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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최희서 "뇌섹녀 이미지 부담…연기에 직진"


입력 2017.06.24 09:02 수정 2017.06.26 00:24        부수정 기자

영화 '박열'서 가네코 후미코 역

"히든카드 호평…운 좋았을 뿐"

영화 '박열'에 출연한 배우 최희서는 "모든 장면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영화 '박열'에 출연한 배우 최희서는 "모든 장면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영화 '박열'서 가네코 후미코 역
"히든카드 호평…운 좋았을 뿐"


"가네코 후미코가 소수 계층을 위해 투쟁했다면, 전 저 자신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최희서(30·본명 최문경)는 영화 '박열' 속 가네코 후미코와 닮아 있었다. 이준익 감독이 최희서를 두고 '뇌섹녀'라고 한 것처럼, 똑 부러지고 당찼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한 최희서는 긴 무명의 시간 끝에 이 감독의 '동주'(2015)로 얼굴을 알렸다. '박열'을 통해 이 감독의 러브콜을 또 받은 그를 보노라면 이 감독이 왜 최희서를 선택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와 영어영문학과를 전공한 그는 한국어를 비롯해 일본어, 영어, 중국,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엄친딸'이다. 글솜씨도 좋다. 영화 홍보 활동을 위해 카카오의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올린 글은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23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최희서에게 '뇌섹녀'를 언급했더니 쑥스러워하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수식어'라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이 감독의 열두 번째 연출작인 '박열'은 간토(관동) 대학살이 벌어졌던 1923년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실화를 그렸다.

영화는 부당한 권력에 당당히 맞서 싸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심지 곧은 신념을 보여준다. 그간 시대극이 보여준 화려한 볼거리나 영웅들의 활약상보다는 두 사람의 가치관에 중점을 뒀다.

영화 '박열'에 출연한 배우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모든 것을 사랑한 듯하다"고 말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영화 '박열'에 출연한 배우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모든 것을 사랑한 듯하다"고 말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박열'은 가네코 후미코의 영화로 봐도 무방할 만큼 그녀의 가치관을 오롯이 잘 담아냈다. 이 감독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을 두고 '마음이 아닌 사상이 딱 맞는, 거리를 잴 수 없는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최희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생각이란, 마음을 일구어낸 밭이야.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의 생각은 마음을 일구어낸 밭과 같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아."

이 감독의 말에 온전히 공감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마음과 생각을 나눠서 생각할 순 없다"며 "마음과 생각이 함께 통해야 사랑에 빠지는 듯하다"고 전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에게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했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이 말을 직접 뱉은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이 인간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며 "박열과 함께 뜻을 도모하면서 박열이 실수하는 점들을 뛰어넘어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한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시 '개새끼로소이다'를 보고 단번에 그와 사상이 같다는 걸 인지한다. 그리곤 대뜸 "동거하자"고 고백한다. 영화엔 둘이 동거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생략됐다. 최희서의 입을 통해 그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는 시를 읽은 가네코 후미코가 친구를 통해 박열을 소개받았다고 합니다. 첫 데이트 때 둘이 너무 가난해서 전 재산을 챙겨왔대요. 근데 가네코 후미코가 자기가 밥을 산다고 했고, 그러자 박열이 '오늘은 제가 사지요'라고 했다고 해요. 참 드라마틱하죠? 둘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이 별로 없는 게 저한테 큰 숙제였어요. 몇 컷을 통해서 깊은 사랑을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로 분한 최희서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은 참 드라마틱하다"고 전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로 분한 최희서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은 참 드라마틱하다"고 전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동주'와 '옥자' 촬영을 마친 후 제주도 여행 중이던 최희서는 비자림에서 '박열'에 캐스팅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의 기쁜 모습은 사진에 담겨 블로그에 올라 왔다.

비자림을 행운의 숲이라고 얘기한 그는 한국에서 가네코 후미코를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다. 초등학교 때 일본에 살았던 터라 일본어를 현지인처럼 능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동주'에서 잠깐 한 일본어 연기를 본 일본 관객들은 최희서가 일본 배우가 아니냐고 했단다.

