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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싫어하는 문재인 정부, 경쟁 없는 유토피아 꿈꾸나?


입력 2017.07.03 00:01 수정 2017.07.16 15:55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칼럼]국토부, 코레일-수서고속철도 통합 방안 검토

경쟁상대를 비대한 공룡에 합치면 국민부담만 늘어나

서울 광화문 광장 뒤편으로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서울 광화문 광장 뒤편으로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데스크 칼럼]국토부, 코레일-수서고속철도 통합 방안 검토
경쟁상대를 비대한 공룡에 합치면 국민부담만 늘어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 땅에서 경쟁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그 변화는 정부의 입김이 미치는 공공영역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고 교원 성과급제가 흔들리고 있다. 학업 성취도평가 축소, 외고·자사고 폐지 시도 등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엔 경쟁체제인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SRT) 운영사인 ‘SR(Supreme Railways)’을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코레일 독점체제로 회귀하겠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장관이 깊이 관련된 '코레일 & SR 통합' 방안

지난달 29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토부는 철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코레일과 SR 두 회사 간의 현 경쟁체제가 바람직한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말 그대로 검토 차원이지 결론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SR 분리’를 적극 반대했던 전력이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때인 지난 5월 철도노조와 만나 ‘경쟁체제란 이름 아래 진행된 철도 민영화 정책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한 적이 있어 저의(底意)가 의심스럽다.

SR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12월 설립됐다. SRT가 개통돼 운행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지난해 12월9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SR 분리 정책’을 추진한 것은 철도 운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경영 효율화와 서비스 품질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당시 철도노조는 ‘경쟁체제를 명분으로 한 철도 민영화의 첫 단계’라며 극렬 반대해 정부는 민간회사가 아닌 코레일 자회사(코레일 지분 41%) 형태로 SR을 출범시켰다.

SR이 박근혜 정부에서 출범한 사실을 놓고 철도 경쟁체제가 보수정권의 산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철도는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교통수단의 핵심시설로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으나 고속도로 개통으로 자동차 시대가 열리면서 수송 분담률이 급감, ‘76년부터 적자경영이 고질화됐다. 따라서 철도 영역의 만성적인 경영적자와 막대한 누적부채 문제는 역대 정권의 최대 현안 중 하나였다.

참여정부 때 '상하분리'로 철도산업 구조개혁 본격 개시

실제로 김대중 정부 당시인 2001년 '철도산업발전 및 구조개혁법안'이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했으나 철도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법안에는 철도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철도의 ‘시설부문’과 ‘운영부문’을 분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참여정부' 들어 철도노조와 협의를 거쳐 여당 측에서 발의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안’이 2003년6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 제18조에 따라 ‘철도산업구조개혁기본계획’이 확정됐으며 구조개혁 1단계로 2004년 철도 ‘시설’과 ‘운영’이 분리됐다. 시설부문은 철도시설공단(2004년 1월 설립)이 '건설'과 '관리'를 맡고, 운영은 한국철도공사(2005년 1월 설립)가 담당해 ‘상하분리’가 이뤄진 것이다.

그런 구조개혁의 마지막 단계가 운영부문에 시장기능을 도입하고 적절한 경쟁관계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독점의 폐해를 줄이고 효율성을 향상한다는 목적에서다. 이를 위해 일부 노선을 민간에 위탁운영하거나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경쟁관계인 도로와 항공, 해운 등 다른 교통수단의 경우 기반시설(SOC)은 철도처럼 국가 책임으로 투자되고 관리되지만 운송 서비스(운영)는 모두 민간이 맡고 있다.

SR 출범, 보수정권 뛰어넘는 30년 역대정권 철도구조개혁 노력의 산물

이런 맥락에서 SR 분리는 지난 보수정권의 산물이 아니라 80년대 이후 역대 정권들이 고민해온 철도산업 효율화 노력의 결과물이다. 민영화가 종착점이었지만 노조 반대로 공기업 자회사로 절충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간의 철도산업 구조개혁은 뚜렷한 지향점을 갖고 있었다. 공익성이 강한 시설 부문은 정부 영역에 남겨두되, 수익성을 추구해야할 운영 부문은 시장 영역으로 분리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2004년 운영부문을 분리해 공사화함으로써 다른 교통수단들과 경쟁하도록 했고, 그것도 부족해 철도산업 자체를 독점체제에서 경쟁체제로 전환해 효율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SR를 코레일에 통합하려는 현 정부의 움직임은 한 세대에 걸친 구조개혁의 방향성을 완전히 굴절시키는 것이며 5년 좌파정권이나 2~3년 주무장관이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코레일은 ’16년말 기준으로 상시종업수가 2만6000여명에 이르고 직원 1인당 평균연봉이 6700여만원에 달한다. ’15년 한해만 반짝 860억원 흑자를 냈을 뿐 ’16년 다시 2300여억원 적자로 돌아서는 등 창사 이래 줄곧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그 결과 부채 규모는 13조7000억원에 이르며 부채비율은 288%, 한해 이자비용만 4200억원이다. 철도산업의 공공성이라는 명분 아래 시장경제 원리를 초월한 공룡 같은 공기업이 시대 원칙에 충실하며 열심히 뛰고 있는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전 정부에서 자회사를 만들어 경쟁구도를 구축해 놨으면 현 정부는 ‘경쟁이 피곤하다’고 엄살부리는 공룡을 채찍질해서 자회사를 쫓아가도록 독려해야할 판에 모회사의 ‘보신용’으로 갖다 바치려 한다. SR의 수익성이 높으니 잠시 코레일의 경영수지에 도움은 되겠지만 얼마 안가서 공룡의 비대한 몸통 일부로 동화돼 버릴 것이다. 성가진 경쟁 상대가 사라지고 다시 찾아온 독점체제를 누리게될 그 공룡은 국민들이 철도요금을 더 내서 먹여살려야 한다. 그 조차도 부족하면 세금 곳간을 노릴 것이다. 아무리 좌파 정부라도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좇아야할 민주정부로서 할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경쟁'은 우파에겐 '절대선', 좌파라도 '필요악'

'경쟁'은 우파의 관점에선 '절대선'이고 좌파의 입장에서라도 '필요악'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눠가져야할 사회적 가치는 한정돼 있는 현실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체제를 기피하고 혐오하는 정권은 가치와 재화가 풍족한 유토피아에서만 존립이 가능할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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