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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표정에 문재인 대통령의 본심이 담겼는가


입력 2017.07.10 04:31 수정 2017.10.16 09:54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미국선 사드 번복 부인 시진핑 앞에선 철회 가능성

채찍 당근 동시 강조? 적색과 청색 신호등은 동시 못켜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7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엘부필하모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만찬장에 도착해 포토라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남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7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엘부필하모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만찬장에 도착해 포토라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남대

만약 미군이 6·25 때 참전하지 않았다면, 또 그들이 반격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신생 대한민국이 아직도 존재했을까? 따져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휴전이 성립된 후 미군이 철수했더라면, 좌파적 표현으로 외세가 물러났더라면 대한민국의 오늘은 가능했을까? 가능하긴 커녕 나라 자체가 없어졌을 개연성이 높다.

김상곤 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기어이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취임했다. 석사·박사 학위 논문표절 시비에 휘말린 데다, 교육감 시절 비서실장이 수뢰한 돈을 업무추진비로 쓴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꿰찬 걸 보면 이런 스트롱맨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청문회의 전설’이 될 법도 하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그의 대북 및 대미 인식이다. 그가 공동의장을 지낸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는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해 온 단체다. 그는 그 단체의 지도자였다. 이런저런 해명을 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소신을 바꿨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런 이념성향의 그를 기어이 임명한 배경과 그 고집이 무섭다. 앞으로 우리사회의 가치구조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한여름인데도 한기를 느껴진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의 회귀

이제 진보좌파의 시대가 열렸다. 대통령과 정부 핵심요직의 많은 인사들이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지금까지의 한미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일 듯하다. 정권을 잡은 기회에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해 온 모델에 맞춰 대외 및 대북 정책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적에 그랬듯이.

북한이 햇볕으로 인해 옷을 벗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핵무기 및 미사일 외투를 더 두껍게 껴입었다는 사실이다. 그 독한 심성을 순화시키기는 고사하고 간만 더 키워주고 말았음을 햇볕론자들은 인정해야 옳다. 이치가 그러한데도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은 다시 그때의 언어, 그때의 행동양식을 답습하려 하고 있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6일 베를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갈등의 봉합을 시도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로 ‘시간을 벌면서’ 북핵 동결 등 해법을 찾아낸다면 사드 논란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 며칠 전의 말은 분명히 달랐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 링컨 룸에서 상·하원 지도부와 만나서는 ‘사드 번복’ 의사를 가진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강한 시기이며 그만큼 사드에 대한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요구도 크다”며 환경영향평가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도 그 탓에 절차가 너무 늦어질 일이 없으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드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합의이고 한국민과 주한미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자신의 인식 또한 명확히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의제로 채택하지 않기로 한 데는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다짐이 작용했을 터이다. 추측키로는 그렇다.

이쪽에 이 말, 저쪽에 저 말을 하는 식으로는 미‧중 양국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이는 대단히 위험한 신호가 된다. “그래도 좌파정권이라고 우리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려 하는군” 이라는 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한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

문 대통령의 모호화법, 오락가락화법은 이뿐이 아니다. 그는 북한이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데 대해 다음날 무력시위를 지시했다. 그리고 6일 아침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청와대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거 (언론에) 무력시위로 나가는 거죠?” 우리가 먼저 미국에 대해 무력시위를 주문했다고 알려질 만큼 적극적이었던 문 대통령의 그 단호한 자세는, 그러나 하루를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이날 베를린에 있는 독일의 민간 싱크탱크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그는 다시 대북화해모드로 돌아섰다. 그는 “앞선 두 정부(김대중·노무현)의 노력을 계승하는 동시에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며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등 5대 대북(對北)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추석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방문 및 성묘,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에서 일체의 적대행위 중단, △남북 당국 간 접촉과 대화 재개 등을 당면 과제로 제안했다.

