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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미하고 몽롱한 외상장부, 대우조선해양에 1조 '영구채'


입력 2017.07.02 06:50 수정 2017.07.02 07:18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30년동안 이자율 1%…자비로운 이 채권의 정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LNG운반선이 건조되고 있다.ⓒ데일리안DB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LNG운반선이 건조되고 있다.ⓒ데일리안DB

‘영구채’라고 하는 꽤나 특수한 형태의 채권이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 영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갑자기 늘어났다. 일반인들은 워낙 잘 모르는 일이라서 관심이 덜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영구채 발행은 나름 심각한 의미가 있기에 얘기해보기로 했다.

먼저 영구채란 어떤 것인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보자.

갑이 을로부터 돈 1억 원을 연리 3%의 조건으로 꾸어 쓴다고 하자. 빌린 돈은 갚아야 하는 법인데, 이자만 잘 지불할 것 같으면 원금 자체는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붙는다면 그게 바로 영구채, 즉 영구히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채무가 바로 영구채이다.

이런 돈 거래는 신뢰가 철석같이 튼튼한 사이에서나 있을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형, 최근에 어려운 것 같은데 여기 5백이야, 일단 쓰고 나중에 형편이 풀리면 갚아, 그리고 갚을 여력이 되지 않으면 그냥 안 갚아도 돼, 형, 힘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의리의 거래가 영구채라 하겠다.

이런 거래는 사실 친밀한 개인 간에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나 호호당 역시 살아오면서 이런 식으로 돈을 빌려준 적도 있고 또 나중에 돌려받지 않은 경우도 여러 번 있다. 반대로 이런 식으로 돈을 받아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이해를 다투는 기업의 세계에선 대단히 드물다. 영구채는 금융시장의 오랜 역사가 있는 서구 사회에선 아주 오래 전부터 드물긴 하지만 종종 있어왔으나 우리나라에선 2012년까지 발행된 적이 없었다.

기업이 전에 없던 영구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는 한 가지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영구히 갚지 않아도 되는 부채라면 그것을 일종의 자본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따라서 부채가 아니라 일종의 증자(增資)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에 있어서 자기자본이냐 부채냐 하는 점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이다.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차입할 때 은행 측에서 우선적으로 살피는 것은 부채비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돈이 자본으로 취급받는다면 필요한 돈은 조달한 반면 부채비율은 더 줄어든다. 이런 이중의 효과가 발생하면 기업의 재무구조가 훨씬 우량해진다. 재무구조가 튼튼하면 그를 바탕으로 또 다시 차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최초의 사례는 2012년 10월 5억 달러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한 두산 인프라코어였다.

아시다시피 두산그룹은 2007년 ‘밥캣’이란 해외의 건설중장비 제조업체를 인수한 이래 줄곧 위기설에 시달려왔으며 엄청난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 2015년 말인가 인프라코어의 알짜 사업인 공작기계 사업부를 매각한 다음에야 그런대로 겨우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

두산그룹이 국내 초유의 영구채를 발행한 것과 그룹이 위기에 처했던 일은 별개의 일이 아니다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다.

경영이 어려워지고 부채비율이 높아져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기에 부채를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영구채를 발행했던 것이라 보면 된다. 산업은행이 각별한 묘수를 동원해서 도와준 격이다.

그런데 영구채를 통한 부채가 자본인지 부채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국제회계기준 상으론 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호호당의 경우 금융은 잘 알고 있지만 회계기준에 대해선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기에 뭐라 할 말이 없다.)

자본이냐 부채냐의 이론적인 문제를 떠나 우려되는 것은 최근 영구채를 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모두 재무구조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이익은 나지 않고 부채비율은 더 높아져서 더 이상의 자금 차입을 하기 어렵다. 이에 영구채를 발행해서 필요 자금도 조달하고 그것을 또 자본으로 인정받으니 부채비율이 낮아져서 추가로 다시 자금을 차입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도 영구채를 제법 자주 발행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물론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영구채를 발행한 기업들의 주가는 대부분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나 SK텔레콤과 같은 우량기업의 경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예외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앞에서 얘기했듯이 막역한 사이도 아니건만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는 채권을 사주는 측의 입장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자.

