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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이라는 호랑이 등에 타고 권력을 추구하면…


입력 2017.08.28 04:32 수정 2017.10.16 09:51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브랜드 가치 세계 10위 CEO가 89억원을 뇌물로?

세계 GDP순위 11위인 대한민국 대통령이 묵시적 압력을?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초청 오찬 및 간담회에서 의원들과 함께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초청 오찬 및 간담회에서 의원들과 함께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연합뉴스

“다만, 피고인들은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나 이를 구성하는 개별 현안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적극적, 명시적으로 청탁을 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여 뇌물을 공여한 것이다.(중략) 피고인들이 위와 같은 대통령의 지원 요구에 응함으로서 승계작업에 관해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은 인정되나, 더 나아가 위 부정한 청탁의 결과로 대통령의 직접적인 권한행사를 통해 피고인들이나 삼성그룹이 부당하게 유리한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지는 않는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재판 판결문 부분).

법률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해독이 안 되지만, 법관들도 생각 밖으로 말 꾸밈에 능하다는 느낌을 주는 문장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헌법과 법률은 원래 표현이 명확해야 하니까 판결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양심’이라는 것이 판결문에 조화를 부릴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묵시적 청탁 대가로 준 뇌물?

삼성전자 측이 먼저 ‘승계작업’ 관련 청탁과 함께 뇌물을 준 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달라 해서 마지못해 줬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그게 ‘묵시적 부정청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로 삼성이 부당하게 유리한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의 대가로, 직접 권한을 행사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는 뜻인가).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문장력은 대단한 것 같은데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판결문이 난해하게 된 데는 법관의 ‘양심’이 작용한 때문이 아닐까? 법대로 판단했다면 아마 이보다는 훨씬 명료해졌을 것이다. 개개인의 양심을 잴 수 있는 객관적 척도는 없다. 이야말로 ‘그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명확히는 말고 대충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느라 문장이 그처럼 복잡하고 난해하게 된 것은 아닐까?

어떻든 이렇게 함으로써 삼성그룹 이 부회장은 일단 죄인이 되었다. 5년형은 유죄로 인정된 죄목에 적용되는 형기로는 가장 짧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대 재벌의 CEO에게 그 정도의 형이라도 선고하기까지는 법관의 고뇌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 덕분에(?) 항소심에서 무죄까지는 몰라도 집행유예는 기대할 만도 하게 된 것 같다.(브랜드 가치 세계 10위, 지난해 총매출액 201조 원의 삼성전자 CEO가 승마 지원 73억여 원, 영재센터 16억여 원 등 89억여 원을 뇌물로 바쳤다? 삼성전자 경영권 승계의 대가로? 연간 400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반이자 세계 GDP순위 11위인 대한민국 대통령이 89억여 원의 뇌물을 받자고 최대기업의 총수에게 묵시적 압력을 넣었다? 훗날 언젠가는 풀릴 수수께끼다.)

이 판결로 미루어 짐작컨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무래도 오랜 옥살이가 불가피할 듯하다. 그가 뇌물을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그 돈을 공동정범인 최순실이 받았으니 뇌물죄가 성립된다는 게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의 요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서라고 판사의 판단이 달라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최 씨 재판에서 뇌물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이 또한 박 전 대통령의 족쇄가 된다. 수동적으로 뇌물을 바친 사람보다는 적극적으로, 그러니까 ‘강압적으로’ 뇌물을 요구한 사람의 형량이 무거워질 것은 정한 이치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의 혐의사실은 이 부회장의 경우보다 훨씬 복잡하고 많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예감케 된 셈이다.

그래서 다시 병신~정유 양년간의 정변을 되짚어보게 된다.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헌법 제65조 제①항)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동 제84조)

정치보복의 연쇄 고리 끊어야

탄핵 정국에서 국민이 익히 알게 된 헌법 규정이다. 탄핵은 국회가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하는 구조다. 즉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정치적 징계라 하겠다. 따라서 반드시 내란 또는 외환의 죄에 갈음될 만한 중죄가 아니라도 탄핵소추를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국민의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의 지위는 특별히 존중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심대하게 침해한다든가, 엄청난 규모의 부정축재를 하는 등의 잘못을 저지를 경우가 아마도 탄핵사유에 해당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에도 불구하고 헌재에서 기각결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과오가 있기는 했어도 파면을 당할 만큼은 아니라는 판단 덕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년도 채 안남은 임기조차 채우게 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중죄를 저질렀던 것일까?

