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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한 대화놀이는 이제 그만


입력 2017.06.26 04:35 수정 2017.10.16 09:54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6.25 67돌 그분들 조국애와 희생 있었기에

대화로 북핵 못막는건 자명한 사실 또 돈으로?

육군 제50보병사단과 미 19지원사령부 장병들이 23일 6·25 격전지(다부동 전투)인 경북 칠곡군 동명면 487고지에서 전사자 유해를 함께 발굴하고 있다.ⓒ연합뉴스 육군 제50보병사단과 미 19지원사령부 장병들이 23일 6·25 격전지(다부동 전투)인 경북 칠곡군 동명면 487고지에서 전사자 유해를 함께 발굴하고 있다.ⓒ연합뉴스

무더운 여름날 길손들이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이들은 누워서 나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아. 그러니까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단 말이지.” 옆 사람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덩치만 컸지 쓸모라고는 없어.” 듣다 못한 플라타너스가 한 마디 했다. “당신들은 정말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구려. 지금 내 그늘 덕을 보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이게 나라냐”고 따지던 사람들이 읽어봄직한 이솝우화다. ‘촛불혁명’이라는 것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해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그 물음에 답을 주겠노라며 임기를 시작했다. 그 기세를 보면 이전 보수정권들의 거의 모든 정책과 결정내용(진보좌파의 문법대로라면 ‘적폐’)을 다 뒤집어엎을 듯하다.

그늘에 쉬며 나무 흉보는 군상

진보좌파 인사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승만, 박정희 비판 또는 무시다. 그리고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수가 적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대한민국’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것도 이들의 이념적, 사상적, 그리고 인식적 특성이다. 이들 가운데 많은 수는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전략) 조그만 마을 하나를/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이 황폐한 풍경이/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후략)”

조지훈의 종군시 ‘다부원에서’이다. 백선엽이 국군 1사단을 지휘해 치르고 이겨낸 것이 바로 그 ‘다부동전투’였다. 6.25사변 예순일곱 돌을 맞아 ‘조선pub’이 97세 노장군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북한군은 ‘8월 공세’를 벌이며 백 장군이 지휘하던 우리 1사단 8000명을 향해 제3사단, 제13사단, 제1사단의 1개 연대 등 2만 명의 병력을 몰아 총공격을 가해 왔다. 백 장군은 “내가 선두에 서겠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가 나를 쏴라”라며 선두에 섰다. 결국 한 달을 끈 이 전투는 엄청난 수의 전사자를 내면서 한·미연합군 승리로 끝났다. 이 다부동방어선이 하마 지도에서 사라질 뻔했던 대한민국을 구해 냈다. 백 장군은 이후에도 여러 전장에서 다대한 공을 세웠고 마침내 6·25의 신화가 됐다.

그런데 여러해 전, 그러니까 2012년 10월 그 노 장군에 대해 어느 젊은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매도한 바 있다. 그 젊은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라 진보좌파의 많은 수가 백 장군의 만주군 경력을 문제 삼아 친일파로 몰아세웠다. 아마 같은 사람들이었으리라 여겨지지만, 이들은 집요하게 ‘맥아더 원수의 동상 철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전쟁 때 수백만 명의 무고한 양민 학살을 명령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만약 그 시절, 일제 치하에서 살기를 모두가 거부했다면 우리 겨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모두가 학문 닦기를, 군사학 배우기를, 산업기술 익히기를, 그 이전에 생활 각 분야에서의 생존·발전 역량 기르기를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이민족(異民族)의 식민통치 하에서 이를 악물고 목숨을 지키면서 차세대를 낳고 길러냈을 뿐 아니라, 남다른 영민함과 근면함으로 생존·발전의 역량을 키웠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된 것 아니던가.

전쟁 일으키고도 건재한 무리

“도시니 촌락이니 할 것 없이 온통 구린내 천지란 이야기, 독가스는 없어도 구린내에 코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가스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길거리에서 보는 거지며 부랑아들 이야기―‘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나라를 위해 전쟁까지 해 주어야 하느냐?” “소련을 응징하는 것이 이번 전쟁의 목적이라면 차라리 이런 나라는 소련에 주어 버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니냐?’ 등등, 바로 한국인의 심장에 비수를 겨누는 언언구구(言言句句) 기고만장한 대경구(大驚句)들이었습니다.”