과연 갚지 않아도 되는 그런 채권을 사주는 사람이나 기관들은 자비로운 사람들일까 하는 얘기이다. 자금사정이 좋지 못해서 영구채를 발행한다고 할 때 미래를 생각할 것 같으면 어느 누구가 선뜻 그런 위험한 채권을 사주겠는가?

짐작하겠지만 그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나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충분히 있기에 그런 채권을 사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면 계약이나 조건이 넉넉하게 붙기에 영구채를 산다고 봐야 한다는 말이다. 가령 5년이 지나고 또 다시 5년이 지나면 금리를 점점 대폭 올려간다든가 하는 계약 조항이 붙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영구채는 그 본질에 있어 자금사정이 어렵거나 장차 자금을 더 차입할 필요가 있는 기업들이 발행하는 일종의 고수익 고위험 특수 채권이라 하겠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금리 즉 반대 입장에선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채권인 셈이다.

그렇기에 발행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향후 큰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원금을 갚을 수 있는 권리를 계약 조항에 넣기도 한다.

그럼 이제 오늘 특별히 영구채에 대해 글을 쓴 근본취지를 밝힐 때가 되었다.

엄청난 손실을 낸 문제기업이자 국민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이 1조2848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지난 28일자로 발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개된 조건이 대단히 특이하다. 30년 동안 이자율은 연리 겨우 1%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거저’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대단히 자비로운 조건의 채권을 받아준 곳은 과연 어디일까? 하면 바로 한국수출입은행이다. 한국수출입 은행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채권과 상계 처리되기에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돈은 한 푼도 없다. 물론 한국 수출입은행의 재무상태는 그만큼 악화되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금년 1월말 현재 부채비율이 무려 1557%였는데 영구채 발행을 포함한 여러 특혜 조치들을 통해 올 말까지 부채비율을 400%대로 감축하고 장기적으론 300%대로 맞추겠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은 증시에서 거래가 정지된 종목이다. 자산이 15조나 되지만 부채 또한 사실상 그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만일 대우조선해양을 파선선고를 받은 한진해운처럼 처리한다면 이런저런 값어치 나가는 자산을 다 매각한다 해도 부채를 갚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것이 없거나 어쩌면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수출입은행을 시켜서 영구채 발행이라고 하는 방식을 통해 대단히 관대한 조건의 지원을 단행했다고 보면 되리라. 일자리도 지키고 우리 조선업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냥 간단히 말해서 산은이나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15조 가량의 돈을 국가가 지원한 셈이라 보면 되겠다. 그리고 국가가 지원했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그 돈을 지불한 셈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국민 중 어느 누구도 그 돈을 직접 주머니에서 털어낸 사람은 없다. 여기에 바로 묘한 진공 상태가 만들어진다. 분명 돈은 들어갔는데 돈을 낸 이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에서 만들어진 돈일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국민들이 정작 돈을 내지는 않았으나 국민 계정이란 것을 가상한다면 그 장부의 부채항목에 15조가 추가로 기재되었다고 보면 된다. 장차 대우조선해양이 다시 살아나면 모르는 사이에 부채항목에서 그 돈이 차감될 것이고 그 반대일 경우 더욱 불어나고 거기에 이자까지 잔뜩 붙은 청구서가 어느 날엔가 날아올 것이다.

돈을 국가가 또는 한국은행이 그냥 편하게 찍어낼 수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우리 모두 감각이 애매해지고 몽롱해진다는 느낌이다. 돈이야말로 피보다 더 진하다는 말도 있는 세상인데 말이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www.hohodang.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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