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문재인정부 100일] 명운 갈린 시민단체…'기울어진 운동장'


입력 2017.08.12 05:00 수정 2017.08.13 18:22        박진여 기자

진보단체 정권진출·보수단체 궤멸직전…"불통정부·독주 우려"

"건강한 사회, '다른 의견' 대변 단체 필수…정치권 지원 나서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개월여 만에 사회 양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의 명운이 극명히 갈렸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진여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개월여 만에 사회 양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의 명운이 극명히 갈렸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진여 기자

진보단체 정권진출·보수단체 궤멸직전…"불통정부·독주 우려"
"건강한 사회, '다른 의견' 대변 단체 필수…정치권 지원 나서야"


사드배치, 탈원전, 비정규직 제로화, 부동산 대책…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현안이 연일 쏟아지지만 우리를 둘러싼 사회는 비교적 조용하다. 일부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상황을 제외하면 주요 사회적 이슈에 뒤따르는 대립과 갈등이 주춤한 모습이다.

정권 교체를 이룬 문재인 정부가 진보적 정책들을 꾸준히 내놓으며 진보적 색채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견제해야 할 보수 시민단체들이 자취를 감췄다.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알 만한 대표 보수 시민단체들도 최근 공개 활동이 부쩍 뜸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개월여 만에 사회 양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의 명운이 극명히 갈렸다. 진보성향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당·정·청 곳곳에 포진해 있는 가운데 보수성향 시민단체는 존폐 기로에 놓였다.

현재 청와대에는 진보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청와대에는 '참여연대' 출신의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출신의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출신의 조현옥 인사수석 등이 진출했다. 내각에도 참여연대 출신들이 주로 등용됐다.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도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이밖에 문재인 정권 차관급 이상 55명 중 절반 가까운 20여명이 시민단체 출신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일선 현장의 진보 시민단체들도 활기를 띠고 있다. 새 정부의 정치 이슈나 핵심 정책에 진보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세를 확장하는 모양새다. 실제 새 정부 출범 이후 진보단체의 집회 및 기자회견이 단 하루 만에 20여 차례가 열리기도 했다. 이 가운데 단체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되며 고무적인 분위기가 이어진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개월여 만에 사회 양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의 명운이 극명히 갈렸다.(자료사진) ⓒ청와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개월여 만에 사회 양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의 명운이 극명히 갈렸다.(자료사진) ⓒ청와대

반면, 보수 시민단체는 설 곳을 잃고 문을 닫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기업 등이 '탄핵정국' 이후 후원금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자금줄이 마른 탓이다. 실제 대부분 보수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인력을 대거 감축하거나 임대료가 싼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는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보수 시민단체로 꼽히는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는 최근 17명이던 상근 직원을 6명으로 대폭 줄였다. 또 서울 북창동에 위치했던 약 150평(495㎡) 규모 사무실도 50여 평(165㎡)의 인근 레지던스로 축소 이전했다. 바른사회는 기업과 시민 후원금에 의존해왔지만, 새 정부 출범 후 후원금이 최대 80%까지 급감했다. 정권이 바뀐 뒤 정기 후원자마저 절반 이상이 후원금을 뚝 끊어버렸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다른 보수성향 단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자유시장경제 싱크탱크인 자유기업원은 새 정부 출범 후 예산이 과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면서 인력 감축과 사무실 축소 이전에 들어갔다. 전경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원활한 경제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예산 규모가 과거 연 20억 원에서 연간 2억 원으로 대폭 감소되며 지난해 15명이던 직원은 5명 만이 남았다. 이에 자유기업원 측은 소규모 싱크탱크로 다시 출범하며 8월부터 당초 '자유경제원'이었던 명칭을 지금의 자유기업원으로 변경했다. 우선 기업 관련 목적사업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1998년 무기력한 보수의 혁신을 내걸고 창간한 격월간지 '시대정신'도 무기한 휴간을 선언했다. 시대정신 이재교 발행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재정난으로 인해 이번 5월 17일 발간된 통권 78호를 끝으로 휴간하게 됐다"며 "아껴주신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으며, 이후 복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대정신 창간 발행인인 한기홍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신보수를 대표하는 이념적 잡지를 자임하고 달려왔으나, 막상 보수정권 출범 이후에는 이념과 현실의 간격 사이에서 어려움도 있었다"며 "이제 오히려 진보정권 등장과 보수의 혼미 앞에서 올바른 보수이념을 정립해야 할 시기에 재정난으로 휴간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개월여 만에 사회 양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의 명운이 극명히 갈렸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개월여 만에 사회 양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의 명운이 극명히 갈렸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보수 시민단체 관계자는 "진보성향 정부에서 진보성향 인사를 등용하는 것도 정권 강화차원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보수단체의 의견에는 귀를 막고 있어서야 '소통의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에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나"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내용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진보'가 만든 정부가 아니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대통합을 약속한 만큼, 반대표 59%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 활동에 있어 과거부터 진보성향 쪽으로 치우친 '기울어진 운동장' 양상을 보여왔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진보 성향을 가진 국민이 있다면 다른 쪽에는 보수 성향을 가진 국민도 있기에 이들을 대변할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 속 정치권이 먼저 보수단체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상황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공정한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종근 정치평론가는 "시민단체 시절의 배타성과 편협함 그리고 원리주의에 매몰돼 자칫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며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균형을 잡고, 그간의 선입견을 버리고 다양한 시각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박진여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