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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합성사진까지, 이명박 국정원의 충격


입력 2017.09.15 13:40 수정 2017.09.15 15:17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안보 담당 국가기관이 치졸한 공작

배우 김여진씨는 14일 밤 트위터를 통해 "2011년의 사진이라지요. 그게 그냥 어떤 천박한 이들이 킬킬대며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 기관의 작품이라구요. 가족들을, 아니 지금 이곳에서 함께 촬영하고 있는 스태프 얼굴을 어찌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일이다. 아무리 되뇌어도 지금의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김여진 씨 트위터 화면 캡처. 배우 김여진씨는 14일 밤 트위터를 통해 "2011년의 사진이라지요. 그게 그냥 어떤 천박한 이들이 킬킬대며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 기관의 작품이라구요. 가족들을, 아니 지금 이곳에서 함께 촬영하고 있는 스태프 얼굴을 어찌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일이다. 아무리 되뇌어도 지금의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김여진 씨 트위터 화면 캡처.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좌파 연예인 대응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블랙리스트 작업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문성근, 명계남, 김제동, 김미화, 권해효, 문소리, 윤도현, 신해철, 김장훈, 봉준호, 박찬욱, 류승완 등 82명이다. 청와대에 보고된 사안이라는 점도 확인됐다. 이명박 정부가 문화예술계 좌파 적출을 한다며 일종의 살생부 작업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었다. 그때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는 ‘좌파성향 감독들의 이념편향적 영화 제작 실태 종합 및 좌편향 방송PD 주요 제작활동 실태’(2009년 9월, 기획관리비서관) ‘좌파 연예인 비판활동 견제방안’(2010년 4월, 기획관리비서관), ‘좌편향 연예인들의 활동 실태 및 고려사항 파악’(2010년 8월, 민정수석), ‘KBS 조직개편 관련 좌편향 인사 여부’(2010년 5월, 홍보수석), ‘좌편향 성향 언론인·학자·연예인이 진행하는 TV 및 라디오 고정 프로그램 실태’(2011년 6월, 홍보수석) 등 각종 문서를 내려보내 실태 파악을 수시로 지시했다고 한다.

업무 일지 내용도 충격적이다. 블랙리스트 연예인 소속 기획사 세무조사 유도, 영화제 위원장 배제 유도, 방송 진행자 교체 유도, MBC 출연 원천 차단 및 프로그램 폐지 유도, 방송대상 선정에서 탈락 요청, 라디오 제작자 지방 전보발령 유도, 좌파 방송인 사법처리 유도, KBS 등 공영방송에서 퇴출 유도, 엠넷 특정 프로그램 방영 연기 등 믿기지 않는 내용들이다.

조정래 작가는 당시 갑작스런 강연 취소가 비일비재했고, ‘아리랑’의 드라마 제작이 결정됐다가 갑자기 무산됐다고 한다. 진중권도 갑작스런 강연 취소 등을 당했다. 양희은은 당시 이상하게 한가했었다고 한다. 김미화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중에 어떤 사람들이 불쑥 들어와서 대본을 보자고 요구했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들로 추정된다고 이야기했더니 당시 국정원이 고소한다고 했다가, 김미화가 증거가 있다고 한 후 고소가 없었다고 한다. 김미화의 집에까지 국정원 요원이 찾아갔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거의 80년대 초 국보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김제동에겐 VIP에게 직보한다는 국정원 요원이 동네로 찾아와 ‘VIP의 걱정이 많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에 참석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동 씨도 방송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덧붙였고 하는데, 이건 당연히 협박으로 들리는 말이다. 당시 김제동은 ’VIP에게 전하라‘며 '지금 대통령 임기는 4년 남았지만 내 유권자 임기는 평생 남았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그 집(청와대)은 전세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고는 집에 가서 무릎이 풀렸다고 했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이야기다. 국정원 요원이 김제동을 만났다는 보고 메시지를 자기 상관이 아닌 김제동에게 실수로 보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도 있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문성근과 김여진의 부적절한 관계 이미지를 꾸며내 명예를 실추시키자는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는 황당한 뉴스도 터졌다. ‘공화국 인민배우 문성근, 김여진 주연 - 육체관계’라는 타이틀의 나체 합성 사진이다. 추잡한 일이다. 당시 김여진은 섭외 후 갑자기 취소되는 일이 있었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우파 논객과 토론할 예정이었는데 하차당했다. 문성근은 정권이 바뀐 최근에야 드라마에 복귀했다.

국정원의 활동은 여론 조작으로까지 이어졌다. ‘문화·연예계 종북세력이 암적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댓글을 달고, 아고라 토론 게시판에 ‘특정 연예인 교체는 인기 하락에 따른 당연한 조치’라는 식의 게시글을 올렸다고 한다. 심지어 블랙리스트 연예인에 대한 ‘찌라시’를 제작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A급 연예인은 연예활동에 대한 실질적 제제조치를 시행하고, B급은 계도 조치’한다는 말도 나왔다. 연예인에게 계도 조치라니, 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연예인과 이념적으로 아무 상관없는 소속사에 대해서까지 세무조사 등으로 불이익을 주려 했다는 점도 황당하다. 그야말로 뿌리째 뽑아버릴 셈이었던 걸까?

이준기, 김가연이 단지 ‘화려한 휴가’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찍힌 것도 황당하다. ‘변호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송강호에게 불이익을 준 박근혜 정부와 비슷한 사고방식이다. 박미선, 김구라, 이하늘은 시사풍자쇼인 ‘명랑히어로’에 출연한 죄다. 개그맨 황현희는 자신이 왜 찍혔는지 영문을 모르고 있다. 유준상은 단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철거되자 대검찰청 국민의소리 게시판에 한 마디 남긴 죄로 찍혔다. 그야말로 아무 소리도 말라는 겁박 아닌가.

블랙리스트에 없는 사람들도 찍히면 당했다. 유시민은 ‘황금어장’에서 섭외하려다 불발됐다고 한다. 김형석은 ‘복면가왕’에서 중도 하차했다. 서민 교수는 ‘컬투의 베란다쇼’에서 하차했다. 오상진, 박혜진 등은 출연배제를 당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해괴한 일을 벌였다. ‘엔터테인먼트’ 파트를 설치해 영화계 사찰 및 우익 성향 영화 제작 유도 공작을 벌였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 주연 영화에 제작비를 30억 정도 대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한 투자배급사 임원은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 영화 제작 일정을 일일이 국정원이 확인하는 시대에 무슨 창조경제가 되고 문화융성이 있었겠나”라고 했다. 이 역시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를 통한 블랙리스트만 해도 충분히 황당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더 충격적이다.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국정원이 국내 연예인을 대상으로 치졸하기까지 한 공작을 벌였기 때문이다. 국기문란 그 자체인 사건이다. 신군부는 내국인을 상대로 물리적 전쟁을 벌였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내국인을 상대로 문화전, 심리전을 감행했다. 어디까지 내려가야 이 사태의 바닥이 드러날지 암담하기만 하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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