한장면. 동영상 화면 캡처. 영화 '트렌센덴스' 한장면. 동영상 화면 캡처.

수년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인 초월성(超越性, transcendence)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정보기술, 인공지능, 나노기술과 생명공학에 정통한 천재과학자가 이들 기술에 대한 강연을 한 직후에 반(反)기술발전 테러단체의 습격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생존의 처지에 놓인다. 그는 죽기 전에, 동료와 애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인터넷-컴퓨터 정보로 올려놓고, 이들 정보와 기술을 활용하여 생전의 자신을 재생한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죽은 자신과 자신의 추종자들까지 복제해 낸다. 테러단체의 설득으로 뒤늦게 이런 반인간적 행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그의 애인이 그 인터넷-컴퓨터 프로그램에 바이러스를 심어 이들 로봇 인간들을 파괴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초라한 흥행 성적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바꾸고, 사람을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게 만드는 과정이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주목을 받았다.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스티븐 호킹은 영화를 본 직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는 머지않아 멸종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고, 적지 않은 수의 과학자나 지식인들도 비슷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나는 이런 비관적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기술이 시장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 개인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는 한, 인간의 독창성이 기술발전의 부작용을 통제하거나 보정하는 방안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전체주의적 이념이나 정치세력이 기술을 정치의 영역에 가두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여 사회를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몰고 갈 위험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이 정치의 영역에서 독립된 경우는, 예를 들어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영국과 미국을 제외하면 흔치 않았다. 또한 기술의 개념도 완전히 자연과학 부문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기술과 관련된 용어인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엔지니어링(engineering)이 사회과학(social science), 의료기술(medical technology), 정치공학(political engineering)처럼, 자연과학에 국한 되어있지 않고, 광범위하게, 때로는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기술은 사전적으로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이나 그 밖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사용되는 지식, 기법(technique), 기량(skill), 공정(process)들의 집합체로 정의된다.

문제는 이런 기술이 편향된 정치이념이나 정치세력에 의해 악용될 수 있고, 그런 위험은 비과학적 부문에서 더욱 크다는 데 있다. 정보기술, 나노기술, 생체공학, 유전자 편집 기술이 전체주의적 정치적 선동이나 쇠뇌 공작에 동원되어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기 쉬워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선거공학, 여론조작, 역사 조작, 법적 행동주의(judicial activism), 사회주의적 규제나 시장 간섭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하다. 비과학적이고, 편향되거나 과격한 이념에 물든 소수집단의 선동이 문화혁명, 베네수엘라 식 정치경제 체제, 원자력 폐쇄정책을 만들고, 자유의 상실, 사회적 갈등과 빈곤의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지구촌 전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좌파-사회주의 세력은 이런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그들은 결코 계급투쟁(class warfare)적, 사회설계 (social constructionist)적 열정을 버린 적이 없고, 정치, 경제에서부터 문화예술이나 과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속적 문제를 정치화 (politicize)하는 물신주의 사상을 퍼뜨리려고 한다. 최근 미국의 어느 정치집회에서 나온 “우리는 정부를 숭배하지 않고, 신을 숭배한다”라는 구호는 세속적 신앙의 수준으로 커져가는 그런 경향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자들은 결코 이런 정치 맹신주의의 확산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전선은 더 이상 경제적 자유의 확산에만 머무를 수 없다.

글/장대홍 한림대학교 명예교수·dtjaang@hallym.ac.kr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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