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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한국 정치의 유아(幼兒)스러움


입력 2017.07.17 00:01 수정 2017.07.19 14:16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칼럼]조직 위계 뒤집은 청와대 비서실 엇박자

국당 캐스팅 보트, 당리당략 좇는 방편되면 후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이정미 정의당 신임 대표와 함께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이정미 정의당 신임 대표와 함께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칼럼]조직 위계 뒤집은 청와대 비서실 엇박자
국당 캐스팅 보트, 당리당략 좇는 방편되면 후과


지난 열흘간은 한국 정치권에서 유난히도 ‘유아스러움’이 빛을 발한 기간이었다. 지난 6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머리자리기’ 발언에서 국민의당 등원 거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대리사과, 청와대의 사과 부인, 국민의당 등원 결정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애 같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울고 싶은 얘 뺨 때린’ 추미애 대표의 어른스럽지 못한 처사

추 대표가 ‘머리자리기 발언’을 뱉고 국민의당이 추경안 심사 거부를 선언한 것은 누구 말대로 ‘울고 싶은 얘 뺨 때린’ 격이었다. 문준용 의혹 제보조작 사건이 터져 국민의당으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는데, 울음으로라도 입을 열 수 있도록 터준 셈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정치판 생리를 간과한 언사였으며, 어쨌든 애를 울렸으니 어른스럽지 못한 처사였다. 당 안팎의 따가운 시선도 그런 관점을 뒷받침했다.

추 대표는 자기 신념이 강한 정치인이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탄풍’이 거세게 불자 민주당은 안방인 호남에서 참패의 위기에 몰렸다. 한나라당이 주도한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를 민주당이 도왔다는 이유에서다. 침몰하는 민주당호의 타륜을 잡은 추미애 당시 선대위원장은 한복을 차려 입고 광주시내 금남로에서 국립 5․18 민주묘지까지 삼보일배로 나아감으로써 주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구슬땀이 맺힌 진지한 얼굴 표정에는 가식 없는 반성과 진정성이 느껴졌지만, 선거 결과 민주당은 ‘원내 9석’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는 참패를 면할 수 없었다. 본인도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약자 코스프레’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추 대표의 충심(衷心)을 희화(戲畫)화해 버린 결과였다. 동시에 그의 정치적 신념이 현실정치와 얼마나 괴리(乖離)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추 대표, 대리사과로 어른스럽지 못함에서 ‘애’ 수준으로 격하

추 대표의 ‘어른스럽지 못하던’ 위상은 13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대리사과’를 계기로 ‘애’ 수준으로 격하됐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임 실장이 전병헌 정무수석과 함께 자신을 찾아와 추 대표에 대해 “왜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을 조성했는지 청와대로서는 알 수가 없다. 국민의당에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진심으로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추 대표와 사전 협의가 없었던 걸로 봐서 문 대통령의 하명(下命)을 받은 사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대리사과로 인한 추 대표 위상 변화는 옆마을 새총잡이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이 잽싸게 눈치 채고 총알을 날렸다. 그는 14일 추 대표를 겨냥해 “대리 사과는 아이가 잘못할 경우 어른이 대신하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추미애 대표를 이름 그대로 ‘애’라고 규정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추 대표는 유아적 리더십에 청와대가 사형 선고 내린 것을 심각히 생각하고 여야 협치를 위해 즉각 사퇴하길 바란다”고 추 대표를 몰아붙였다. 15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문 대통령은 추미애 대표를 ‘추다르크’보다는 ‘추키호테’로 인식하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며 ‘확인사살’까지 들어갔다.