이 감독의 믿음을 듬뿍 받은 최희서에겐 한국어를 못하는 척하는 연기가 더 힘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장면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 공판 장면이 가장 힘들었어요. 무겁고 진지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을 표현해야 했거든요. 감동을 억지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가네코 후미코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눈물을 참았어요. 눈물을 참고,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는 심정으로 재판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훈 씨는 가네코 후미코가 '난 당신을 혼자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대사가 끝나자마자 펑펑 울었답니다. 호호. 저도 찍을 땐 많이 울었어요."

이제훈은 최희서에 대해 "가네코 후미코는 최희서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며 "가네코 후미코와 최희서가 닮았다. 최희서는 '박열'을 통해 보석처럼 빛날 것이고, 대한민국을 이끌 차세대 여배우"라고 극찬했다.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로 분한 최희서는 "박열 역의 이제훈을 믿고 연기했다"고 고백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로 분한 최희서는 "박열 역의 이제훈을 믿고 연기했다"고 고백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최희서는 "이제훈 씨가 박열을 더 닮았다"고 웃은 뒤 "제훈 씨가 연기할 때 집중해서 하는 편이라 촬영 중엔 자주 얘기하지 못했다. 서로 믿은 덕분에 잘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희서는 '박열'에서 싱그럽고 당찬 여인의 모습을 뽐내 '박열'의 발견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수줍게 웃은 그는 "처음엔 다가가기 힘든 여성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는데 하다 보니 영화의 활력소가 된 여성이 돼 있더라. 행동이 워낙 거침없어서 강인한 모습만 보여주면 매력이 덜 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럽고 귀엽게 표현했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본 국적인 가네코 후미코가 항일운동가인 박열과 신념을 같이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나라를 잃은 슬픔 때문에 아나키스트가 된 게 아니라 일본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아나키스트가 됐어요. 그런데도 박열과 그의 동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7년 동안 식모살이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인에 대한 동정심과 애착이 있었을 겁니다. 초등학교 때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가네코 후미코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어요."

박열, 가네코 후미코는 각각 22살, 21살 때 일본 권력에 맞섰다. 최희서의 실제 20대 초반 시절은 어땠을까. "쉴 새 없이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초등학교 때 학예발표회에서 연극 '심청전'을 선보였는데 그때 느꼈던 설렘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이후 해외에서 지내다 보니 국내 대학교에 연극영화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배우는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로 분한 최희서는 '박열'의 히든카드라는 말에 "운이 좋았을 뿐이다"고 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로 분한 최희서는 '박열'의 히든카드라는 말에 "운이 좋았을 뿐이다"고 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연극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그는 방학, 휴학 기간 연기에 매진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다. 최희서가 연기에 직진했기 때문이다. "20대가 다 가도록 연기에 매달렸습니다.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밤샘 촬영하면서 결과물이 없었는데도 부모님은 절 믿어주셨습니다. 제 길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냥 이 길에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하나에 꽂히면 파고드는 스타일이거든요(웃음)."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공연예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당시 연세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연예술 관련 학과에 간 사례는 최희서가 처음이었다. 최희서가 물꼬를 튼 덕에 후배들도 그의 뒤를 이었다. "동아리 후배들이 좋아해 준답니다. 호호. 교환학생일 때 선생님께서 두 가지를 강조하셨어요. '예측하지 못하는 즉흥성'과 '성스러운 불만족'. 즉흥 연기를 하라는 것과 연기에 불만족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희서는 또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좋은 연기를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인물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단다. 거대 자본을 들인, 액션에 치중한 영화보다는 이야기가 탄탄한 독립영화에 더 끌린다고.

아무리 이야기가 중요하다지만 어쨌든 배우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이름을 알려야만 선택받는 직업이다. '동주' 이전에 무명의 시절을 견딘 그 역시 이 점에 공감했다. "훌륭한 작가님 작품에 오디션을 보고 싶어도 기회조차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인지도가 없는 배우에겐 참 가혹하죠. 이런 부분은 한순간에 바꿀 수 없어요. 씁쓸하긴 하지만 인지도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최희서는 자신을 "알려지지 않은, 기대치가 낮은 배우"라고 했다. 기대하지 않고 영화를 보면 가네코 후미코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단다. "이 감독님이 저에게 '넌 우리 영화의 히든카드'라고 했어요. 근데 그냥 운이 잘 맞아떨어진 것뿐입니다(웃음)."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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