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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넘치는' 메시지의 과잉, 무엇을 의미하나


입력 2017.08.25 09:50 수정 2017.08.25 16:1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받아들일까의 여부보다는 말해야한다는 입장만 강조

전기요금 올려야될 일을 전기 아끼라는 캠페인으로 때우는격

국회 의사당 진입로에 있는´좌회전 금지´와  ´일방통행´ 표지판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 의사당 진입로에 있는´좌회전 금지´와 ´일방통행´ 표지판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우리 사회에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끼임 주의, 미끄럼 주의, 추락 주의, 금연, 도시가스 계량기 기록 안내, 인사하고 지내자는 권고 등, 자질구레한 메시지가 여러 개 붙어 있다. 지하철에는 승강장과 차량 사이가 넓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말라는 경고, 노란색 안으로 서라는 푯말 등등 어디를 가도 ‘∼를 해라’ 또는 ‘∼를 하지 마라’는 식의 메시지가 홍수를 이룬다.

이렇게 메시지가 많다 보니 하나도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메시지를 보더라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냥 흘려보낸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혼선을 주는 메시지도 있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서 물기를 말리는 건조기 옆에는 건조기를 사용하지 말고 손수건을 사용하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건조기를 사용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헷갈린다.

대학교 캠퍼스도 플래카드로 뒤덮여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각종 동아리 안내, 유명 인사 특강 소개, 행정고시·사법고시·회계사·관세사·세무사·감정사 등 각종 자격시험 합격축하, 신입생 환영회와 MT, 해외연수와 교환학생 모집, TOEIC·TOEFL 특강뿐 아니라 정부 프로젝트 수주, BK 선정, 교육부 우수 평가를 축하하는 자화자찬식 플래카드도 넘쳐난다. 지성과 겸손이 아카데미즘의 아이콘인데 자랑과 광고와 허식으로 가득 차있다. 먹자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광고판 같다.

자동차 뒤에 붙어 있는 각종 스티커는 상당수 특별 취급과 예외적인 대우를 요구한다.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면서 미리 다른 사람의 양보를 강요한다. 학생수송, 촬영차량, 위험물 적재, 해외 관광객 수송, “아이가 타고 있어요.”, 공무수행 등, 나름대로 이유는 있지만 결국 자기 차량의 예외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왜 이렇게 메시지가 많을까? 우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메시지가 훈계, 교육, 권고, 안내, 조심, 금지, 주의, 경고, 엄금, 운동 등의 내용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바뀔까? 메시지의 효과보다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마음이 급하다. 메시지를 얼마나 보고,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따지기보다 메시지를 제공하고 공급하는 쪽의 이해와 입장만을 반영하려 한다. 말했으니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의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보다 이를 메시지와 말로 쉽게 해결해 버리려하기 때문이다. 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집행하는 법치주의적 태도보다 말로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말과 메시지로 된다면 그야말로 신사와 숙녀들만 사는 좋은 사회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강력한 법집행이 수반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무임승차 시 운임의 30배를 징수한다고 경고하지만 실제로 그 집행은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는 지하철을 탈 때에 별도의 출입 장치 없이 자유롭게 타지만 가끔 지하철을 세우고 승객들의 티켓을 전수 조사하여 티켓 미소지 시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강력하게 법을 집행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적절한 자원을 동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말로 때우려’ 하기 때문이다. 여름에 문 열고 에어컨 켜지 말라, 겨울에 18℃이하에서는 난방하지 말라는 식으로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는데, 이보다는 전기요금 올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전기요금 안올리면서 에너지를 절약하려니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메시지 과잉은 가격 메커니즘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촉진법’, ‘∼육성법’, ‘∼진흥법’, ‘∼개발법’, ‘∼발전법’ 등의 이름을 가진 법률이 적지 않다. 법으로 될 일이 아닌 데도 말이다. 자원을 동원하려면 적절한 가격 메커니즘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돈 안 들이고 규제·권고·운동·육성 등으로 해결하려니 법을 만들어서 집행하는 것이다. 결국 이를 위한 조직을 만들어야 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공기업 직원을 뽑아야 한다. 결국은 세금이 들어간다. 차라리 가격 메커니즘을 동원했으면 나타나지 않았을 자원배분의 왜곡이 불필요한 공적 조직의 팽창과 함께 진행형으로 계속된다.

가격 메커니즘을 동원하지 않으니 재화와 자원이 모자라고 남는다. 이를 할당·배급·분배하고 돈을 거두려니 가격장치 외에 별도의 규제와 공적 기관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각종 법률과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메시지 과잉은 자유와 효율의 대가로 규제를 만들어내고 정부를 키우는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을 말해준다.

글/조성봉 숭실대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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