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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국회와의 소통 위해 노력했다는데


입력 2017.09.18 05:47 수정 2017.10.16 09:5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국회의 권리인 인준안 가부 결정 놓고 적폐라니

세종이 황희 중용한 것은 그가 아니오라고 말하기때문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17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17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국가 주요 공직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권은 주권재민‧권력분립 등 민주주의 원리의 제도적 표현 방식 가운데 하나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해보라.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제도의 의의를 이해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 부결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 아주 격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당일, 그러니까 지난 11일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감정을 쏟아냈다. “상상도 못 했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오늘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다.”

청와대가 이처럼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언론의 상투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그렇게 반응한 것은 경솔한 처사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헌재소장 후보자를 자신의 권한 내에서 지명했듯이 국회의원들은 각자의 판단으로 의사를 표명했고, 그것이 모여 국회의 결정이 된 것 아닌가.

인준안 가부(可否) 결정은 국회의 권리

국회의 공직자 임명 동의권은 집합적으로는 국회, 개별적으로는 의원 각자의 권리다. 민주국민의 상식이다. 야당 의원들이 반대했다고 해서 ‘상상도 못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찬성해야 한다면 동의권은 무의미해진다.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상상하고 예견했어야 할 일이다. 야당을 공격하기 전에 청와대와 여당의 설득 노력이 부족했음을 먼저 돌아보는 게 순서일 텐데 우선 화풀이부터 한 것을 어떻게 옳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헌정사상 처음’이라고 했지만 그게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또 헌재소장 후보자로서는 처음이었지만 국회에서 인준이 거부된 사례는 적지 않다. 1공화국 이래 국무총리 후보자 9명, 대법원장 후보자 1명, 감사원장 후보자 1명, 그리고 이번에 헌재소장 후보자가 처음으로 인준 거부를 당했다.

국회 표결에 이르기 전에 낙마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모른다거나 잊었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의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박근혜 정부 때의 김용준‧문창극‧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등이다. 이들 가운데는 청문회에서 해명할 기회를 원한 인사도 있었으나 당시 야당은 매몰차게 외면했다.

민주당의 반응도 청와대와 다르지 않았다. 동의안이 부결되자 추미애 당 대표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헌법재판소장 인준 부결은 탄핵 불복이고 정권교체 불인정”이라며 “탄핵을 완수한 국민이 바라는 적폐청산을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함께 짓밟았다”고 비난했다.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자유한국당과 보조를 맞춘 국민의당도 적폐연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몰아세웠다. 정치 파트너를 ‘적폐’로 규정해 버리고 누구와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정치가 선악의 대결과정이라면 민주정치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야당들이 적폐면 누구와 정치하나

청와대와 민주당은 마치 그 이후엔 야당과 함께 할 일이 없을 듯이 험하게 퍼부어 댔다. 그래놓고 청와대 윤 국민소통수석은 17일 국회에 대해 “사법부 수장 공백 막아달라”며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준을 호소하는 대통령의 입장문을 낭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글에서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에 노력했지만 부족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돌아오면 각당 대표를 모시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럴 것이었으면서 윤 수석은 왜 그처럼 격하게 야당을 비난했을까? 그가 어떻게 수습해 갈 것인지 지켜볼 만한 일이라 하겠다.

이제 민주당도 국민의당 사과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민주당이 마지못해서라도 사과를 하면 국민의당은 이를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대법원장 인준이라는 고비는 넘는다고 하자. 이로써 청와대가 인사 파동을 아주 극복할 수 있을까? 그간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이미 정부는 이미지와 신뢰성에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이 부담은 오래 가게 마련이다.

헌재소장 인준 부결만이 쇼크였던 게 아니다. 장차관(급) 인사에서 이미 7명 째의 낙마자가 나왔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 받은 지 22일 만인 지난 15일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부적격’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여당까지 묵시적 참여를 해 작성된 보고서를 문 대통령이 무시하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퇴를 거부하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낙마가 아니라 임명강행이란 인사 난맥상도 거듭 노출됐다. 대통령이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이 4명에 이르렀다. 이 역시 정부가 앞으로 오래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다.