하 최고위원의 날카로운 저격술에 한 표를 던진다. 임 실장의 대리사과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 대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일단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융통성이 부족한 외골수며 고집 센 여동생쯤으로 생각하고 혀를 찼을 만도 하다. 어른의 뜻을 받들어 임 실장이 옆집 주인을 찾아가 대신 사과를 했는데, 갑자기 청와대 발(發)로 “임 실장이 추 대표에 대해 언급한 바가 전혀 없다”는 멘트가 국민의당의 귓전을 때렸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 전병헌 정무수석이 지난 5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 전병헌 정무수석이 지난 5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애들 장난도 아니고…", 조직의 위계 뒤집은 청와대 비서실 엇박자

다시 발끈한 국민의당이 청와대를 향해 “임 실장은 오늘 추 대표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직접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성명을 냈고, 발언자를 추적해보니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대리사과를 하고 돌아왔는데 하급자인 수석비서관이 뒤집은 셈이다. 대리사과를 뒤늦게 알고 발끈한 추 대표를 달래기 위한 고육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결국 임 실장은 박주선 비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추 대표에 대해 사과한 것이 맞다. 윤영찬 수석에게도 그렇게 얘기했다” 라고 말했다고 국민의당이 전했다. 청와대가 국회 대응에서 엇박자를 보인 것은 비서실의 위계질서에 의문을 던지게 하는 요인이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이 논평에서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 무슨 상황인가”라고 빈정대도 청와대로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 실장이 ‘추 대표, 국민의당, 청와대 간 삼각관계’에서 당초 설정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해주고서야 사태가 진정됐다. 국민의당 부아를 돋우고 조직의 위계를 뒤집은 윤 수석의 발언은 아니함만 못했다.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얼굴을 만지고 있고 김동철 원내대표가 옆에 앉아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얼굴을 만지고 있고 김동철 원내대표가 옆에 앉아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민의당, 옆집 주인 발언 구실로 집단 등교 거부한 억지 학생들

마지막으로 '뺨 맞고 울어버린 애'였던 국민의당의 오락가락 행보를 짚어보자. 국민의당이 ‘대리사과’를 받아들이고 추경안 심사에 다시 합류하기로 결정했을 때 밝혔던 ‘출구 성명’을 들여다 보자. 김동철 원내대표는 “비서실장을 통해 깊은 유감을 전달했기에 산적한 국정현안 해결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 정상화에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손금주 수석 대변인도 “국민을 생각하는 책임 있는 공당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국회를 정상화하고, 국회 일정에 성실히 참여하겠다. 이는 온전히 민생을 위한 결정이다”라고 강조했다.

국회 정상화가 ‘산적한 국정현안 해결을 위한 결단’이며 ‘민생을 위한 결정’임을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국회에 등원해 상임위, 예결위, 본회의 활동을 벌이는 게 자신들 본분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국민의당은 그간 학생이 등교를 거부하듯 국회 등원을 거부해왔고, 그 이유는 옆집 주인의 예기치 않은 발언 때문이었다. 예컨대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등교를 거부했는데 그 이유가 옆집 주인 때문이었다면 당연히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모조리 결석 처분이며 응분의 불이익이 뒤따를 일이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대표로서 국정현안을 챙기고 민생을 살펴야할 공당(公黨)이 본인들 집안일 해결하려고 본분을 소홀히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하기 어렵다.

등원과 직접 상관 없는 사유로 오락가락 행보

차라리 “이번 추경예산안이 추경 편성의 법적 요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심사를 거부한다”면서 등원을 거부해온 한국당의 주장이 오히려 명분이 선다. 반면에 국민의당은 여당 요청을 받아들여 추경안 심사에 응했다가 추 대표의 머리자르기 발언에 반발해 보수야당과 대오(隊伍)를 만들었고, 다시 임 실장의 대리사과를 받아들여 그 대열에서 가장 먼저 이탈했으니 얼마나 본질에서 벗어난 사유로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는가?

무릇 등교 거부는 수업 내용이나 학교 운영, 교사 언행 등을 문제 삼을 때 명분이 선다. 그게 아니고 옆집 주인을 구실로 학교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것은 어린애 같은 억지다. 등원 거부도 등원과 직접 관련된 사안을 놓고 거취를 논해야 할 것이다. 언필칭 국민이 부여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그런 식으로 당리당략을 좇는 방편으로 이용한다면 후과(後果)가 뒤따를 수밖에 없음을 유념해야할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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