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같은 사람들을 뚫고 백록담을 보다

최종편집시간 : 2017년 08월 20일 12:19:02
구름같은 사람들을 뚫고 백록담을 보다
<어느 퇴직부부의 신나는 제주여행>한라산 정상 등정, 산방산 탄산온천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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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13 07:10
조남대 전쟁과 평화연구소 연구위원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2015년 여름 한 달 동안 아내와 함께 전국일주 여행을 한 것을 그동안 매주 1회씩 연제한데 이어, 동년 12월 28일부터 2016년 1월 21까지 제주도에 25일동안 살면서 여행한 것을 앞으로 1주일에 하루씩 연재한다. 총 55일간의 여행기를 한꺼번에 보고 싶다면 서점에서 '부부가 함께 떠나는 전국 자동차여행'(북랩출판사 간)을 찾으시길...<필자 주>

【1.9(토), 열세 번째 날】

핸드폰 알람을 5시에 맞춰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을 깨 보니 6시가 다 되어간다. 깜짝 놀라 일어나 한라산 등산 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7시쯤 집에서 출발했다. 일출시각이 7시 반쯤인데도 주변이 캄캄하다. 가다가 보니 차에 기름이 없어 핸드폰으로 가까운 주유소를 검색해 보니 대정 쪽에 주유소가 있어 10여 분 돌아가서 주유한 다음 한라산 성판악 탐방안내소에 도착하니 8시다. 주차장은 물론이고 주변 도로변에도 차를 주차할 곳이 없어 안내소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탐방안내소에 오니 8시 30분이다.

▲ 한라산 등산로변 설경.ⓒ조남대

6시에서 9시 사이에 성판악 탐방안내소를 출발해야 한라산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는 관계로 서둘러 올라갔다. 등산 마지노선 시각 3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출발했더니 올라가는데 등산객이 너무 많아 정체가 되어 제대로 올라가기가 힘들 정도다. 1월 초순인 데다 토요일인 관계로 관광버스를 전세 내어 등산 온 사람이 엄청 많은 모양이다. 가다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어제 밤배로 와서 오늘 아침 한라산 등산을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12시까지 진달래 동산을 통과해야 한다. 12시가 지나면 정상 등산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빨리 올라가고 싶어도 사람들이 많아 지체가 심하다. 등산길이 밀려서 걷다가 쉬다가 하며 올라갈 수밖에 없다. 등산로 사정이 이런데도 먼저 가려고 옆으로 뛰어가다 길이 막히면 끼어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길이 더 밀린다. 2차선 도로에 자동차가 추월하다 반대차선에 차가오니 얼른 또 끼어들어 뒤차가 브레이크를 밟아 그 뒤에 있는 차가 밀리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그런데도 계속 이런 행태가 반복되니 짜증이 난다.

▲ 한라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설경과 구름.ⓒ조남대

너무 밀려 제주도까지 와서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다 같은 심정일 텐데, 화가 나서 한마디 하고 싶지만 말다툼이 나면 제주도까지 등산 와서 기분 나쁠 것 같아 여러 번 참았다. 참고 나중에 생각해 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이 들수록 나서지 말고 참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 진달래 동산에 11시 30분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간식을 먹으려고 하니 방송에서 12시가 지나면 정상 등산을 통제하니 서둘러 올라가 달라는 부탁이다. 조금 쉬었다가 금방 출발했다. 우리가 제일 밀리는 시각에 올라온 모양이다. 사람이 많아서 빨리 올라갈 수가 없다. 대단한 인파다.

날씨가 추울 것으로 생각해서 옷을 엄청 껴입고 목도리에 모자를 쓰고 완전무장을 했더니 땀이 많이 난다. 춥기는 고사하고 덥다. 탐방 거리가 성판악 휴게소에서 정상까지는 9.6㎞로 8∼9시간이 걸린단다. 평탄한 길이라 힘은 덜 들지만 거리가 머니까 상당히 지겹다. 평탄한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진달래 동산을 지나니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지체되어 자꾸 시간이 늦어지니 가다가 시간이 안 되면 되돌아오지 하는 심정으로 올라갔다. 많이 지치지만 천천히 올라가니 그래도 다행이다. 가다가 아름다운 장소가 있으면 사진을 찍으며 올라갔더니 시간이 더 걸린다. 정상으로 갈수록 지체가 더 심해진다.

소나무 등 각종 나무에 눈이 내려 너무 아름답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구름이 발밑 저 아래 한라산 중턱에 걸려 있다. 우리가 구름 위에 있다. 비행기 타고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정상은 상당히 맑지만 저 아래는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절경이다. 앞을 보면 멋있고 뒤를 보면 또 더 멋있다.

천천히라도 올라왔으니 다행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못 올라갈 줄 알았는데 가다 보니 정상에 올라왔다. 도착시각은 오후 1시 20분이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정상에서 초코파이, 계란, 초콜릿 등을 먹으니 좀 힘이 나는 것 같다. 정상에 와도 백록담 구경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데 깨끗한 시야로 잘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 백록담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필자의 부인.ⓒ조남대
▲ 눈 덮인 백록담 풍경.ⓒ조남대

백록담과 한라산 정상이라는 팻말에는 사진 찍으려 길게 줄 서 있어 포기하고 적당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또 안내원이 조속히 내려갈 것을 권유해서 급히 허기를 채우고 1시 40분쯤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도 등산객이 많아 제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지체가 된다. 할 수 없이 천천히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눈이 적당히 쌓여 있어 걷기가 아주 편하다. 나무 계단에도 아직 눈이 쌓여 있어서 아이젠을 착용한 신발에 적당히 쿠션이 되어 좋다.

