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문재인 정부로 바뀌자 등장한 "양키 고홈" 종미몰이


입력 2017.06.24 07:42 수정 2017.10.16 10:0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친미라 욕하며 아들 딸은 미국서 낳고 유학

안보는 미국에 의지 구호는 평화 중국 눈치 보기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드 철회 평화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6월 24일 사드 반대를 위한 주한 미 대사관 인간 띠 잇기 행동을 알리기 위해 열렸다.ⓒ연합뉴스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드 철회 평화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6월 24일 사드 반대를 위한 주한 미 대사관 인간 띠 잇기 행동을 알리기 위해 열렸다.ⓒ연합뉴스

요즘 때 아니게 거리에서 ‘양키 고 홈’, ‘사드 고 홈’이란 구호가 등장했다. ‘친미’는 ‘친일’과 함께 민족배신, 국가반역이라는 분위기다. 그런 사람들은 ‘친중’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적 영향력이 강해진 중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에 걸릴 지경이다. 그런데 이제 안보마저 중국에 헌납하려는 움직임이다. 동서양의 패권주자로 미국과 중국을 상정하고, 우리는 동양의 맹주인 중국을 섬겨야 한다는 분위기다.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 독립과 굴기를 위해 ‘친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 외교적으로는 미국의 도움을 받으며, 구호로는 ‘평화’를 외치고 ‘친중’으로 눈치를 본다. 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시대착오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좌파정권 이후) 정부나 민간 재단의 돈으로 미국에 가서 살고, 미국 소고기를 즐기며, 자식을 미국에서 낳고 유학 보냈다. 최근 낙마한 법무장관후보자는 자식에게 ‘너의 (또 다른) 조국은 미국’이라고 자신의 저서에 썼다.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이제 국익을 직시하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허울뿐인 ‘자주’는 ‘주체사상’으로 충분하다.

단군 이래 우리나라는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최고의 역사적 소명으로 삼아왔다. 중국은 현대 서구열강의 침탈이전에는 대표적인 세계제국이었고 패권국이었다. 그 지위를 빼앗긴 것은 200년도 채 안됐다. 서구 열강은 1840년대 초 ‘아편전쟁’을 통해 중국의 아시아 패권을 의심했다. 19세기 말 청일전쟁을 통해 그 허약한 실체를 확인했다. 이후 그들은 중국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적어도 등소평의 개혁개방까지는...

장구한 세월동안의 중국의 그늘아래 있던 우리나라에도 독립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리민족의 독립은 고조선의 멸망과 한 사군의 설치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부여와 이어 건국된 고구려 등 3국이 한반도주변에서 독립국가의 명맥을 이었다. 한나라 이후 중국의 혼란상황에서 고구려 등은 적극적으로 중국과 겨룰 수 있었다. 독립적인 연호도 사용했다. 연호를 통해 ‘시간의 주인’임을 선포하는 것은 독립국가에게 상징적 의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지금도 중국 공산당은 시간을 통제하며 거대하고 다양해 진 중국에서 권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 독립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라는 649년에 당나라의 의관과 예복제도를 도입하고, 650년에 독자적인 연호를 폐하고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한다. 그 이후 삼국을 통일하고 우리민족의 지경을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켰다.(발해는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민족의 독자적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대한제국까지 우리는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고, 왕은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았다.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력자는 황제 뿐이고, 조선은 그 황제를 모시는 제후국 신세로 추락했다. 임진왜란 등 위기에서는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 때도 전쟁협상 당사국은 명과 왜였다. 우리 조선은 우리땅에서 전쟁이 벌어지는데도 방관자일 수밖에 없었다. 왜는 명나라 장군에게 뇌물을 주어 전력을 유지하고, 뒤틀리면 다시 침공하기를 반복했다. 독자적인 작전권이 없었던 조선은 철저한 반격을 통해 조속히 왜란을 종식시킬 수도 있었지만, 명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조선은 오랜 전란으로 초토화됐다. ‘중국의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치러야 했던 비극이다. 청나라 때 호란은 따로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근대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을 통해, 먼저 개화된 일본의 힘을 빌어 청으로 부터의 독립을 꾀하고 근대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 1894년∼1895년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일본이 이기고 야욕을 드러냈다. 조선은 러시아의 힘을 빌고자 했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이 그것이다. 영국 등 서구 열강 등은 일본과 가까웠다. 일본과 거리를 두고 조선에 힘을 보탤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 뿐이었다. 1897년 러시아 대사관에서 고종이 환궁한 후 칭제건원을 추진했으며 연호를 광무로 선포했다. 대한제국이 설립되고 진정한 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사건이었다.

굴곡진 역사를 넘어,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된다. 이제 중국이 다시 패권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세계 양강국으로 동아시아 뿐 아니라 전세계를 호령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간섭을 받았던 우리나라는 더욱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약해지고 혼란스러울 때 잠시 중국을 앞서 번영을 누렸지만, 이제 그 약발도 다 소진된 느낌이다. 이제 주권과 독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지금도 동아시아 패권을 위해 미국과 싸우며 북한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린다. 전통시대의 중국이 제후국을 상대로 했던 내정간섭과 빼닮았다. 북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가장 말려야 할 나라가 중국이다. 그럼에서 불구하고 세계 패권 경쟁에서 미국과 맞서고 한국을 조정하기 위해, 북핵을 이용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중국의 책략에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있다. “먼 나라와 친(親)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領土)를 넓히는” 전략이다. 중국(中國)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범저(范雎)가 진왕(秦王)에게 진언(進言)한 외교(外交) 정책(政策)이다. 우리도 그들의 책략을 도입해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 구한말에 일본과 러시아를 활용하려 했으나 욕심이 너무 많거나 힘이 부족했다. 지리적 불리도 있었다. 중국의 위협을 막기에 그들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중국은 계산이 빠른 나라다. 그러고 이익을 위해서는 채면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돈을 대놓고 숭상하는 세계유일의 사회주의 국가’다. 북핵 위협 뿐 아니라, 그 뒤의 패권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현명한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역사를 교훈삼아, 가까운 위협인 중국을 막기 위해 먼 나라 미국을 활용해야 한다.

필자는 항상 이야기한다. “세계에 꼭 패권국이 필요하다면, 우리나라를 위해선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어야 한다.” 우리의 전후 번영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역사는 가장 정확한 예언자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