인사 파행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인사권자 측으로서는 설명이라도 제대로 해줘야 한다. 청와대는 지난 6월 20일 인사 검증 부실 논란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참여정부 때의 예에 따라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가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다시 장관 후보자가 사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별다른 해명 없이 박 후보자가 사퇴했으니 대법원장 인준에는 협조하라고 오히려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완전무결한 검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 정도는 가져야 한다. 말만 번지레하고 실속이 없을 때 그 부담은 저잣거리를 빙 돌며 부풀어 오른 다음 바로 인사권자 자신에게 돌아간다. 이 역시 상식이다. 임기 후반의 역대 정부를 가장 괴롭혔던 게 인사 후유증이었음을 기억할 일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적에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제시하며 호기를 보였다. 보수정권의 인사타락상과 함께 자신의 인사개혁 의지를 부각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흠결 없는 인사를 구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막상 대통령이 되어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문 대통령은 자승자박의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처음부터 신뢰의 위기에 봉착한 셈인데 청와대는 진지하게 반성하고 국민에 대해 해명 및 사과를 하는 대신 ‘강행’ 정신을 발휘했다.

‘파뉘르주의 양떼’가 생각나서…

현 정부의 인사가 과거보다 더 잘못됐다고 말할 계제는 아니다. 아직 더 두고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주요 구성원들이 그간 공격하고 비난하고 조롱했던 과거 정부들의 예에 비해 썩 나아지지도 못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격에만 익숙했던 사람들은 반성 개선 사과에는 서투르다. 언제나 자신들이 옳다는 이상한 자기 확신은 독선주의로 이어지기 쉽다. 독선은 독단·독주를 낳는다. 그런 정부가 성공한 예는 찾기 어렵다. 정부 출범초기의 대중적 지지와 인기가 끝까지 갈 것이라고 믿는 것보다 더한 오산은 없다.

이왕 인사 이야기를 하던 중이니까 ‘코드 인사’에 대해서도 말하기로 하자. 인사에 있어서도 지향점이 분명한 것은 바람직하다. 가능하면 인사권자와 이념적 성향이나 노선, 정책 방향과 목표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인사를 발탁하고 싶어 하는 것은 그리 문제될 일이 아니다. ‘캠프 인사’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획일적 코드인사는 자제돼야 한다. 방향타가 계속 오락가락하는 것도 안 좋지만 한쪽으로 고정되는 것은 더 위험하다. 독선의 정치가 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코드 인사는 직언 충고 반대 등의 여지를 없애 버린다. 리더가 결심하면 무비판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따르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것이 국정을 한 방향으로만 몰아가게 된다. ‘파뉘르주의 양떼’ 이야기가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야당 언론 등 외부에서의 비판은 정부의 방어기제만 강화시켜 놓는다. 반대 의견은 집권자의 면전에서, 정책 입안 과정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이 고대 왕조 때부터 통치자 옆에 간관을 둔 까닭이다.

세종만한 성군, 황희만한 명상이 없다고들 한다. 황희는 영의정만 18년, 좌‧우의정 재임 기간 까지 합치면 정승경력이 24년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예스맨이 아니었다. 정작 그는 대표적 반대자였다. 그 좋은 예가 공법(貢法) 도입 문제였다. 왕이 이를 공론에 붙인지 22년이 걸려서야 전국적으로 시행될 수 있었을 만큼 세종은 신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시행했을 만큼 의지가 굳었다. 이 제도의 시행에 대한 대표적 반대자가 바로 황희였다. 그 또한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경우뿐만 아니었다. 세종이 중년 이후에 새로운 제도를 많이 제정하고자 했는데 황희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런데도 세종은 그를 중용했고 신뢰했다. 공명정대한 판단력과 대국을 보는 안목을 높이 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황희야 말로 균형추 역할을 든든히 할 수 있다고 믿었으리라 짐작된다.

다시 상식을 말한다. “아니오!”하는 목소리가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당당히 나오게 하는 것이 성공하는 정부의 제1조건일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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