진달래 동산에 도착하니 2시 50분이다. 화장실 갔다가 가져간 귤을 조금 먹고 금방 출발했다. 3시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하산길이 위험하다며 빨리 내려가야 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마지노선 시각에 임박하여 올라온 데다 등산객이 많아 시간이 지체되다 보니 계속 서둘러 달라는 방송을 들으며 등산을 하게 되었다.

내려갈수록 힘이 없어지고 속도도 느려진다. 그러나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설경이 너무 좋아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천천히 앞사람만 보고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경희도 거의 지쳤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긴다. 조금 방심하거나 잘못해서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발이 아프더니만 오래 걸으니 양쪽 허벅지 관절이 아프다.

원주 제1하사관 학교에서 6개월 동안 훈련받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이 2박 3일 행군이었는데 그때가 생각난다. 행군 막바지에는 길바닥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고여 있어도 힘이 없고 귀찮아 비켜가지 않고 그냥 물로 걸어갔었다. 경희와 그 이야기를 하면 지친 몸을 이끌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경희는 얼마나 힘들까. 그러나 힘들다는 한마디 없이 내 앞에서 열심히 걸어간다. 대견하다. 뚜벅뚜벅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 다 온 것 같다. 5시 20분에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했다.

▲ 한라산 설경.ⓒ조남대

엄청 힘이 들었다. 삼각대를 세워놓고 둘이 포옹을 하다시피 자세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산 마지노선 시각 30분을 앞두고 성판악 안내소에 도착한 것을 비롯하여 진달래 휴게소와 정상을 지나 또 내려올 때도 각 지점에서 30분의 여유를 두고 통과하는 관계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화장실 다녀오고 간단히 요기만 하고는 금방 출발해야 했다.

앞서가는 경희가 휘청거리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려고 할 때는 과연 정상에 다녀올 수 있을까, 또는 내려오는 길에서는 무사히 내려가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었다. 스틱 하나를 짚고 휘청거리며 끝까지 무사히 한라산 등정을 완주한 경희에게 찬사를 보낸다.

등산하다 진달래 휴게소에서 30분의 여유를 두고 올라갈 때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지체되어 정상에 못 올라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오늘 못 가면 며칠 후 다시 한 번 좀 더 일찍 와서 여유를 갖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하산을 하고 나니 다시 등산한다는 것은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 힘이 달려 못 간다면 이제 다시는 한라산 등산이 어려울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등산할 때 처음에는 옷을 많이 입어 덥더니만 휴게소에서 좀 쉬니 땀이 식어 쌀쌀하다. 등산 내내 별로 춥다는 것은 못 느꼈는데 하산 도착지점 가까이 오고 해가 지니 쌀쌀한 한기를 느낀다. 성판악 안내소에 도착하여 사진을 몇 컷 찍고 도로에 차를 세워놓은 곳까지 거의 700m를 걸었다. 대부분의 차는 모두 하산을 하여 가져가고 없어졌다.

▲ 운정이네집 식당의 기본 반찬.ⓒ조남대

우리집 부근에 있는 산방산 탄산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피로를 풀기로 했다. 목욕하고 저녁을 먹으면 너무 늦을 것 같아 저녁을 먼저 먹기로 하고 주변을 수소문하다 보니 ‘운정이네’라는 제주 향토음식점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음식점이 깨끗하고 좋다.

음식점 모토가 “모든 음식은 저희 딸 운정이가 먹는다고 생각하고 정성껏 조리합니다”이다. 통갈치조림, 오분자기돌솥밥, 성게미역국 등이 있지만 우리는 전복뚝배기를 시켰다. 맛이 구수하고 얼큰한 것이 괜찮다. 경희 뚝배기에는 뻘이 들어있는 조개가 있어 이야기했더니 두말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끓여 준다. 신뢰가 간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탄산온천으로 갔다.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다. 핸드폰 할인 쿠폰을 제시하니 12,000원 하는 것을 8,200원으로 32% 할인된 가격으로 해 준다. 8시부터 10시까지 온천탕에서 목욕하며 한라산 등산으로 쌓인 피로를 풀었다. 개운하고 상쾌하다.

집에 도착하니 온종일 등산을 하고 목욕까지 마친 후라 갈증이 심해 며칠 전에 사 놓은 제주도 막걸리 1병을 둘이서 원샷 하고 경희는 침대에 눕더니 이내 끙끙 앓으며 잠을 잔다. 나도 엄청 피곤하다. 한라산을 9시간 동안 등산을 하고 또 2시간 동안 목욕을 하고 막걸리 1통을 마셨으니 오죽하랴. 오늘 일지 정리를 하는데 마우스도 고장이 나서 잘 안 되는 데다 눈이 감겨 마무리하지 못하고 12시경에 그만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글/조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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