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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젊은 마크롱, 한국 좌·우 진영에 던지는 메시지는


입력 2017.06.26 05:10 수정 2017.06.26 16:53        데스크 (desk@dailian.co.kr)

시장지향적…고질병 공공부문 일자리 과감한 개혁

반미정서, 지붕 EU 덕에 가능…386위정자, 환상 곤란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KBS 9시뉴스화면 캡처]ⓒ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KBS 9시뉴스화면 캡처]ⓒ

시장지향적…고질병 공공부문 일자리에 과감한 개혁 다짐
'반미정서', 튼튼 지붕 EU 덕에 가능…386위정자, 환상 곤란


프랑스의 젊은 새 대통령 엠마뉴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이 세계정치에 주는 이미지는 우선 '신선함'으로 평가된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이념 지향적인 국가다. 이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때로는 프랑스가 가진 '나이스'한 이미지를 깎아 먹는다. 제도적으로 보수에 가까운(?) 프랑스의 정치생리상 원내의석도 없던 창당 1년의 신생정당 '앙마르슈!'가 집권 후 총선에서도 압승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2가지 커다란 시대적 흐름이 존재한다.

첫째 “앙마르슈!”와 마크롱은 자유주의 진영과 좌파 진영 모두를 끌어안았다. 중도를 표방하지만 경제정책은 매우 '시장 지향적'이다. 마크롱은 줄곧 기업들의 법인세 인하와 복지의 감축을 주장해 왔다. 거기에 더 나아가 유럽연합(EU)국가들의 고질병인 공공일자리에 대한 과감한 개혁 역시 주장했다. 실천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유럽의 공공부문 일자리에 관한 논쟁은 EU정상회의 때마다 빠짐없이 제기되었고,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공공부문 일자리에 관한 의견 불일치일 정도로 서유럽 선진국들의 오래된 숙제이자 논쟁거리다.

또한 마크롱은 좌파정당들의 이념적 전통도 함께 흡수했다. 유럽연합(EU)과 유로존에 대한 성실한 정책 집행과 이민정책에 대한 기존질서의 유지, 反트럼프 정서의 반영이다. 2010년 이후 유럽국가의 급격한 변화를 하나 꼽으라면 급진적 우파정당의 약진이다. 프랑스의 국민전선(NF), 독일의 독일대안당(AfD), 영국의 영국독립당(UKIP)과 이탈리아의 북부동맹(Lega Nord)뿐만 아니라, 북유럽 스칸디나비안 국가와 베네룩스 4개 국가까지 예외 없이 反이민정서를 대변하는 급진적 우파정당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프랑스의 실존하는 안보위협 요소인 이슬람국가(IS) 문제까지 2중의 부담을 돌파해야 할 프랑스가 마크롱 행정부에서도 이민정책을 유지한다는 것은 형식적이나마 '똘레랑스(Tolerance)'를 유지하겠다는 국제사회를 향한 선언이다. 이 선언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의 좌파가 가진 '전통적인 反美정서'의 유권자를 끌어안은 것이고, 마크롱 행정부의 이 정책은 곧 미국을 향한 反트럼프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좌파 전통과 맥이 닿는다.

유럽이라는 축적된 문명의 결과물

둘째, 유럽이라는 성숙한 문명의 결과물이다. 세계사를 뒤져보면 분명한 현상이 발견된다. 정교분리에 실패한 이슬람은 오늘날까지 정리되지 못한 도그마에 빠져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문명수준으로 전락했고, 산업혁명 이전 이미 정교분리에 성공한 유럽은 2세기가 넘게 세계문명을 주도했다. 즉 마크롱 현상은 시장의 형성과 재산권의 확립(Property Rights)이 완벽히 보장된 국가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현상이다.

