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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틀려도, 조금 달라도, 조금 느려도 괜찮은 스웨덴


입력 2017.10.21 05:13 수정 2017.11.09 17:37        이석원 객원기자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7> ‘스웨덴 육아’의 저자 홍민정 씨

“한 발 비켜서서 아이들 기다려준다면 스스로 성장한다”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스웨덴에 거주하면서 스웨덴의 육아와 관련된 책을 출간하기도 한 홍민정 씨.(사진 = 이석원) 스웨덴에 거주하면서 스웨덴의 육아와 관련된 책을 출간하기도 한 홍민정 씨.(사진 = 이석원)
“나는 우연한 기회에 스웨덴에서 살고 육아를 하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알게 된 북유럽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제도가 갖춰져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중략) 스웨덴 사람들은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 않는다. 부모가 주체가 되는 ‘육아’의 시간은 길지 않고,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성장’의 시간은 길다. 오늘 학교와 어린이집을 마치면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가야겠다. 유모차 없이 양쪽에 아이들 손잡고 걸어가야겠다. 지금 행복하기 위해서.” (홍민정이 쓴 ‘완벽하지 않아서 행복한 스웨덴 육아’ 중에서)

한국의 아이들이 아프다. 그 아파온 시간이 짧지 않다. 또 앞으로 아플 시간은 언제까지일지 끝을 알 수도 없다. 더 참담한 것은 아이도, 그 아이의 부모들도 아이들이 아프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부모는 알 것이다. 단지 애써 스스로가 안다는 사실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약도 처방도 없이 더 아프다.

최근 한국의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북유럽으로의 ‘육아 이민’이 관심이다. 아이들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회피하지 않으려는 의지다. 또는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자신들의 허리가 휘어 도무지 펼 수 없음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아무튼 그들은 세계에서 교육 시스템이 가장 잘 돼 있다는 핀란드를 비롯해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북유럽이야 말로 아이들의 천국이고 부모들의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난 7월 출간된 책 ‘완벽하지 않아서 행복한 스웨덴 육아’의 저자인 홍민정 씨(35)는 현재 스웨덴에서 2년 5개월 째 9살과 5살 두 딸의 육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워킹맘이었지만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낀 스웨덴의 육아에 관한 내용을 차분하게 정리한 것이 ‘완벽하지 않아서 행복한 스웨덴 육아’다. ‘완벽하지 않아서’라는 말에 묘한 뉘앙스가 있다. 상투적인 반어법이라고 하기에는 울림이 강하다. 그럼 홍민정 씨는 왜 스웨덴의 육아가 완벽하지 않다고 했을까? 한국에서는 ‘천국’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그곳이. 그리고 왜 완벽하지 않은데 행복했을까?

홍민정 씨가 2015년 스웨덴 주재원이 된 남편과 함께 처음 스웨덴에 와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려고 할 때 그녀는 기겁을 했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모래 바닥에서 아무렇게나 뒹굴며 놀고, 아무데서나 간식을 먹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은 그저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이들의 놀이에 끼지도 않고 어떤 제재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흙투성이 옷을 하고는 마치 ‘흙을 파먹는’ 것 같았다.

홍민정 씨는 스웨덴의 육아는 아이 스스로 자신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부모는 한 발 떨어져서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사진 = 홍민정 제공) 홍민정 씨는 스웨덴의 육아는 아이 스스로 자신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부모는 한 발 떨어져서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사진 = 홍민정 제공)

“교육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어요. 방치였죠. 무책임해 보였어요. 스웨덴의 5월은 아직 한기가 채 가시지도 않고 비 오는 날이 많았는데, 아이들은 비가 오든 말든, 찬바람이 부는 것도 아랑곳없이 그저 흙바닥에서 마음껏 놀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이 있을 뿐이다’고. 지금은 저도 아이들을 그렇게 놀게 해요. 아이들은 그 놀이 속에서 스스로 노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비바람이 세차게 물어오는 날에도 다기스(Dagis)라고 불리는 스웨덴의 유치원은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야외활동으로 보낸다.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실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아이들은 숲 속 나무와 풀과 꽃, 그리고 새소리를 들으며 단어를 배우고, 색깔을 익히며, 계산하는 법을 터득한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익히고 깨닫는 것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그런 스웨덴의 교육은 한국의 엄마들에게는 걱정거리다. 아이들이 너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민정 씨는 그 모습이 희한했지만 관심이 갔다.

