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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서청원의 총질로 본 한국당의 9가지 특징


입력 2017.10.30 05:51 수정 2017.10.30 06: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당파싸움 욕먹는 조선조 붕당도 이렇진 않았다

동지애도 없고 자생력도 없고 그저 이익결사체에 불과

보수정치세력은 끊임없이 자해행위를 일삼았고, 마침내 자살을 결행할 즈음에 와 있다. 저렇게 망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물론 보수정당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다. 이들의 행태적 특징(부분적일 수밖에 없지만)을 보면 대개 이렇다.

①사적 이익 지향형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들에게서 가치 지향적 선택 및 행동을 본 기억이 없다. 이 사람들에게 조직이나 리더의 이념성향, 가치관, 국가관, 비전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각자의 잇속에 따라 형성된 무리가 곧 보수정당인가보다 하는 느낌을 준다.

조선 때 붕당도 이렇진 않았다

조선시대의 붕당을 연상케 한다. 붕당들은 학맥·문벌·지연 중심의 이익결사적 구성과 행태를 보였다. 오늘날의 한국 정당, 특히 보수정당들은 다른가? 다르긴 하다. 오히려 퇴행했다. 그때는 성리학적 원리와 가치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라도 벌였다. 자신이 속한 붕당에 대한 의리도 확고했다. 당적을 바꾸거나 해당행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어떤가?

②자신이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선택 되어지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지위나 이익이 보장된다면 굳이 당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후에 더 좋은 조건이 제시되면 쉽게 옮겨 앉는다.

이런 인격형을 가진 사람들이 상황순응형 정치행태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흔들리며 가는 것이 보수 정치인들의 이미지라고 하면 분개할 것인가? 그 분노를 진작 가졌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어이없는 파국은 면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③이들과 이들의 조직은 현실안주형이지 미래지향형이 아니다. 최근 한동안 우리는 붉은불개미 떼의 부산항 상륙(?) 뉴스로 떨어야 했다. 맹독성을 가진 ‘살인개미’라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당국에서는 발견된 현장에서 모두 사멸해 확산될 위험성은 없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전문가의 진단은 그렇지만도 않다.

이 무리의 여왕개미가 죽었다는 확증이 없다고 한다. 더욱이 개미집단의 생존력은 경이롭다고 할 정도다. 여왕개미는 연간 수십 마리의 공주개미를 낳고, 이들은 최대 수십km밖에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어 군락을 형성한다고 한다(개미 연구 권위자 김병진 원광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의 말이라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개미집단의 이 놀라운 생존력 번식력은 후계자를 예비하는 데 있다. 인간 조직의 경우도 원리는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정당은 이 점에서 취약성을 드러내 왔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왕조적 또는 전체주의적 사고체계를 가졌다는 것인가?

개미 예를 드는 게 자존심 상한다면 릴레이경주를 들어 말하자. 바통을 이어받아줄 주자가 없으면 그 팀은 패배한다. 주자의 제1임무는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무사히 넘겨주는 것이다. 당연히 후발 주자에게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야 줘야할 책임도 진다. 상대팀 선수에 뒤처져서는 안 되고 넘어지거나 규칙을 어기는 등의 치명적 실수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자생력 없는 현실안주형 정당

그런데 보수정권의 리더들은 후계자를 키우는데 아주 인색했다. 그렇게 할 경우 대통령의 정치적 권위와 조직 장악력이 떨어진다? 그건 대통령제의 의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임기가 끝나면 내놓게 돼 있는 것이 대통령직이다. 제왕적 권위·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와 소속정당은 물론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

바통을 넘겨받을 선수를 키우지 않고 혼자만 달리면 필패다. 자신이 지치거나 넘어지면 대안이 없다. 한 사람이 조직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보수정당이 대통령을 몇 명이나 배출해 내지 않았느냐고 할 텐가. 이는 보수정당의 역량에 힘입었다기보다는 유권자들의 보수지향성 덕분이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특정인을 후계자로 양성하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이 민주 역행적 행위다. 후계자가 될 사람들이 자유롭게 역동적으로 경쟁을 할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④이익결사체일수록 ‘다른 목소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념지향형 조직은 논쟁을 권장하지만 이익지향형 조직은 이견을 배제한다. 행동일치, 방향일치 등 ‘일치의 윤리’에 벗어나면 그 순간 사문난적이 되고 만다.