냉전이 시작되고 국제사회는 체제경쟁이라는 극도의 긴장감이 세계적인 조류였다. 그토록 인물이 많다는 프랑스도 2차 세계대전 시기 '샤를 드골'이라는 초인적 인물이 해외에서나마 국가운영을 주도했고, 전후 냉전이 시작된 시기에도 그의 리더십 없이는 불안할 정도로 '정치' 영역은 개인 모두의 직접적인 생존문제와 직결된다고 믿었으며, 실질적으로 그랬다.

탈냉전기가 진행되면서 선진국들의 가장 큰 병폐라면 '쇼의 정치'다. 전쟁과 같이 극도의 통솔력과 성숙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면, 거기에 더해 서구사회처럼 개인의 자산가치가 보장된 국가에서 정치적 공약이 생계를 흔들진 못한다. 정치에 대한 간절한 기대가 덜 하니 정치 자체가 쇼(Show)이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 정치의 불행이자 행운이기도 하다. 마크롱 현상은 놀랄 일도, 신선한 현상도 아닌 지나치게 제도화된 공권력의 영역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념의 부재가 낳은 한국 자유진영의 몰락

위와 같은 이유로 마크롱이라는 인물은 가장 유럽적이면서 매우 프랑스적인 정치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좌파든 우파든 유럽정치가 지닌 '이념의 일관성'이다. 과거 영국 마가렛 대처의 정치노조 해산과 공공부문의 일자리 개혁에 대한 집념은 전투에 가까웠다. 보수당이 지닌 색깔에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퇴임 이후에도 본인의 정책에 대한 후회는 일절 하지 않았다. 임기 동안 줄곧 언론과 싸웠고, 여론을 의식하지 않았다.

반미정서를 명분으로 주류사회에 멋지게 편승한 386운동권들이 정권을 잡았다. 본 칼럼에서 '프랑스의 전통적 반미정서', '이념의 일관성', '反트럼프 정서' 운운했다고 패권국에 대한 도전적 정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홍콩느와르에 찌든 386들이 환상을 가질지는 모르나, 꿈 깨길 바란다. 유럽에 간혹 존재하는 반미정서는 유럽연합(EU)이라는 튼튼한 지붕(Roof)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유럽은 세계의 모든 공산품이 최종적으로 소비되는 거대 소비시장이다. 그 소비시장을 유지하는 질서는 '재산권'이다

보수의 몰락은 권력지향적인 386들을 상대로 이념적 무장을 못한 데도 기인

흔히들 대한민국 정치를 논할 때, 보수의 몰락이라는 표현을 자주한다. 이것을 예상 못했던 자유진영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이기적인 지대추구 행위자들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분명 386운동권들의 집권은 원치 않았겠지만, 그들의 삐딱하고 염세적인 세계관이 때로는 파쇼적인 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통찰을 하지 못했다. 386운동권들의 본질은 그들의 뒤틀린 세계관만큼 짐승 같은 본능에 충실하며, 무엇보다도 권력지향적인 386들을 상대로 이념적 무장이라도 분명히 되어 있어야 했다.

한국 자유주의 진영의 병폐는 엘리티즘에 대한 환상과 소위 '자리'를 향한 조선시대 노론파적 경직성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좌우를 떠나 한국정치 자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 세대교체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유도 유럽과 같은 서구 선진국에 비해 축적된 자산이 부족한 이유도 한 몫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도기다. 시장 질서에 파고들어 이권을 챙기려는 '지대추구(地代追求, rent-seeking) 좌파'들이 있고,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며 역시나 뒤로는 이권에 눈이 먼 '지대추구 우파'들이 존재하는 한 선진국의 새 정치로 평가되는 마크롱 현상이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다. 혹자들은 대한민국의 종합국력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전통적 서유럽 강국들과 비슷하다고 평가한다. 본인 역시 그렇게 믿지만 역사의 경험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한국의 젊은 정치와 성숙한 사회질서는 축적된 무형의 가치가 완벽히 보장받고 정권의 변화에 따라 불안하게 '자유주의적 질서'가 흔들리지 않는 그 때 가능할 것이다.

글 / 임종화 경기대 객원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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