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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만명 삶 걸렸는데"…민자역사 국가귀속에 애타는 상인들


입력 2017.09.25 07:00 수정 2017.09.25 07:42        손현진 기자

'국가귀속' 방침에 4천명 일자리 흔들…"정권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다"

1~2년 유예기간에도 회의감 팽배…"정부의 사후관리 미흡했다" 지적도

최소 상가 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5년은 유예기간 줘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일하는 미화요원 모습. ⓒ데일리안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일하는 미화요원 모습. ⓒ데일리안

"저희들은 정부 처분에 따를 뿐이죠. 힘 없는 사람들이니까, 맞죠?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만 7년간 미화요원으로 일해 온 추모(65·여)씨는 지난 21일 "굉장히 당황스럽고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화장실 한 켠에 있는,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미화요원 전용 휴식공간에서 나온 직후였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말 점용기간 30년이 만료되는 영등포역·구 서울역·동인천역 등 3개 민자역사에 대해 국가귀속 방침을 밝힌 데 따라, 이곳에서 운영되는 롯데백화점·롯데마트 등 매장들도 조만간 자리를 내주게 됐다. 문제는 점용기간 만료를 불과 3개월 앞두고 이같은 방침이 공식화됐다는 것이다.

유예기간 1~2년이 거론되고 있지만 확정된 건 없다. 향후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올 지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들 매장을 사용하는 업체들의 영업권과 상인들, 용역업체 직원들의 생계까지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는 이유다.

추씨는 "미화요원들은 살림이 넉넉한 사람들도 아니고 생계 유지하려고 일하는데 다들 나이가 많다보니 일터를 옮기기 힘들다"며 "아직 자식들 여우살이(결혼)도 안했고 지하철 네 정거장이면 올 수 있는 이곳에서 동료들과 가족같이 일해왔는데 친정집을 잃은 것처럼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5층에서 열린 '민자역사 관련 간담회'에도 참석했다고 했다.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가봤는데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며 한숨 지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전경. (자료사진) ⓒ연합뉴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전경. (자료사진) ⓒ연합뉴스

영등포 롯데백화점 10층 식당가 점주들도 억울한 심정을 밝혔다. 이들은 롯데백화점을 상대로 연 단위의 임대 계약을 맺고 수익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지불하며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전대(임대의 재임대) 방식이다. 하지만 역사가 국가에 귀속될 경우 국유재산법에 따라 이같은 재임대는 불가능해진다.

한식매장을 운영하는 공모(50)씨는 "3개 민자역사에 약 4000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이 부양하는 가족까지 다해서 2만명의 삶이 걸린 결정에 대해 정부가 신중했으면 좋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정부가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나조차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아도 어떻게든 직원들을 자르지 않으려 하는데, 하물며 2만명이 걸린 결정을 정부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며 "문재인 정부는 서민의 생활이 최우선이라는 걸 표방하며 정권을 잡았고 첫 업무도 일자리위원회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번 방침을 너무 쉽게 결정한 것 같아 '정권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씨는 1~2년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에 대해 "2년 시한부에 당연히 새로운 임대업자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기존 매장들도 재빨리 대책을 마련해 나가려고 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매출이 떨어져도 롯데도 임대업자도 재투자를 꺼릴테고, 신제품 개발이나 서비스 개선 등이 이뤄지지 않아 매출이 더 떨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최소 3년의 기간은 있어야 대책을 세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씨는 "우리에게 이 문제는 북한 핵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정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소통 창구를 통해서도 적극 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곳 소상공인들은 '투자금액 회수할 기간만이라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냉면 전문점 점주 김모씨는 "우리 매장도 들어온 지 1년밖에 안됐고 6개월 된 다른 매장도 있는데 초기 투자 비용을 1~2년 안에 뽑아낼 방법이 없다"면서 "최소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5년은 줘야 어느 정도 투자금을 회수할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어 "30년 기간이 다 됐으면 롯데가 나가는 건 맞지만 정부가 미리 좀 더 확실하게 해줬으면 대비를 했을텐데, 1년 밖에 남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도 이곳에 입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매장마다 기본 5년 영업은 염두에 두고 입점한다"며 "국가귀속이 정부 방침이다보니 롯데 측에 항의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난감해 했다.

일각에선 민자역사 영업기간을 늘려주는 것에 대해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씨는 "외부에서 보면 이 백화점이 알짜배기 땅에 있고 수익률까지 높으니 계속 영업할 수 있도록 해주면 기업 특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법 무시해달라는 건 절대 아니다. 여기 사람들 좀 생각해달라는 이야기"라며 "일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 전경. ⓒ데일리안 롯데마트 서울역점 전경. ⓒ데일리안

이들 사이에서는 결국 롯데가 영업을 이어갈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감지됐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분식 코너에서 일하는 정모 씨는 "자세한 건 모르지만 말이 많아서 신경 안 쓰고 있다"면서도 "롯데가 무조건 재계약할 거라고 믿는다. 여기선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2층에서 한 스포츠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40대 이모씨는 "여기 사람들은 '정부가 1~2년 유예해 줄 정도면 5년까지는 연장되겠지? 거기서 또 연장되면 10년은 더 할 수 있겠지?'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다"면서 "설마 롯데가 다른 데 영업권이 넘어가게 놔두겠나, 불리한 조건에서도 따내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롯데마트가 자리를 내줘야 할 경우에 대해선 "임대 매장이어도 인테리어는 저희가 부담해서 하는 건데 몇 천만원 들었다"며 "매대 물건은 본사로 반품하면 되겠지만 일단 당장 일거리가 없어질테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추석 선물세트 판매로 분주한 식품매장 모습. ⓒ데일리안 추석 선물세트 판매로 분주한 식품매장 모습. ⓒ데일리안

오래 일한 직원들은 근무지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반찬코너에서 일하는 박모씨는 "식품 쪽은 오래 일한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 옆에 있는 직원도 8년 일했고, 저기 빨간 앞치마 직원도 10년 넘었고 5년 일한 난 약과"라며 "오래 일한 만큼 비교적 편하게 일하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박씨는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생애 마지막 일터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프지 않고 본인이 일할 의사만 있으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겠지만, 직원끼리는 '만약 롯데마트가 1~2년 뒤 자리를 비우게 되면 우리도 종지부를 찍고 졸업하는 걸로 하자, 나이들이 많으니까'라고 틈나는 대로 얘기한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민자역사의 국가귀속을 앞둔 상황에서 소상공인과 점용기간을 초과하는 입점계약을 맺은 롯데역사와 한화역사 측에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정부의 사후관리가 미흡했다는 입장이다.

한 상인은 '민자역사 관련 간담회'에서 "정부는 민자역사 점용기간 만료 공문을 보낸 이후 2년간 뭐했는지 밝혀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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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진 기자 (sonso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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