“스웨덴이 추구하는 교육을 이해해야 했어요. 여기는 스웨덴인데 한국의 교육 방식으로 이해하려면 안되죠. 물론 스웨덴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걱정들도 있고, 그에 대한 개선이 목소리도 있어요. 하지만 스웨덴의 부모들은 그 교육을 존중해요. 교육은 단기전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인내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아이들은 빨리 자라지 않죠. 그런데 그 아이들의 능력만 빨리 자라기를 바라면 어떻게 해요. 천천히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와 같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스웨덴의 교육 방식입니다.”

그녀는 스웨덴에 와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차분하면서도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러지를 못했다. 엄마 아빠 모두 바쁘게 일해야 했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자위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제대로 모를 때가 많았다. 스웨덴도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지만, 홍민정 씨의 눈에 비친 스웨덴의 아빠들은 늘 여유가 있고, 엄마들은 편안했다. 그런 가운데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속도가 아니라 자신들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고 홍민정 씨는 느낀 것이다.

홍민정 씨는 자신의 아이들과 주로 자연에서 노는 것을 즐긴다. 홍민정 씨가 두 딸과 함께 스웨덴의 숲 속에서 블루베리를 따고 있다. (사진 = 홍민정 제공) 홍민정 씨는 자신의 아이들과 주로 자연에서 노는 것을 즐긴다. 홍민정 씨가 두 딸과 함께 스웨덴의 숲 속에서 블루베리를 따고 있다. (사진 = 홍민정 제공)

홍민정 씨는 스웨덴 아이들의 다양한 인종에 대한 인식에도 눈길이 갔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섞여서 차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 스웨덴이 상대적으로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인종차별이 적은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다른 피부, 다른 눈동자, 그리고 다른 언어를 쓰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지낸다. 홍민정 씨는 왜 그런지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딸을 유치원에 데려갔을 때 스웨덴 아이들이 무시를 하거나 놀릴까봐 걱정했었죠. 그런데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을 보고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의 유치원에 있는 인형은 거의 대부분 백인들이잖아요? 머리색도 금발이 대부분이고. 그런데 스웨덴의 다기스에 있는 인형은 백인 인형에서부터 흑인과 동양인, 그리고 아랍 인형들이 비슷하게 있더라고요. 스웨덴 백인 아이들이 아랍 인형을 가지고 놀고, 동양 아이들은 흑인 인형을 가지고 놀고. 다양한 인종과 국가의 교사들이 있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더군요.”

스웨덴 교사들의 태도도 홍민정 씨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첫째 딸의 담임교사는 홍민정 씨에게 “아이가 모국어를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라며 “모국어를 잘 하는 아이가 영어든 스웨덴어든 다른 언어도 잘 익힌다”고 강조하더라는 것. 한국의 엄마 아빠는 아이가 한국어를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면 나머지는 학교가 책임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게 하기 위해 집에서도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좋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홍민정 씨는 집에서 아이들이 한글로 된 동화책을 많이 읽게 했다.

홍민정 씨는 스웨덴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기다려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웨덴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엄마 아빠가 긴장하고 초조해하고 걱정하면 아이들이 그 긴장과 초조와 걱정을 온몸으로 다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알아서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배운다고 믿게 됐다.

두 딸과 함께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홍민정 씨.(사진 = 홍민정 제공) 두 딸과 함께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홍민정 씨.(사진 = 홍민정 제공)

“스웨덴은 결코 교육이든 육아의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은 하늘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스웨덴의 육아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에요.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에 관해 참 많은 것에 개입하려고 하는데, 그보다는 아이들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고, 아이들의 페이스에 맞추면서 기다리는 게 스웨덴의 육아입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한국의 교육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여기서의 경험을 가지고 아이들을 많이 기다려 줄 거예요. 아이들도 여기서보다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스스로 놀고,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깨닫는 연습을 했으니 조금은 낫지 않을까요?”

홍민정 씨의 책 맨 뒷면에 “스웨덴은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던 육아가 조금 틀려도, 조금 달라도,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알려주었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주체가 되는 짧은 시간의 ‘육아’ 조차도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긴 ‘성장’의 일부분으로 양보했다. 그리고 그녀는 스웨덴의 육아가 가르쳐 준대로 천천히 기다리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는 모습을 지녀볼 생각이다. 그렇게 그녀는 ‘스웨덴의 엄마’가 되고 있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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