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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폭탄 맞은 기아차, 4000만원 로또 맞은 노조


입력 2017.08.31 12:43 수정 2017.08.31 13:55        박영국 기자

3분기 실적에 즉시 반영…대내외 악재속 재정부담까지

"노조가 목돈 챙기고 일터 위태롭게 만드는 꼴"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조립라인에서 근로자들이 K3에 의장부품을 조립하고 있다.ⓒ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조립라인에서 근로자들이 K3에 의장부품을 조립하고 있다.ⓒ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가 결국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에서 패소해 조단위 ‘폭탄’을 맞게 됐다. 반면 노조는 임금협상 당시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수천만원의 ‘목돈’을 챙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공판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초 노조 측이 청구한 1조926억원(원금 6588억원, 이자 4338억원)보다는 낮은 4223억원의 금액만 인정했지만 여전히 회사측에는 큰 부담이다.

이는 기아차 근로자 2만7424명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3년 2개월간의 통상임금 소급분을 지급해달라는 부분에 대한 판단금액이다. 이를 기아차 전체 인원으로 확대 적용하고 2011년 11월부터 2017년 현재까지 소급분까지 더하면 회사가 부담해야 할 돈은 1조원까지 올라간다.

이번 판결은 최종 확정이 아닌 1심이고 회사측은 즉시 항소 방침을 밝혔지만, 일단 판결이 나면 즉시 충당금 적립의무가 발생해 이 금액을 3분기 실적에 충당금으로 반영해야 한다.

기아차는 상반기 786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 동기대비 44.0% 감소한 규모다. 이 돈을 몽땅 충당금으로 쏟아 부어도 부족하다.

중국 사드 사태와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의 부진으로 하반기 실적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재판부 인정 금액이 줄어 그나마 연간 적자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큰 폭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3분기 적자는 사실상 확정됐다.

자동차 업체는 매년 여러 종의 신차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아야 생존이 가능하다. 신차 한 대당 개발비용으로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돈을 벌지 못하면 신차 개발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회사는 생존의 기로에 놓였지만 이 회사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근로자들은 인당 수천만원 규모의 ‘로또’에 당첨된 셈이 됐다. 청구 금액이 전부 받아들여졌다면 개인당 1억원씩 받았겠지만 1심 재판부의 일부 인정 액수대로라면 개인당 약 4000만원 수준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돈이 ‘로또’에 비유되는 것은 과거 임금협상에서 노조 측이 ‘받아야 할 금액’으로 판단하지 않았었던 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들은 임금협상에서 관행적으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했었다. 기아차 노사 역시 그동안 매년 임금협상에서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합의했다. 그런 전제가 아니었다면 기아차 노조가 ‘돈을 떼인’ 것을 알고도 순순히 임금협상에 합의했을 리가 없다.

재판부도 이같은 관행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기아차)와 노동조합은 임금협상 과정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기본급과 각종 수당의 증액 규모 및 임금 총액의 규모 등을 정하는 실무가 장기간 계속되어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따라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상호 전제한 임금인상률을 훨씬 초과하여 피고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재판부는 회사측이 제기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원고들(노조)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당해 법정수당의 근거가 되는 과거의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로 생산한 부분의 이득은 이미 피고가 향유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되는 정도가 중하고 명확하다고 인정되는 정도에 이르러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노조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전제 하에 임금협상을 체결했다가 나중에 합의된 금액 외의 돈을 받아내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는 점을 재판부도 인정하지만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된 부분이니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회사가 항소 방침을 밝힌 만큼 상급심에서는 다른 판결이 이뤄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회사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됐고 그 회사에 속한 근로자들은 횡재를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상급심에서까지 같은 판결이 이뤄진다면 기아차 근로자들은 목돈을 챙기게 되겠지만, 그게 자신의 일터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이라며 “경영 위기에 빠진 기업이 언제까지고 직원들을 풍족하게 해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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