한마디로 박 전 대통령은 권력을 남용하고 파워를 과시한 때문이 아니라 고립무원의 처지에다가 허약한 리더십 탓으로 축출당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가지 못한 채 1970년대의 의식과 인식에 갇혀 있었던 탓이다. 그런 정치행태가 집권 여당으로 하여금 총선에서 참패하게 하는 단초가 됐다. 정치권이 대통령에 대해 책임추궁을 할만 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평의 참여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판단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야 할 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지도 않았다. 파면으로 얻어질 정치적 법적 이익이 컸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소수의견’ 하나 없이 ‘파면’을 결정한 것은 아마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군중과 야당들, 특히 차기 대선 당선이 확정적인 것처럼 여겨지던 어느 정치인의 공공연한 압박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하나마나한 말이 되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작년 12월 5일 새누리당의 ‘4월 퇴진, 6월 대선’안을 수용한다고 했을 때 길을 틔워주는 게 옳았다. 그런데 야당과 군중들은 그 퇴로를 막아버렸다. 탄핵으로 쫓아내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형사적 책임도 물어,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아주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기세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 가운데는 ‘복수’를 맹세한 사람도 없지 않았을 법하다.

탄핵되기 무섭게 특검이 득달같이 박 전 대통령의 신병을 낚아챘다. 그리고 참으로 다양하고 굉장한 혐의사실에 가십성 에피소드까지 보태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제공함으로써 인격적으로 만신창이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 기소를 했고, 엊그제 연루자들 가운데 삼성그룹 이 부회장에 대한 1심판결이 나온 것이다.

법관이 아무리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직책이라고 해도, 이 역시 사람의 일이다. 판사도 재판정을 벗어나면 일개 시민으로 돌아간다. 세평이나 군중의 목소리에 초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권력분립이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한들 정권의 눈치 또한 안 볼 수 있겠는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무죄선고를 내릴 법관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는 말이다.

정상은 바로 하산의 기점이다

달리는 모든 것에는 브레이크가 필수적이다. 그건 운전자 자신의 생명보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의 브레이크는 그 중에서도 중요하다. 그게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할 때 비극은 준비된다. 징벌을 가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해서 가혹한 수단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 모두는 서로에게 동료다. 결정적 파워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최후의 일격은 아껴야 한다. 그게 정치 동료뿐만 아니라 정치 그 자체에 대한 예의다.

영원히 가는 정권은 없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27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최소 20년 이상의 연속 집권’을 목표로 제시했다. 한껏 욕심을 내도 20년이 고작이다. 설령 박 전 대통령이 큰 죄를 저질렀고, 본인이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정치적 징벌에는 보복이 따르게 마련이다. 박 전 대통령 자신이 못하면 그 추종자들이라도 할 수가 있다. 정치보복(일반론으로 하는 말이다)의 연쇄 고리는 누군가 용기를 내서 과감히 끊어줘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군중은 호랑이다. 군중이 만들어 내는 권력도 호랑이다. “과거에 어리석게도, 호랑이의 등에 타고 권력을 추구했던 자들은 결국 그것에 먹히고 말았던 사실을 잊지 말자”고 했던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 대목은 새겨들어 둘 만한 경구다. 정상은 바로 하산의 기점임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덧붙일 것이 있다. 광장의 성난 군중이 주도하는 정치를 직접민주정치라고하지는 않는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치는 소국이니까 가능했다. 아테네의 전체 인구가 가장 많았던 때도 32만 명 안팎이었다. 그 중 참정권을 가진 시민은 4만 명, 그나마 민회에 출석하는 시민의 수는 많아야 6000명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전설은 아름답고 현실은 가혹하다. 훗날로 미루지 말고 지금 깨달을 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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