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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고집스럽거나 혹은 무지하거나


입력 2017.10.16 06:00 수정 2020.03.18 16:30        박관종 생활경제부장

'헛다리짚기'...오래전 이야기 이지만 2002년 월드컵 이영표 선수가 떠오르는 용어다. 양 다리를 번갈아 가며 공을 찰듯 말듯 속이는 페이크 동작으로 상대의 수비를 뚫고 나가는 이영표의 전매특허 기술이었다. 빠른 발재간에 현혹돼 좌우전후 어디로 튕겨 나갈지 판단이 안선 상대가 곧잘 속아 넘어가곤 했다.


또 다른 '헛다리짚기'...대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일을 그르쳐 성과를 내지 못하는 행위.


앞의 헛다리는 의도를 가지고 상대를 속이는 기술을, 뒤의 헛다리는 무지와 아둔함이 가져온 어이없는 실수를 말한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유통업계에 들이댄 메스가 그야말로 헛다리짚기인데, 그게 전자 기술적 측면의 헛다리인지 후자 무지가 가져온 헛다리인지 당최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무엇이 어찌 됐던 두 헛다리 모두 제대로 잘못짚었다는 것이다.


여당 의원 11명이 지난달 29일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은 매달 2회 의무휴업을 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상업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 점포가 들어설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다만 이번 정부 초부터 업계를 긴장시켰던 대형마트 월 4회 휴업과 백화점, 면세점의 월 2회 휴업은 이번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의 요구에 따라 즉각적으로 규제 카드를 꺼내드는 최근 정부 분위기를 봐서는 언제 다시 논의 될지 모를 일이다.


일련의 개정안 추진이 전통시장과 유통 대기업이 상생하는 길이라는 게 정부와 여당의 논리지만 시장에서는 억지라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위정자들이 소비 패턴의 변화를 인지 못했거나, 포퓰리즘에 근거해 규제를 위한 규제로 밀어 붙인다는 것이다.


수많은 고객들로 붐비고 있는 스타필드 하남 내부 전경.ⓒ데일리안 수많은 고객들로 붐비고 있는 스타필드 하남 내부 전경.ⓒ데일리안


과거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재래시장의 경쟁력이 한순간 바닥을 친 건 사실이다. 힘없는 영새상인들의 설 곳이 공룡 유통기업의 마트라는 것이 등장하며 비좁아 졌다.


그러나 십 수 년이 지나면서 소비 패턴이 이미 크게 변화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 기간 재래시장의 사정은 오히려 더 퍽퍽해 졌다. 재래시장의 어려움이 대형마트 때문에 시작됐다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유통업 규제를 확대한다고 해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오히려 소비자의 불편만 가중될 것이란 비판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미 마트와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방식은 사양길에 접어들어 규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사한 지난 8월 기준 국내 주요 유통업체 매출조사를 보면 오프라인 업체들의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0.4% 증가에 머물렀고, 백화점은 0.8%, 대형마트는 4.7%나 줄었다. 반면 온라인 업체 매출은 13.1% 증가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도 재래시장만큼 위기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오프라인이 절대적으로 강세였던 신선식품까지 온라인 매출이 급증하면서 오프라인 업체들의 숨이 더 가빠졌다.


이런 현실에서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 백화점, 면세점 등의 영업 규제로 재래시장을 살려보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법안으로 국내 유통 빅3의 연간 매출이 최악의 경우 2조40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이란 집계도 나오고 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이러다가 재래지장과 유통업체 모두 공멸할 수 있다.


대기업이니 고집스럽게 제치고 봐야 하는 기술의 헛다리 이건, 시장의 변화를 정확이 진단하지 못한 무지의 헛다리 이건 지금 시장 상황에선 모두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대내외 악재로 숨을 헐떡이는 오프라인 유통기업과 재래시장 모두를 살리는 것은 때아닌 규제가 아니다. 현 시장의 대세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먼저다.

박관종 기자 (pkj31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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