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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혁명법정에 선 것인가


입력 2017.10.16 05:50 수정 2017.10.16 09:4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탄핵에서 그치지 않고 촛불이란 이름으로 단죄

성공한 정부 되고싶다면 원한 복수심 과시욕 털어내야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연장 심리를 마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호송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연장 심리를 마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호송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이 13일 오후 발부됐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1차 구속 만기일인 16일 밤 12시부터 다시 길면 6개월간 구속된 채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 물론 그 안에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석방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개인적 느낌으로 그렇다는 말이다.(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와 시도당 위원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회동을 가졌다. 그 전날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서 세월호 사고 최초보고시간을 조작한 정황이 담긴 청와대 문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우연이었다 해도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다.)

계속 혼자생각으로 말하자.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될까? 심각한 정당성의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문 대통령의 집권 과정 그 자체가 명분을 상실할 수도 있다. ‘촛불혁명’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의 집권과정을 치장한 만큼 이보다 더 큰 낭패도 달리 없을 것이다. 사법처리 전 과정이 ‘가혹’(이 표현이 싫다면 엄혹이라고 읽든가)해야 할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법원의 영장발부는 논외로 하고.

탄핵에 그치는 게 좋았을텐데

그런데 애초에 과욕을 부렸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말하자면 정치적 징계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 이외에는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그 정도의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정치를 잘 한 것은 아니다. 여당 일각에서까지 불만‧저항세력이 형성됐다. 그것이 임계점에 이를 무렵,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들이 언론에 의해 불거졌다. 그리고 JTBC의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공개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국민들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당황한 박 전 대통령이 다음날, 그러니까 2016년 10월 25일 직접 해명 및 사과에 나섰지만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고 말았다.

시위대와 야당들의 퇴진 압박 속에, 결국 ‘4월 하야 6월 대선’으로 가닥이 잡혀 가는 듯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새누리당 친박중진들의 건의를 수용한 것이다. 이로써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화했다. 그런데 야당들과 문 후보(민주당)는 그 정도로 끝내는 게 부족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당초 자진 사퇴를 요구했던 이들이 탄핵을 주장하고 나섰고, 새누리당의 비박계(더 장확히는 반박계) 의원들이 가세했다.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불가피한 상황 진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정 여하 간에 국정운영에 실패했고, 특히나 위기관리능력의 결여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었다. 정치적 징계로서의 탄핵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와 같은 중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정치적 징계를 피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탄핵소추는 나름대로 일정한 이유와 명분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경우 소추 내용에 대한 진위 판단‧확인‧검증에 소홀한 인상을 주긴 했으나 당시의 사회분위기가 워낙 격앙돼 있었다. 야간의 광화문을 뒤덮은 촛불군중, 청와대로 행진하는 횃불무리 등에 심리적으로 압도되었을 법하다. 그것이 바로 민심이라고 여길만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단 한사람의 반대도 없이 심리참여 재판관 8명 전원의 이름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결정문을 작성, 발표했을 것이다.

역사상 이 같은 혁명은 없었다

여기까지는 어쨌거나 정치적 과정이었다. 그런데 문 후보를 비롯한 야당의 리더들과 집회의 리더들은 이 선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을 사법적으로도 단죄하고 징벌해야 한다는 그들 나름의 정의감에 추동되고 있었다. 범죄 행위를 확인해서 세상에 공표할 수 있어야 촛불집회는 역사적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 들어설 정부는 그 정당성의 기반을 더 공고히 하게 된다고 여겼을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인식과 행태는 과욕이었다.

①현직 대통령에 대해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닌데도 수사를 시작한 게 지나친 처사였다. 재임 중에는 효과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기소는 탄핵 이후에 이뤄진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수사를 시작했을 때 이미 기소가 전제되어 있었다. 그것은 헌법의 규정과 취지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②문 대통령이 즐겨 쓰는 표현이 ‘촛불혁명’이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 정도로는 ‘혁명’이라고 명명하기에 부족하다. 혁명이라고 하려면 집권자가 헌법과 법률을 심대하게 위반하고 국민을 물리적으로 탄압함으로써 국가를 위기국면으로 몰아넣는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목숨까지 내걸고 투쟁한 결과라는 극적인 요소들이 갖춰져야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근년에 ‘혁명’으로 불렸던 각국의 정변, 즉 벨벳혁명(체코, 1989), 루마니아혁명(1989), 재스민혁명(튀니지, 2010), 이집트혁명(2011), 리비아혁명(2011)을 보더라도 혁명의 조건이 우리와 일치하는 예는 전혀 없다. 역사적으로도 ‘촛불혁명’ 같은 혁명은 있지 않았다.