⑤이미 확립된 권위에는 지나치게 순종적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민주적 권위의 형성에는 아주 부정적이고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그 때문에 두각을 나타내는 정치리더가 나오기 어렵고, 떠오르는 순간 내부에서의 저격부터 시작된다. 물론 순종이라는 것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지키기 위한 처세법인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대세의 향방을 관망하며 판단을 미루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겐 조직의 가치·질서 체계가 바뀌는 게 대단히 성가시고 때로는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여기 이대로’ 머물고 싶어 한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시샘 심리인들 없겠는가. 기득권층은 대개 스스로 잘난 사람들인데….

⑥욕심은 많지만 그것을 채우기 위한 행동에는 소극적이다. 야당으로서의 보수정당도 투쟁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금방 시들해져 버리고 만다. 진보정당처럼 일 년 가까이 천막당사 투쟁을 벌이는 일이 없다. 일 년 내내, 그리고 보수 대통령 임기 내내 거리투쟁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⑦상황을 주도할 용기도 역량도 갖추지 못했다. 작년 10월에서 올 5월에 걸쳐 전개된 정변에서 보수정당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상황에 떠밀려가며 선택을 강요받았을 뿐이다. 이점에서는 자유한국당도 바른정당도 마찬가지였다. 4.13총선에서 유권자의 채찍을 맞았다면 즉각 정신을 차리고 회생 혹은 재건 방안을 모색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책임공방이나 벌였고, 상처를 드러내 대대적 수술을 할 생각 대신 상처를 덮어 버리는 재주나 부렸다. 그리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보수 치부 보이는 홍‧서의 총질

⑧동지애랄 것도 없이 제각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명운동을 벌이는 구집권당 의원 및 정치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럭저럭 상황이 정리돼 주기만을 바라는 눈치들이다. 과거 친박 핵심이었다는 사람들마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박 전 대통령의 처지에 대한 항변이나 변호에 극히 인색하다. 박 전 대통령과 동지적 유대관계를 가졌던 정치인들이라면 이 상황에서 함께 고통을 감수하겠다고 나설 만도 한데 그럴 기미조차 안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출당 당하는 사태는 감수할 수 있어도 자신들이 당적을 잃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 구 친박중진들의 태도다. 이정현 전 대표가 스스로 탈당했고, 조원진 의원이 따로 당을 만들어 나간 이래 소속 의원 중 동조자는 없었다.

⑨지금 점입가경의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홍준표 당 대표와 서청원 의원 간의 싸움이야말로 보수정당, 보수정치인의 속성을 만유감 없이 보여주는 정치권의 한심한 삽화다.

홍 대표는 애초에 입장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대선 때, 그리고 당권 경쟁 때, 보수표를 의식해서 박 전 대통령의 구조자가 될 것처럼 했다가 지금에 와서 ‘안 나가면 내 보낸다’고 압박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과 서 의원, 최경환 의원에 대한 탈당권유가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사전에 소속의원들과 당사자들을 상대로 진지한 설명 및 설득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게 바로 정치다. 홍 대표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홍 대표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것인가.

‘친박 맏형’으로 불려온 서 의원의 저항방식은 치졸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박 전 대통령과 그만큼 각별한 사이였다면 생사까지는 몰라도 정치적 고행은 함께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는 의원직을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탈당권유까지 뿌리치고 있다. 그것도 ‘새까만 후배를 협박’(홍 대표의 표현)하면서까지…. 그렇게 하니까 열한 살이나 적은 홍 대표로부터 ”깜냥도 안 되면서 덤비고 있다“는 모욕을 당하는 것 아닌가.

보수정당과 보수정치인을 흠잡자면 한이 없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선거에 참패하고 정권을 어이없이 빼앗겼으면 와신상담은 아니더라도 이를 악물고 거듭나려는 각오는 보였어야 할 일인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게다가 참으로 추한 집안싸움까지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요란하게 벌이고 있다. 그러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곱게 보일 구석이 있겠는가. 그래서 묻고자 한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싸움인가.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정부‧여당은 기세 좋게 ‘적폐청산’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구악일소와 정치보복의 경계는 모호하다. 칼을 든 측이 못 만들어낼 명분과 핑계가 있겠는가. 더욱이 촛불군중의 기세는 여전하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용기백배해 있는 것이다. 하필 이럴 때 직전 집권당이었던 한국당은 특정인들의 당적 정리문제를 두고 전면적 내전에 돌입할 태세다. 자~알 돼가는 집안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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