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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버리고 마음을 하나로!


입력 2017.09.24 11:08 수정 2017.09.24 12:12        데스크 (desk@dailian.co.kr)

<생활 속의 작은 영웅들>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화해 이끌어낸 현창하 경우회장

제주도에는 제주도만의 아픈 역사와 상처가 하나 있다. 바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제주 4·3사건이다. 유족들의 상처는 사건을 진압한 경찰 등에 대한 원망과 반목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현창하 씨는 오랜 세월 동안 묵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앞장서서 경우회와 유족회 간의 화합을 이끌어 새로운 관계의 물꼬를 텄다.

제주4.3사건이 남긴 상처와 갈등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는 그 아름다운 모습 뒤에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겪은 제주4.3사건의 아픔이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기에 그 유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것이다. 유족들의 슬픔은 사건을 진압한 측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여전히 살아있다. 재향 경우회(이하 경우회) 회장인 현창하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주4.3사건 당시 진압한 주체는 크게 군(軍), 경(警), 서북청년단이 있었어요. 하지만 외부에서 투입된 서북청년단이나 군은 사건이 일단락된 후 돌아가 버리고, 제주 경찰이 남아 마무리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결국 희생자 유족의 한과 원망은 경찰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죠.”

외지에서 투입된 군, 서북청년단이 떠난 후 제주도는 죽음과 공포가 떠다니는 어두운 섬이 되었다. 낮과 밤에 따라 서로 다른 민낯을 드러내며 서로가 서로를 해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누군가를 밀고하면 경찰은 그 사람을 잡아가는 일이 반복되었고, 낮에는 경찰의 편에 섰다가, 밤에는 남로당 편에 서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제주도민들 사이에는 엄청난 의심과 불신 그리고 반목만 쌓여 갔다. 그때의 상처와 아픔이 수십 년이 지난 후까지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갈등을 야기하게 된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너무 많았어요. 친구 사이에도, 이웃 사이에도, 동료 사이에도, 제주4·3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다투게 돼요. 왜냐하면 경찰의 입장에 있었는지 희생된 유가족의 입장에 있었는지에 따라 서로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친구와 식사를 한다든지, 아는 지인과 술을 한 잔 하는 자리에서도 제주4·3 사건이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경우에는 서로 격하게 다투는 경우가 제주도민 사이에는 너무 많았다. 경찰과 유족들 간에 극한적인 감정의 골은 너무나 깊어져 버렸다. 갈등 해소를 위한 공청회를 열어도 화합은커녕 그 자리에서 서로 고성이 오가고 집단 폭력 발생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여러 차례가 있을 정도였다. 경찰과 유족 간의 갈등은 도저히 해결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현창하 제주특별자치도 재향 경우회장은 2013년 재향 경우회,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화해 기자회견을 이끌어 냈다.ⓒ국민대통합위원회 현창하 제주특별자치도 재향 경우회장은 2013년 재향 경우회,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화해 기자회견을 이끌어 냈다.ⓒ국민대통합위원회

유족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갈등, 누구도 화해를 원하지 않는 듯 서로를 미워하기만 하던 반목에 대해 누군가는 나서서 해결해야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은 채로 세월만 흘러왔다. 그런데 갈등과 아픔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우회장인 현창하 씨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 회장인 정문현 씨가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서로 화해하기로 의기투합하고 나선 것이다.

“갈등의 역사는 우리 세대에서 끝내고 다음 세대에는 화해의 역사를 물려줍시다!”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말고 서로 화해합시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두 사람만의 마음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힘껏 손을 잡고 화해의 첫 걸음을 떼기로 했다. 그 첫 걸음은 바로 화해 기자회견을 갖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2013년 8월 2일. 제주특별자치도 경우회와 유족회가 서로 화해하기로 했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현창하 씨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합동 기자회견을 이렇게 떠올린다.

“저희 두 단체가 화해를 위한 합동 기자회견을 가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제주도 안에 상존하고 있는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자회견을 연다고 했을 때, 외적으로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사상적 오해도 있었고요. 또 내부적으로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제 선배들도 제주4·3사건을 경험한 세대였는데 그분들 입장에선 무조건인 화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두 단체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자회견의 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기자회견은 본격적인 시작이었을 뿐이다. 그 이후 첫 화해를 기념하여 매년 화합의 모임을 가졌다. 2014년 8월 2일, 2015년 8월 2일에 두 단체가 합동으로 제주시 충혼묘지(경우회측)와 제주4·3평화공원을 공동으로 참배하였고 올해 2016년에도 역시 같은 날 합동 참배하며 화해를 이어가고 있다.

“두 단체가 의기투합했다고 해서 제주도민들 사이에 쌓인 갈등과 반목의 마음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표성을 가진 두 단체가 화해를 천명하고 또 화해를 위한 행보를 보임으로써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도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두 단체는 실질적인 화합을 다지기 위하여 합동으로 2014년에는 동남아 순례를 다녀오고, 2015년에는 국내 유적 및 전적지 등을 시찰하였으며, 2016년 올해에는 독립기념관, 현충원 시찰을 함께 하는 등 갈등 해소와 화합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창하 씨는 이렇게 말한다.

“갈등과 반목하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앞으로 우리가 자꾸 만나고 대화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쌓아 나가면 우리 속에 잔존하는 갈등도 서서히 사라지리라 믿습니다.”

두 단체 간 화해의 노력이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으로부터의 화해를 서서히 이끌어 내고 있다. 현창하 씨는 앞으로도 두 단체 간의 화합을 위해, 그리고 그 화합이 제주도민의 마음에 단비처럼 내려 젖어 들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갈등과 반목을 넘어 화합과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앞서서 행동하는 작은 영웅이다.

글/국민대통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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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창하 제주특별자치도 재향 경우회장은 2013년 재향 경우회,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화해 기자회견을 이끌어 냈다. 앞으로 제주도 안에 잔존하는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꿈이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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