김소운이 『목근통신-일본에 보내는 편지』에서 1950년 9월 10일 호 < 선데이 매일(每日) >의 좌담 기사에 대해 쓴 부분이다. 이 주간지 기자의 진행으로 < 뉴스위크 > 부주필, UP통신 기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라고 했다. “내 어머니는 레프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는 않겠습니다.” 이글에서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다.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경험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그 사실만은 마음에 새겨둘 일이다.

도무지 이치가 통하지 않는 세상임을 절감하게 하는 것은, 수백만 명의 겨레붙이를 죽거나 다치게 하고, 일제의 수탈 속에서 겨우 모았던 그 알량한 재산마저 깡그리 파괴해 버린 데 더해 외국 젊은이들까지 무수히 희생시킨 북한의 저 범죄집단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저들이 쓸고 간 폐허에서 우리는 피땀을 바쳐 위대한 성공을 이뤄냈다. 이제 우리는 세계 유수의 경제강국이자 정치적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이는 50년대엔 공상이었고, 60~70년대엔 신기루였다가 80년대에 들어서야 현실적 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운명이 시샘이라도 하는 듯,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 간의 진영싸움으로 치명적 내상을 입고 있다. 해방 어간의 그 격렬했던 대립이 하필이면 세계적으로 공산체제가 일제히 와해된 지난 20수년 사이에 재연되어 자해적 상황으로 번지다니! 50년 12월 23일 미군 수송선 메르디스 빅토리호의 피난민 구출작전 덕분에 흥남부두를 떠나 크리스마스날 제2의 고향 거제에 도착할 수 있었던 한 피난민 부부의 아들로서 마침내 대한민국의 통치자가 된 문 대통령은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어디다 두고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김정일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던 문 대통령이 이를 마뜩찮아 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이념적 좌표는?

대신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무섭게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도입·배치를 거북해 하는 언급을 이어갔다. 사드 4기 추가 도입에 충격을 받았다며 진상조사를 지시했고, 이후 청와대는 사드에 대한 환경평가를 기정사실화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 22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한미 간의 사드배치 합의 내용과는 달리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드 배치 절차들이 앞당겨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국 사이의 당초 합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버렸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한미동맹체제 운영 전 과정을 그때그때 일일이 발표하겠다는 것일까?

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는 이처럼 꺼리는 빛을 보이면서도 북한을 향해서는 유화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지난 15일 6.15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게 좀 난처한 제의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폐기를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현 상태에서 동결만 해주면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수준까지는 인정해 주겠다는 의미가 되고 만다.

하긴 이정도의 제의에 북한 당국이 솔깃해 할 리 없다. 그들은 이제까지 한 번도 우리를 군사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핵·미사일 문제는 미국과 사이의 현안인 만큼 우리정부는 빠지라는 게 저들의 태도다. 우리정부가 그걸 모를까. 알면서도 대화와 협력을 주장하는 것은 북핵 및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기보다 북한에 대한 지원, 특히 달러지원을 위한 핑계 만들기, 명분 쌓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햇볕으로 상대방의 외투를 벗길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며칠 후면 문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그런데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북한핵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가 애드벌룬을 너무 많이 띄운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털어내기 어렵다.

평화가 좋은 줄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다. 이 시점에 분명한 것은 대화 제의가 북한의 핵무장 욕구를 자제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와 미국은 한걸음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대화에 기대를 걸어왔다. 그러다가 미국은 군사적 대응을 통한 해결의 시점을 놓쳐 버렸다. 한국은 김정은의 기분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위협에 굴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평화란 없다. 평화를 원한다면 강력하고 단호한 응징력을 갖춰야 한다. 돈으로 평화를 사기는 불가능하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저들을 만족시킬만한 돈이 없다. 응징력을 갖추자면 한미동맹의 강화는 필수적이다.

동맹의 이익을 버리고 자주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면 그렇게 하시라. 그렇지만 5000만 국민 전체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대화놀이는 제발 멈추시라. 국민이 그럴 권리까지 정부에 위임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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