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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한국 법치의 소산이지 혁명의 산물 아니다


입력 2017.07.10 00:01 수정 2017.07.16 08:50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칼럼]"촛불혁명 힘으로 당선"…법치주의·국격 위협

혁명은 법치로 정권교체 불발시 동원되는 비합법 수단

[칼럼]"촛불혁명 힘으로 당선"…법치주의·국격 위협
혁명은 법치로 정권교체 불발시 동원되는 비합법 수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차 독일로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 탑승 전 환송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차 독일로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 탑승 전 환송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문 대통령 함부르크 발언, “촛불혁명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가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현지시간) 숙소인 하얏트호텔에서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마크롱 대통령에게 "프랑스에서 정치혁명을 일으켜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셨는데 직접 만나서 기쁘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국에서도 촛불혁명이라는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고, 제가 그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며 "그렇게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프랑스, 한국의 대통령이 됐으니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5년을 지난 5월에 함께 시작한 만 39세 젊은 대통령에게 동질감과 우호감을 표시하기 위해 ‘정치혁명’ ‘촛불혁명’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제가 촛불혁명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요지로 발언하는 것은 외국 정상에게도 그렇고, 국내적으로도 자칫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마크롱 당선과 앙 마르슈 전진(前進), 가히 선거혁명이자 정치혁명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정치혁명’을 거론하는 것은 전적으로 비유적인 덕담으로 이해될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라는 신생정당의 후보로서 기성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를 제치고 지난 5월7일 결선투표에서 66.1%의 높은 지지율로 승리했다. 열흘쯤 뒤인 18일 하원 총선 결선투표에서는 ‘앙 마르슈’와 ‘민주운동당’으로 이뤄진 ‘집권당 연합’이 전체 577석 중 350석(60.7%)를 얻어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기존에 의석 제로(0)였던 ‘앙마르슈’는 일거에 308석을 확보했다. 반면 직전 집권당인 ‘사회당 연합’ 의석수는 기존 280석에서 29석으로 줄어들어 사회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가히 선거 혁명 내지는 정치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프랑스 대통령에게 정치혁명이란 표현은 대선과 총선의 선거결과가 가져온 정치권력의 ‘혁명적 변화’를 뜻하는 걸로 들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로서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등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제19차 촛불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로서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등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제19차 촛불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촛불집회와 탄핵 결정 간에 직접적인 인과(因果)관계 없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사정은 프랑스와 비교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5월9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헌법 제65조에 따라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데 이어 올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림에 따라 헌법 절차에 의해 물러났다. 그 과정에서 촛불집회는 20여 차례 열렸으며 연인원 수천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그럼에도 촛불집회와 탄핵 결정 간에 직접적인 인과(因果)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도, 태극기집회도 민의를 표출하는 한 단면이었다. 서로 세 경쟁은 있었지만 성격에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촛불집회를 지지했고, 또 촛불집회 참가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던 대선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그래도 집회는 집회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법치국가인가’ 의구심 심어줘

문 대통령이 ‘촛불혁명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말한다면 우리 탄핵 정국을 찬찬히 살펴보지 않은 외국 정상 생각에는 대한민국에 4·19 같은 대규모 시민혁명이 다시 일어나서 대통령이 퇴진하는 일이 생겼고 새 정권이 들어선 걸로 오해할 수도 있다. 촛불집회가 그런 혁명의 일환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설사 마크롱 대통령에게 부연설명을 해줘서 사실관계 파악에서 엇길로 새지 않도록 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뇌리에서 ‘대한민국은 과연 법치국가인가’ 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불식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다.

헌재의 인용심판마저 촛불집회 영향력 아래 넣어버리는 결과 초래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이른 법적 절차를 보면,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헌재의 탄핵인용 심판’이 핵심 관문이었다. 선출직인 국회의원들은 ‘삼권분립’ 체제에서 행정부를 견제하길 바라는 민의를 감안해서 탄핵소추안 표결에 임했을 수 있다. 촛불집회 민심도, 태극기집회 민심도 의원들의 찬반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이를 비난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헌재의 인용심판마저 촛불집회의 영향력 아래 넣어버리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은 사법부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정문 앞까지 밀려와서 세를 과시하며 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일부 시민들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심판을 내렸다’고 자부하는 헌재 재판관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난 3월 4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과 서울광장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주최한 제16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3월 4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과 서울광장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주최한 제16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법치 없었다면 지금도 ‘식물 대통령’두고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세 대결 벌일지도

당시 헌재 심판의 선고문을 보더라도 ‘촛불’의 ‘초’자도 들어 가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입니다”라면서 ‘법치주의’를 두 번 강조하고 있다. 만일 당시에 국민들로부터 헌재의 중립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또 법치주의가 살아있지 않았다면 지금도 ‘식물 대통령’을 청와대에 두고 우리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나눠 세 대결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올라 G20에 참석하고 프랑스 대통령과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결과이지 혁명의 산물이 아니다. 무릇 혁명은 민의를 외면하는 통치자를 합법적으로 권좌에서 내칠 수 없을 때 부득불 동원되는 비합법적 수단이다. 또한 혁명이란 ‘이름’은 쿠데타처럼 소수자에 의한 권력찬탈이 이뤄졌을 때 빈약한 정통성을 은폐하기 위해 동원되는 포장지일 뿐이다.

대통령이 정권 탄생의 모태처럼 ‘혁명’ 거론은 위험

지금 대한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혁명도 필요 없고, 혁명이란 포장지도 필요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돼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은 쿠데타나 혁명 없이도 선거제도를 통해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교체 가능하고, 필요하면 탄핵 절차도 법조항에 따라 원활하게 작동되고 있다.

촛불집회든 태극기집회든 대규모 군중 집회가 평화롭고 질서 있게 진행된 가운데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정치인들이 수렴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우리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경이롭게 바라봤고 세계 언론이 칭송했던 것이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의 의미 부여는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넘어 대통령이 정권 탄생의 모태라도 되는 것처럼 ‘혁명’을 거론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스스로 국격을 떨어뜨리는 우(愚)를 범할 위험이 있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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