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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청산해야 보수가 산다고? 청산 아니라 극복해야


입력 2017.11.04 09:09 수정 2017.11.04 15:0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바른당 몇명 흡수한다고 보수대통합? 견강부회

부당한 처분 안받게 한다고? 제명이야말로 부당 처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적 제명을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적 제명을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결국 [한국당, '1호 당원' 박근혜 출당조치]라는 기사가 헤드라인이 됐다. 그런데,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10위권 밖(발표 1시간 후)이다.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정치지도자로는 너무도 초라한 결말이다. 오랜만에 감정을 내려놓고 박근혜 전대통령(이하 박대통령)에 대한 상념에 빠졌다.

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20년 전 이었다. 1997년 대선이 한창이던 시절, 보수의 상징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 박근혜가 한나라당에 합류했다. 당시 필자는 한나라당 대선후보인 이회창 후보의 수행비서였다. 필자는 정윤회(당시 박근혜의 유일한 참모)를 만나 한나라당 적응을 지원하고 대선 지원유세를 돕는 역할도 수행했다. 그때 이회창 후보 측근 중 일부는 박 대통령의 현장인기가 이회창 후보를 앞선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대중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걸출한 인물이 들어 온 것이었다.

이회창 후보가 첫째 대선에서 지고, 박 대통령은 직접 정치에 입문한다. 1998년 대구 보궐선거였다. 이때 정윤회 실장과 문고리 4인방이 참모진으로 완성됐다. 현재의 ‘국정 농단세력’이 완성된 것이다 (그중 한명은 2012년 대선유세 중 사고로 사망했다)

두 번째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필자가 2004년 총선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지역에서 행사를 했을 때다. 박근혜 의원이 직접 격려 방문을 해 주었다. 박근혜 의원은 필자가 불이익을 받는 것에 안타까워했고 격려했다. 필자는 당시 박 대통령의 ‘의리’에 감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총선의 공천권은 현재 당 대표인 홍준표 의원이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이때부터 악연의 연속이었다.

세 번째 기억은 필자가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장으로 일하던 10년 전(2006~2007)이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당대표 말기와 대권주자로 활동하던 때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료인 한 선배(당시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가 당시 박근혜 대표에 대해 물었다. 정치지도자로서 인물평을 듣고 싶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경주마 같아. 눈 옆을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얼마 전 그 선배가 ‘당신 말이 맞았다’고 혀를 치며 얘기해 줘 다시 기억이 났다. 주변에서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며 진흙탕으로 이끌었다는 말이다. 그 동안 내 평가가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잊고 싶었고 실재로 잊었던 것 같은데, 다시 상기시켜 주니 고맙다고 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2012년 대선때 필자는 김종인 위원장이 리드하는 선대위 ‘행복추진위’에서 정보통신 공약을 만들었다. 대선 후 김종인 위원장이 대통령과 멀어지고 당을 떠나면서, 필자도 박 대통령 측과 멀어졌다. 그렇다고 김종인 위원장을 따라 당을 떠날 수도 없었다. 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많이 알았지만, 문제는 ‘문고리 삼인방과 십상시’들이었다. 대선 끝나고 본격적으로 논공행상과 이를 위한 권력투쟁이 시작됐다. 그 중심에 있던 그들은 배타적이었고 캠프출신이라도 그들에게 머리 숙이지 않는 사람들에겐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도 서열이 나뉘었고 낙마하는 사람이 생겼다. 박 대통령의 폐쇄성은 청와대에서 더욱 강화됐고 그로 인해 측근권력은 더욱 독점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대통령이 잘못 갈 때는 조언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충성심이 없다’며 배척됐다. 결국 박근혜 정부 4년여 동안 필자는 정치적로나 개인적으로 가장 불행한 시기를 견뎌내야 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박 대통령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녀는 타고난 후광, 카리스마, 대중성을 가졌다. 의리도 넘쳤다. 현실정치에서 누구도 갖추지 못한 전설(‘선거의 여왕’)도 있었다. 정치권 누구에게도 아무 빚이 없었다. ‘3김식 구태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 수도 있었다. 여건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기대를 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로서 품성과 개인기가 지나치게 부족했다. 태만했고 오만했다. 측근을 잘못 썼고 너무 믿었다. 권력은 (호가호위하는 측근들에게) 사유화됐고 국정은 표류했다. ‘선거의 여왕’이 ‘통치의 여왕’과 등치될 수 없음을 확인시켰다. 당대표로서 당 운영에서 보인 한계를 국정에도 그대로 반영시켰다. 그렇게 그녀의 시대는 비극적으로 마감됐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 시대의 마감이 ‘희망의 시대’를 열지는 못한 것 같다. 또 다른 ‘혼란의 시대’의 시작일 뿐이다.

떠난 사람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산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당의 처사는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지 않다. 너무 이기적이고 편협하다. 국민들은 집권여당으로 책임을 지라고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 출당을 통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한다. 국민은 ‘보수의 가치’(법치주의 등)를 다시 세우라고 주문한다. 박 대통령의 출당은 도의적 문제뿐 아니라, 심각한 절차적 문제도 있다. 당헌·당규에 맞지 않다. 보수의 가치인 법치주의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한국당은 지금 보수의 가치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좇는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한국당이 박 대통령을 제명하며 ‘악어의 눈물’처럼 한 말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적은 사라지지만 앞으로 부당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고향에서 식구들에게 버림받는 일보다 더 큰 아픔이 어디 있을까? 한때 가장이던 사람이 사형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식구들은 연좌제가 두려워 그를 관에 넣어 못을 박는다. 아직 살아있는데 말이다. 이보다 ‘부당한 처분’이 있을까?

누군가 말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당에서 ‘청산의 대상’이 아니다. ‘극복의 대상’이다. 손쉽게 출당시키는 것은 극복의 방법이 아니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출당을 보고 한국당에 대한 생각을 바꿀까? 충성도 높은 핵심 지지층의 반감만 살 뿐이다. ‘보수대통합’을 명분으로 삼는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금 바른정당 일부의원의 합류를 ‘보수통합’으로 포장하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牽强附會)로 보인다. 부끄러운 일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이번 조치로는 당을 살릴 수 없다. 진정한 ‘보수대통합’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 길은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세우고 국민적 공감을 이루는 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 가치를 동의하는 어떤 사람도, 세력도 통합에서 배제되서는 안된다. 그것이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고 지지율을 올리는 첩경이다. 이렇게 해서 지지율이 올라가면, 보수대통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이다. 이것이 진정 한국당 지도부가 박근혜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 현 정부나 보수야당은 박근혜 정권의 실패를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 국민통합과 국회의 협치에 반하는 배타성, 그리고 지도자(부)의 오만과 독주는 실패의 지름길이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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