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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왕'의 죽음, 럭셔리 시대의 조종


입력 2017.07.30 07:13 수정 2017.07.30 08:31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문재인 정부의 신경제정책은 최후의 승부수

카페 '할리스', '카페베네', '망고식스'를 이끌어 '커피왕'으로 알려진 강훈 KH컴퍼니 대표가 지난 2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 대표의 KH컴퍼니는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강 대표의 자택 입구 우편함들.ⓒ연합뉴스 카페 '할리스', '카페베네', '망고식스'를 이끌어 '커피왕'으로 알려진 강훈 KH컴퍼니 대표가 지난 2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 대표의 KH컴퍼니는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강 대표의 자택 입구 우편함들.ⓒ연합뉴스

운(運)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끊임없이 변화해간다, 운세순환이라 한다. 주기(週期)란 것은 그 안에 흥성(興盛)의 때가 있으면 반대로 쇠망(衰亡)해지는 때도 있다.

가령 연필로 하나의 동그라미를 그려보면 위로 선을 그을 때도 있지만 반대로 아래로 그을 때가 있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주기란 것은 결국 원 운동, 즉 동그라미 운동이다.

(사실 운의 변화는 60년만 하나의 주기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간 단위 안에도 존재한다. 다만 사람이 감지하기 어려울 뿐이다.)

60년에 걸친 운의 변화에서 흥성의 기간을 잡는다면 대략 18년이다, 물론 그와 반대되는 쇠망의 기간 또한 18년이며 그 나머지 24년은 그 중간에 해당된다. (실은 18년이 아니라 15년이지만 체감 상으론 18년이라 해두는 것이 간편하다.)

18년이 어떤 흐름이 지속되는 하나의 기간이란 것에 대해 증명하고 예시해보시오 하면 정말이지 지겨울 정도로 무수히 열거해줄 수 있지만 생략하고 얘기를 이어가겠다.

며칠 전 이른바 ‘커피왕’으로 불렸던 사람이 형세에 몰린 나머지 자택에서 자살했다. 소식을 듣는 순간 ‘앗, 18년’ 했다.

보도내용을 조금 살펴보니 2015년부터 사업이 급격히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에 18년 전으로 거슬러 가면 1997년이 된다.

흥성의 계기는 회사원이던 그가 1997년 무렵 국내 스타벅스 론칭 사업에 참여하면서 찾아왔다. 새로운 시장 기회를 직감한 그는 회사가 당시 외환위기로 사업 론칭을 지연시키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커피 시장에 뛰어들었다. 실로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할리스 커피, 카페베네 등의 사업을 주도했고 이로서 우리 사회엔 새로운 커피시장 즉 미국식 커피 ‘아메리카노’를 중심으로 하는 시장이 열렸고 또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에 ‘커피왕’이란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리고 18년이 흘러 2015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커피 시장은 무자비한 ‘레드 오션’으로 변해버렸다. 마진폭이 지극히 엷은 초박리(超薄利) 시장으로 변한 것이다. 커피왕 또한 당연히 대안을 모색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1997년 새로운 커피시장의 가능성을 확신한 용감한 젊은이는 사표를 내고 독자 사업을 열었으며 한때 큰 성과도 보았지만 저렇게 마감된 것이다.

이번 커피왕의 죽음은 비단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2000년대 초부터 생겨난 우리나라 커피시장이 이미 어떤 한계점을 넘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예전에 ‘카페베네’가 생기고 인기 스타들을 동원하는 마케팅으로 매장을 순식간에 확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잘 가면 10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에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니 2008년 5월이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인 계산을 해보자. 5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고 6년이면 한계, 7.5년이면 사실상 사업성 상실.

실제로도 그러했다, 2008년으로부터 5년이 흐른 2013년이 되자 매점은 1000 개가 되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그 이후 경영에 많은 문제와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최근엔 매장도 많이 줄어들었다.

국내 커피전문점, 오늘에 이르러 영업마진이 괜찮을 까닭이 없다. 인터넷에 자료가 있어 보니 프랜차이즈 커피매장만도 금년 6월로서 무려 8914개나 된다.

