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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통상임금 패소 일파만파…현대차·협력사·소비자까지


입력 2017.08.31 16:32 수정 2017.08.31 21:19        박영국 기자

소급분 1조에 미래 인건비도 상승…자동차 가격 인상 가능성

현대차 등 완성차 업계, 3000여 부품 협력사도 피해

기아자동차가 31일 통상임금 1심 판결 선고에서 패소하며 자동차와 부품업계는 물론 전 산업계, 나아가 소비자들에게까지 큰 파장이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서울 양재동 신호등 뒤로 보이는 기아차 본사 전경.ⓒ연합뉴스 기아자동차가 31일 통상임금 1심 판결 선고에서 패소하며 자동차와 부품업계는 물론 전 산업계, 나아가 소비자들에게까지 큰 파장이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서울 양재동 신호등 뒤로 보이는 기아차 본사 전경.ⓒ연합뉴스

기아자동차가 31일 통상임금 1심 판결 선고에서 패소하며 자동차와 부품업계는 물론 전 산업계, 나아가 소비자들에게까지 큰 파장이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공판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청구한 원금 6588억원에 이자 4338억원이 붙은 합계 1조926억원 중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원을 인정한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회사측이 제기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1차적으로 기아차의 경영 위기로 이어진다. 기아차는 재판부의 판단금액에 전체 인원 확대 적용 및 소송에 포함되지 않은 기간의 소급분까지 더하면 1조원 가량을 3분기 실적에 즉시 충당금으로 반영해야 한다.

당장 3분기 적자는 불가피한 상황이고 연간 실적도 크게 악화될 전망이다. 기아차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7868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4.0% 감소했다. 이 돈을 몽땅 충당금으로 쏟아 부어도 부족하다.

중국 사드 사태와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의 부진으로 하반기 실적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재판부 인정 금액이 줄어 그나마 연간 적자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큰 폭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1조원 소급분보다 무서운 미래 지급분
당장 큰 돈이 들어가야 되는 과거 소급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미래 지급분이다. 이날 재판의 최대 쟁점은 재판부의 ‘신의칙’ 인정 여부였지만, 사실 대원칙은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이날 정기상여금과 중식대는 소정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만큼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과거 소급분 지급도 이에 따른 것이고, 앞으로도 기아차는 연장·야간·휴일근로시 이 통상임금 해석을 기준으로 50%를 할증해 지급해야 한다.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올라가니 그만큼 야근·잔업 할증 임금도 올라간다. 기아차는 기존보다 약 50% 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한우 기아차 사장은 지난 22일 ‘자동차산업 진단과 대응’ 간담회에서 그는 “과거분보다 미래분이 더 걱정”이라며 “자동차 산업 특성상 야근·잔업이 많은데, 앞으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되면 현재보다 50% 이상 더 줘야 한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인건비가 높은 기아차로서는 수지를 맞추기 힘든 구조다. 지난해 기준 기아차 평균 임금은 9600만원에 달했다. 그렇다고 시장 수요에 적기 대응하려면 야근 등을 포기할 수도 없다.

임금 체계를 기본급 위주로 개편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매년 임금협상 때마다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해온 노조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현대차 노조도 기아차와 동일조건 요구 가능성
기아차 근로자들이 기존보다 50% 높은 야근 비용을 받는다면 같은 계열의 현대차 노조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박 사장은 “현대차와 기아차가 똑같이 야근하는 데 기아차가 현대차의 1.5배를 지급하는 식이라면 야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면서 “현대차 노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노동시장에 분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현대·기아차 노조는 임금협상 등에서 보조를 맞춰 왔다. 현대차 노조가 일정 수준에 임금협상을 타결하면 기아차 노조도 각종 수당 지급 명목만 다를뿐 실질적으로 동일한 조건에 합의하는 식이었다. 둘 중 어느 한 쪽이 유리하면 다른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 구조다.

현대차 노조는 이미 통상임금 소송에서 최종 패소한 상태다. 현대차 상여금 세칙에는 상여금이 고정임금이 아님을 증명하는 문구가 있어 다시 소송을 제기하긴 힘들다. 대신 다음 임금협상 때 회사측에 기아차가 법정 싸움을 통해 받아낸 것과 동일한 조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 노조는 다음달 새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있다. 후보들이 조합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이를 공약으로 내세울 여지가 크다. 이후 임금협상 때는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장기 파업 사태를 벌일 수도 있다.

결국 임금협상에서 승소한 현대차까지 기아차와 동일한 임금 상승 압박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인건비 부담 높아지면 부품협력사·소비자도 피해
임금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높아지건, 야근 축소로 생산물량이 줄어들건 그 피해는 수천 개 협력업체에게 돌아간다.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는 334개사에 달하며 2~3차 협력사까지 확대하면 3000여개에 달한다. 이들은 납품가 인하 압력이나 주문량 축소에 따른 피해를 걱정해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판결 직후 “완성차 업체에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협력업체로 전가하면서 중소‧중견 부품업체와의 임금격차 확대로 근로자간 임금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며 “자동차부품산업의 근간 업종인 도금·도장·열처리 등 뿌리산업 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생산원가가 올라가면 자동차 판매가격 인상도 불가피해져 소비자들도 피해를 본다. 현대·기아차는 국내 시장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업체다.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현대·기아차의 가격정책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3사는 현대·기아차 만큼의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급 차종이라면 다른 완성차 업체들의 차량 가격이 현대·기아차의 것과 비슷하거나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지 더 저렴한 경우는 많지 않다.

즉, 현대·기아차가 가격을 올리면 국내 전반적인 자동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여지가 높다.

현대·기아차 근로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면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임금인상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현대·기아차는 경쟁사들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다. 쌍용차의 경우 지난해 평균 임금이 현대·기아차의 80%를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경쟁사들의 임금 상승 역시 자동차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된다.

이번 기아차 판결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2013년부터 지난 6월말 기준 115개 사업장(100인 이상)에서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과거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포함될 경우 산업계에서 38조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은 산업계와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라며 “상급심에서는 이를 고려해 더욱 신중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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