어느 표정에 문 대통령의 본심이 담겼는가. 그는 이렇게 한껏 평화를 역설해 놓고는 8일 말콤 턴불 호주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는 또 다른 말을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는 더 큰 압박과 제재가 분명히 필요하다.” 북한의 ICBM발사에 대해 문 대통령은 그렇게 강조했다. 그런데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에게 앞뒤가 다른 언급을 이어갔다. “강경한 대응이 군사적 옵션까지 올라가서는 안 되고, 평화적 대응을 통한 해결이 우리의 입장이다. 제재와 압박, 그리고 군사적 조치 사이에서 평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채찍과 당근’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상반되는 성격의 신호를 동시에 발하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붉은 신호등과 녹색 신호등이 동시에 켜질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계속 그럴 경우 아예 무시하고 만다.

문 대통령은 쾨르버 재단 연설에서 앞선 두 정부(김대중‧노무현)의 노력을 계승하겠다고 강조함으로써 대북정책의 기조가 10년 전으로 돌아갔음을 선언했다. 북핵 및 미사일과 관련해서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밖에 길이 없다는 것이다. 상식이지만 북한 김정은 집단에게 우리는 군사문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전작권 돌려받고, 주한미군 철수시키자는 것 아니냐”고 따질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북한이 우리를 상대해 줄 것이라고 여겨서? 그때가 되면 북한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왜 제3국이 끼어들려 하느냐?” 국제사회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속수무책의 처지가 될 게 뻔하다. 다른 길이 있을까?

한미동맹 말고 다른 길 있는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자. 미국의 군사적 보호, 정치·경제적 지원이 있었던 덕분에 경제 소강국의 지위에 오르는 세계사적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미국의 개입이 배제됐더라면 김일성의 이른바 ‘국토완정’은 달성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김씨 왕조의 신민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긴 오늘의 국민은 살지 못하게 됐거나 태어날 수 없는 나라로 바뀌었겠지만.

이제는 우리도 살만해 졌으니까 한미 동맹, 주한미군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막대한 자주국방 비용을 감당한다는 건 몽상에 가깝다. 미국의 보호막이 걷히면 국제사회의 우리경제에 대한 신뢰도 걷히게 마련이다. 우리만 열심히 한다고 경제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보좌파 가운데 일부가 친애해 마지않는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우리의 후견국 역할을 해줄까? 유감스럽게도 역사상 중국이 우리를 선의로 보호해주고 지원해 준 적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는 대단히 오만하고 잔인한 대국이었을 뿐이다. 일본은 어떨까? 냉혹한 정치 군사 경제 강국으로서 힘을 거리낌 없이 과시할 게 틀림없다.

5100만 국민의 생존 문제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호의 조타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황천항해를 하는 처지다. 아무리 큰 배도 대양에서는 일엽편주다. 조타수가 판단을 잘못하는 순간 엄청난 재앙이 따를 것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타이타닉호 침몰의 책임은 전적으로 선장에게 있었다. 선주가 어떤 압력을 가했건, 승무원들이 어떤 실수를 했건 배의 안전운항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선장의 몫이다.

우리 국민의 지적 수준은 해방 및 6·25동란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는 고학력 인구다. 그렇지만 광장의 군중이 대세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학력도, 이성도, 합리 지향성도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군중심리라는 별개의 심리상태가 상황을 주도한다. 특히 ‘혁명정부’의 일원임을 자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흥분상태에 있다. 리더그룹이 자칫 방향을 잘못 잡으면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게 된다. 조타수 조차도!

거대한 집단의 질주에 가속도까지 붙을 때 이성적 제어는 아예 불가능해진다. ‘혁명 대통령’을 자처하는 문 대통령의 통제력에서도 한참 벗어나 버린다. 승객들의 집단적 갈채와 함성에 도취하면 항로를 잃기 십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조타수의 절제력과 지혜가 요청되는 때임을 조타실의 멤버들은 제발이지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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