길거리 빌딩치고 커피집 하나 들어서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 저가형 프랜차이즈는 물론이고 제과점에서도 커피를 팔고 있고 여기에 무려 근 5만 개에 달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편의점들까지 커피시장에 뛰어들었으니 가격경쟁이 무지막지할 수밖에 없다.

사실 대중 커피에 무슨 별다른 노하우가 있겠는가? 게다가 최근 정부가 주도한 최저임금 대폭인상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더더욱 영업 마진이 축소될 것이니 말이다.

커피왕의 활약기간이 18년이었지만 사실 커피 시장 자체도 그렇다. 스타벅스 국내 1호점이 1999년에 생겼으니 올해 2017년으로서 18년이다. 이제 우리나라 커피시장은 최악의 피 튀기는 시장이 되어 절로 조정 단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는 그 무렵 갑자기 ‘미국식 커피’ 시장이 생겨났던 것일까?

그 답을 찾는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2002년부터 풍요와 럭셔리의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1999년부터는 신흥부자들이 생겨났고 또 그와 반비례하여 양극화가 시작되었다.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선 그 무렵 서울 강남에는 타워팰리스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모든 것이 럭셔리를 지향하기 시작했던 것이고, 미국식 커피 역시 그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타워팰리스를 시발점으로 그 이후 그를 모방한 타워형 프리미엄 아파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또 그 무렵부터 해외관광이 일반화되었고 때마침 인천공항이 2001년에 개항을 했다.

2000년 초반부터 생겨난 새로운 변화와 풍조들을 한 번 열거해보자.

미국식 커피와 프리미엄 아파트, 타운하우스, 세컨드하우스와 펜션, SUV와 외제차, 해외관광, 해외유학과 어학연수 등등 실로 많은 것들이 등장해서 그 이전의 시대와 구분을 지었다.

이는 2000년 초반부터 한동안 그야말로 럭셔리의 시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그 럭셔리의 이면에는 가계부채의 엄청난 증가가 수반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채를 통한 과소비와 럭셔리는 이처럼 항상 동행한다.

그렇다면 럭셔리의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이어가는 것은 없으니.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시한(時限)이 언제까지인가?

앞에서 스타벅스 1호점이 1999년에 생겨났다는 말을 했는데 바로 그 때를 우리 사회 럭셔리의 시발점으로 잡아도 무방하다. 즉 1999년에 시작되었다.

이에 앞글에서 흥성의 기간과 쇠망의 기간 모두 18년이란 말을 했으니 그것을 적용하면 된다, 즉 1999년에 18년을 더하면 바로 올해 2017년이다.

다시 말해서 2017년으로서 럭셔리의 시대는 이제 마감되었다.

올 초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이 된 일 역시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사건이란 생각을 한다. 물론 비중이 적긴 하지만 이번 커피왕의 자살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경제정책은 기업의 투자가 부진하고 투자를 해도 일자리 창출이 되지 않으며 게다가 소비마저 부진한 총체적인 난국을 타개하고자 정부 지출을 대거 늘림으로써 다시 성장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이전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은 빈부 격차를 더욱 확대시시고 대기업들만 이득을 볼 것이란 우려를 국민들로부터 불식시키지 못했다. 더하여 기득권 노조의 강한 반발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방향이 틀렸다기보다는 홍보와 설득의 부족 그리고 정책운영 상의 정교함이 부족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생각이다.

이에 이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론적으론 케인즈 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로선 전례가 없는 일이다.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번 신정부의 경제정책은 사실상 ‘최후의 승부수’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일종의 올 인(All in)인 셈이다.

오늘 글의 주제는 럭셔리의 시대가 이제 마감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쓸 때면 늘 곤혹스럽다. 글쓰기에 있어 최근 유행은 내용에 앞서 공감을 위주로 하는데, 나 호호당의 이런 글은 독자들이 실로 공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세월이 흘러 저 편에 가서 문득 돌이켜보면 우리가 한때 정말로 대단한 소비의 시대, 분출의 시대를 살았었구나 하는 감회가 절로 일 것이라 여긴다. 흐름의 와중에서 흐름을 알기란 어렵다,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필요로 하기에 그렇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www.hohodang.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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