③박 전 대통령은 국민을 물리적으로 위협하거나 핍박한 바가 없다. 장기집권을 꾀한 적이 없으려니와 그걸 꾀할 입장도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를 했을 때 임기를 고작 1년 4개월, 탄핵 시점으로는 11개월 보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차기 대선까지 9개월 9일 남긴 시점에 그는 파면 당했다. 그 간에 한 번도 임기연장을 꾀한 바가 없었을 뿐더러 4월 퇴진 조건을 수용하기까지 했다.

④‘촛불혁명’이라는 정변의 과정을 돌아보면, 모든 과정이 헌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혁명이란 비헌법적, 비제도적 방법에 의해 당시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가지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혁명주체들은 새 헌법과 법률체계를 만들어 집권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제도 안에서, 기성의 헌법과 법률 절차를 거쳐 이뤄진 일은 아무리 급격한 변화를 수반했다고 하더라도 ‘혁명’이 아니다. 문화혁명, 사회혁명 등은 ‘혁명’의 상징성을 빌어 급격한 변화의 양상을 부각시키는 용어일 뿐이다.

⑤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 내용이 과연 민선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야 할 만큼 중대한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에 대한 혐의가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과거 몇몇 대통령들에 비해서는 경미하다고 할 정도다. 이야말로 취모멱자(吹毛覓疵)나 다를 바 없다. 하긴 정권을 빼앗긴 것도 죄라면 죄일 것이다.

두려움 주는 정치는 옳지 않다

⑥문 대통령은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자신의 집권기반이 ‘촛불혁명’에 있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래서 유엔총회 연설에서 까지 상당부분을 ‘촛불혁명’의 배경과 의의를 설명하고 자랑하는데 할애했다. 그러나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점은 이미 베를린 방문 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반응에서 감지된 바가 있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국민의 41% 지지를 받고 당선됐는데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유권자는 어떻게 끌어안을 생각이냐”고 물었다. ‘혁명’을 자랑할 입장이 아니지 않느냐고 들릴 수 있는 질문이었다.(‘혁명의 결과’가 41%에 불과했다면 그 혁명은 실패한 것이다. 41%만이 혁명을 추인했다면 혁명정부는 존립의 근거를 잃고 만다. 그러므로 적법절차에 따라 성립된 정부라고 하는 게 옳다.)

어쨌든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냄으로써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오히려 부담만 더 안게 됐다. 애초에 대통령직에서 밀어내는 것으로 끝냈다고 해도 국민들은 ‘무능정부’ ‘불통정부’의 대안으로서 문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을 것이다. 어쩌면 대선 득표율이 더 높아졌을 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의 포용력이 돋보였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새 왕조가 열리거나 새 임금이 등극하면 맨 처음 내 놓는 것이 ‘대사령(大赦令)이다. 집권자와 그 참모들은 감옥 문을 열어 죄인들을 석방함으로써 백성의 억울함을 달래주거나 고통을 위로하는 일이 곧 하늘의 뜻에 부합된다고 믿었다. 민심은 천심에 응하고 천심은 민심에 답한다고 여겨 이를 치국의 기본이념으로 삼았다. 지금 세상이라고 그 가치가 달라졌을 리 없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을 기어이 연장(법원이 결정한 일이라고만 말해서는 곤란하다)한 것이라든가 ’적폐청산‘의 의지를 더 과시하는 것은 국민적 지지의 확보와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은 속 시원하다며 박수를 치는 사람이 많고, 그에 힘입어 여론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겠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지지율이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게 돼 있고, 듣기 좋은 꽃노래도 거듭되면 싫증을 부르는 게 세상의 인심이다. 인심 조석변(朝夕變)이라 하지 않던가.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원한‧복수심‧과시욕‧영웅주의 같은 것을 털어내야 한다. 국민 전체가 아니라 정치적 적대자들에 대해서라고 하더라도 두려움을 주는 정치는 옳지 못하고 오래 가지도 못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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