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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저승사자'에서 '개혁 가이드'로 변신한 김상조


입력 2017.06.24 06:00 수정 2017.06.24 12:01        박영국 기자

'규제 칼날' 휘두르기보다 '개혁의 길' 안내 자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앞줄 가운데)이 23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4대그룹 전문경영인과의 정책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앞줄 가운데)이 23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4대그룹 전문경영인과의 정책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계와의 첫 만남에서 ‘소통’을 강조하며 시민단체에 몸담았던 시절의 ‘재계 저승사자’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기보다는 기업들이 스스로 개혁하도록 유도하고 안내하는 ‘가이드’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재계는 공정위가 아직 지배구조 개선이나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주요 이슈에서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성급함’과 ‘독단성’을 스스로 경계하는 김 위원장의 태도를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4대그룹 전문경영인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재벌개혁을 결코 서두르거나 독단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며, 기업인들과 신중하고 충실히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리겠다”면서 “그 과정에서 충실히 대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줄곧 ‘소통’을 강조하고 ‘독단’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대기업 그룹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이게 제 완벽한 오해일 수도 있고, 기업들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데 제가 조급증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공정위원장인 제가 그런 오해와 조급증을 갖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일 것이고, 이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기업인들을 만나 오해와 조급증을 풀고 싶었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세상 일이 제가 의도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말로 시장 질서를 통제하는 정부 관료에 걸맞은 현실 감각을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이같은 김 위원장의 유화적인 제스처에 잔뜩 조였던 긴장의 끈을 조금이나마 풀어놓는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단 중점 관리대상으로 지목했던 4대 그룹과 만남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면서 “과거 학자로서 가졌던 이론에 기업들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고 협의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 일방적으로 기준을 높이고 거기에 못 맞추면 두들기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을 설득하고 개혁 방향으로 유도하고,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부분은 조정하는 방식의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고 평가했다.

재계는 김 위원장이 앞으로 기업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고 개별 기업들과도 만남을 갖겠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오늘 같은 자리는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며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돼서도 안된다”면서 “오늘처럼 여러 기업이 함께하거나, 필요에 따라 개별 기업과 협의를 할 수도 있으며, 공정위 뿐만 아니라 정부 여러 부처들과 함께하는 자리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기업 한 관계자는 “30대그룹 간담회와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 기업의 개별 사안을 공개하고 정부 부처와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실상 과제물(투자, 고용 등에 대한)을 가져와 검사받는 식에 불과하다”면서 “김 위원장의 말대로 소규모, 혹은 개별 기업과의 자리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4대그룹 전문경영인들도 일제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정부시책과 공정위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이해가 많이 됐다”면서 “기업이나 나라나 다 경제발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위원장님 얘기 듣고 보니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어떻게 경제발전에 이바지할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자주 만나서 서로에 대한 어려움이라던지 발전 방향에 대해 토의하면 앞으로 좋은 결과 많이 있을 것 같다”면서 “오늘 ‘저자직강(著者直講)’을 들어서 감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도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면서 “예측 가능하고 명확하게, 신중하게 정책을 펴겠다고 말씀해주셨다”고 간담회 상황을 전했다.

그는 다만 “공정위의 주요 화두가 일감몰아주기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방향을 어떻게 하실지 안 물어볼 수 없었다”면서 “양적인 규제책보다는 질적으로 산업의 특수성 감안해서 신중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그런 과정을 겪어서 앞으로 잘 해가겠다는 말씀도 들어서 아주 안심하고 돌아간다”고 밝혔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도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한 경쟁’이란 경제정의 분야에서 이론과 실행력이 뛰어난 분”이라며 “그런 면에서 경제 경쟁력이 올라가고 일자리 창출되는 소통을 할수 있도록 자주 만나기로 했다. 좋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하현회 (주)LG 사장은 “비교적 진솔하게 설명해 주셨고 저희는 기업으로서 정책의 방향하고 공감을 이루면서 하나하나 제대로 된 성공사례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면서 “오늘은 방향성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자리였고, 계속 이런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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