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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판결, 자유심증의 한계 벗어났다


입력 2017.08.27 06:16 수정 2017.08.27 10:04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법 논리보다 권력-여론-법사이 눈치 판결

뇌물죄 부정 청탁의 경우 반드시 구체적 특정돼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데일리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데일리안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법정증거주의' 대신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규정이다.

이에 따라 법관은 자유롭게 증거의 취사선택을 할 수 있고, 모순이 되는 증거가 있는 경우에 어느 증거를 믿을 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아울러 동일 증거의 일부만을 믿거나 다수 증거를 종합한 종합증거에 의하여도 사실인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자유심증주의에 있어서 자유가 '자의(恣意)'를 의미할 수는 없으며, 사실인정이 '법관의 전단(專斷)'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이미 확립된 법원칙이다.

합리성과 객관성을 결여한 증거가치의 판단은 위법하고(대판 84도554), 논리칙과 경험칙에 반하는 증거취사나 사실인정까지 허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대판 91도1956).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필자는 삼성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명백히 잘못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명징(明徵)한 법적 논리보다는 권력과 여론, 법 사이에서 고심끝에 나온 눈치보기 판결로 평가한다.

여러가지 쟁점이 있지만 제3자 뇌물죄의 직접적 구성요건이면서 단순 뇌물죄에 있어 대가성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부정한 청탁'과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뇌물죄 공모, 두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법원은 특검의 주장과 달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해소,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설립 등 모든 '개별적 현안'에 대해 삼성측의 어떠한 청탁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미르재단이나 K재단 출연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법원은 부정한 청탁의 유무는 개별 사안별로 달리 보아야 한다며 공익재단과 달리 정유라 승마 지원이나 동계영재스포츠센터 지원과 관련해서는 삼성의 승계구도라는 포괄적 현안과 관련하여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하여 각 단순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를 인정했다.

부정한 청탁의 유무를 사안별로 달리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툼의 여지가 많지만 일단 논외로 하고 필자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삼성의 승계구도와 관련하여 개별적으로는 아무런 청탁이 없었는데 포괄적으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즉, 법원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하여 명시적, 개별적, 구체적으로 어떠한 부정한 청탁도 없었지만,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청탁하고 도와줬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부분으로 보면 문제가 없지만 ‘큰 그림’을 보면 뇌물이 성립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법죄의 구성요건이든, 검찰의 공소사실이든, 법원의 판결이든 형사법에서 가벌성의 요건과 관련한 모든 문언과 판단은 평균적인 상식을 가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큰 그림'으로 대충 유무죄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개별ᆞ구체적으로 범죄의 구성요건과 이에 대한 해당성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점에서 오히려 특검의 논리는 증거의 유무는 별론으로 부정한 청탁의 내용을 개별적, 구체적, 명시적으로 특정하여 명확했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은 특검이 주장한 모든 개별적, 구체적, 명시적 청탁이 없었다고 하면서도 결론은 승계구도라는 포괄적 현안과 관련하여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하니 이는 평균인이 아니라 필자처럼 법률전문가가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뇌물죄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의 경우 명시적뿐만 아니라 묵시적으로도 가능하지만 그 청탁의 내용은 반드시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왜, 어떠한 내용의 청탁을 하였는지가 특정되어야만 피고인의 입장에서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특검에서 주장한 모든 개별적인 부정한 청탁이 허구였음을 충분히 입증하였고 이에 대해 법원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법원은 막연히 승계구도라는 포괄적 현안과 관련하여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부회장은 무엇을 더 얼마나 입증하여야 하는가? 삼성의 승계구도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포괄적인 사실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이심전심으로 묵시적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내심의 사실은 또 어떻게 입증하는가? 무엇보다 형사재판에 있어 모든 유죄의 입증책임은 검찰에 있으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한다는 원칙'은 법관의 재량이 아니라 의무가 아닌가?

이점에 대해서는 당연히 항소심에서 다시 한번 철저한 심리와 판단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의 공모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뇌물죄의 공모를 하였다는 근거로 오래 전부터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맺어 온 점, 대통령 취임 이후에 국정 운영에 있어서 최순실의 관여를 수긍하고 그의 의견을 반영하는 관계에 있었던 점,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단독 면담에서 승마 지원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지원이 미흡한 경우 이 부회장을 강하게 질책하고 임원 교체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점 등을 제시했다.

과연 이 정도의 근거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모를 인정할 수 있는지도 문제지만 가사 둘의 공모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를 뇌물죄의 공모로 볼 수 있는가?

오히려 여러 정황증거를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면 두 사람의 공모는 삼성도 같이 공모하여 뇌물을 받아 정유라를 지원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박 전 대통령이 직권을 남용하여 최순실이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로 공모하였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끝으로 법원은 소위 경제공동체 이론이 불필요하다는 논거로 신분자인 박 전 대통령과 비신분자인 최순실의 '공모'를 들고 있는데 이는 '부정한 청탁'이라는 요건을 추가하여 단순 뇌물죄보다 엄격히 규정한 제3자 뇌물죄를 형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법리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상에서 이 부회장의 판결과 관련한 몇가지 문제점을 살펴보았는데, 필자가 역사의 거울에 비춰볼 때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법치주의가 허물어진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된 예는 찾아볼 수 없다.

진정한 법치주의는 광장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유형무형으로 쏟아지는 법정 밖 압력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법과 원칙, 증거에 입각해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음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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