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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왜 시장은 '규제'라 쓰고 '부양'으로 읽는가


입력 2017.09.12 06:00 수정 2018.01.19 10:10        박민 기자

공급책 없이 연이은 규제책만 쏟아져…역효과 경계해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에서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에서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요즘 말로 부동산 '규제'라 쓰고 '부양'으로 읽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정치적 성향이랑 학습효과 탓이 크겠죠. 현 정부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노무현 정부 때도 집값을 잡기 위해 아무리 규제를 가해도 고공행진 했는데 지금도 그때랑 비슷한 대책들이 나오는 데다 여전히 금리는 낮고, 서울 주택은 부족하고...결국, 수급여건만 놓고 봐도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볼 수밖에 없겠죠."

'왜 시장에 규제를 계속 가하는데도 여전히 집값은 잡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이었다. 일반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인위적으로 규제를 가하면 바로 잡히거나 왜곡되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지만, 현 상황에서는 왜곡되는 측면이 훨씬 클 것으로 바라본 것이다. 물론 이들 개인의 판단이 전체를 대변하는 공식적인 분석은 아니지만 궁금했다. 왜 이러한 해석을 내놓는 것일까.

지난해 5월 출범한 현 문재인 정부는 고공행진 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6.19대책을 통해 서울 비롯한 전국 37개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하고, 1순위 청약 자격 및 분양권 전매제한을 가했다. 집을 담보로 한 무분별한 금융대출(LTV·DTI)을 막기 위해 종전보다 10%포인트씩 강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잡히지 않자 급작스럽게 발표한 8.2대책을 통해서는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까지 그야말로 규제 패키지를 꺼내 들었다. 센 놈 중의 센 놈이라 일컫는 규제다. 여기에 주택법, 주택공급규칙,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법령 등 주택과 관련한 여러 법령을 개정해 종전보다 규제도 훨씬 강화했다.

규제만 놓고 보면 다주택자들은 집을 사기 어려워져야 정상이고,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도 시세차익을 노릴 수 없게 된다. 특히 서울의 집값 시세를 견인하는 대부분이 투자성향이 강한 '재건축' 단지인데, 이들 단지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야 했다. 조합원 지위 양도제한, 조합원 분양권 전매제한 등 투기 원천봉쇄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쏟아지는 부동산 규제에도 시장은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주머니 속 추가 부동산 대책'이 있다고 시장에 엄포를 놓았지만, 여전히 부동산 시장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주인이 없어 누구든지 먼저 차지하면 임자가 되기 때문에 남들이 이익을 얻기전에 서둘러 달려드는 모습이 여전하다.

특히 정부는 신규 분양시장의 고분양가를 잡기 위해 최근 8.2대책 후속 조치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도 부활시켰다. 내년부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도 부활할 예정이어서 조합들은 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규제의 적당한 선에서 이익을 최소화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게 정상이지만 시장 움직임은 또 그렇지 않다.

정부의 논리대로 하면 상한제 부활로 주택 시장 전반적으로 가격 급등을 잠재우고, 적정가격의 신규 주택 공급을 유도해 결국 주거안정으로 귀결돼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규제책'이라 쓰고 '부양책'이라 읽고 있다. 오죽하면 현재 재건축을 추진중인 일부 단지들 가운데 이익을 더 챙기기 위해 '후분양제'로 사업을 추진할지 검토한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다.

데일리안 생활경제부 박민 기자 데일리안 생활경제부 박민 기자
'후분앙제'는 과거 정부가 주택소비자 권리를 위해 추진하려다 업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오히려 공급자 쪽에서 먼저 얘기가 나올 정도다. 실제 신반포 15차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 대우건설은 조합 이익을 극대화하는 '골든타임 후분양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고,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시공사 입찰에서도 GS건설과 현대건설이 나란히 후분양제 시행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서울 주택 공급 대부분이 재건축, 재개발 아파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럴 경우 결국 소비자들은 자칫 현재보다 더 높은 집값 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다. 또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으로 사업이 발목 잡혀 느긋하게 진행될 경우 결국 수급여건이 더 악화하며 집값 안정화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일각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이러한 부정적 전망에 대해 원론적인 대답을 내놨다. "한 방에 해결되려면 지금껏 주거 문제가 해결됐겠지 안됐겠습니까. 어차피 시장은 수요와 공급입니다. 수급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규제만 가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요." 이 교수는 규제 때문이라기보다 규제에 따르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는 개인들의 자발적 순응이 뒤따를 때 결국 집값 안정은 달성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강한 규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규제의 역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박민 기자 (mypark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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