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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이준익 "박열·가네코, 잴 수 없는 사랑"


입력 2017.06.27 08:52 수정 2017.06.30 14:19        부수정 기자

영화 '박열'로 1년 여 만에 스크린 복귀

"일제강점기 분노의 감정으로만 보지 말아야"

이준익 감독은 영화 '박열'에 대해 "일제 강점기를 분노의 감정으로만 보지 말고,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로 바라보고자 만들었다"고 전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은 영화 '박열'에 대해 "일제 강점기를 분노의 감정으로만 보지 말고,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로 바라보고자 만들었다"고 전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박열'로 1년 여 만에 스크린 복귀
"일제강점기 분노의 감정으로만 보지 말아야"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생각이 맞았을까, 마음이 맞았을까?"

영화 '박열'을 만든 이준익 감독(57)이 물었다. 기자는 당연히 '마음'이라고 했다. 마음이 맞아야만 상대방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감독의 다음 얘기를 듣고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이란 마음을 일구어낸 밭이야. 밭은 오래 가고 변하지 않잖아. 근데 마음은 쉽게 변해. 하찮은 마음에 정신 팔려서 사랑 운운한 거야."

그러면서 이 감독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사상적 동지 관계이면서 정신적 사랑을 나눈 관계라고 정의했다. '거리를 잴 수 없는 사랑'이란다.

그가 만든 '박열'은 간토(관동)대학살이 벌어졌던 1923년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실화를 그렸다. 이 감독이 열두 번째 연출한 영화다.

제목은 '박열'이지만 가네코 후미코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박열을 보자마자 '동거하자'며 당당하게 외친 그녀는 박열에겐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가네코 후미코에게 박열도 그런 존재였다.

그녀는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때문에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 감독은 '모든 과실과 결점을 '마음'이라고 풀이했다.

영화 '박열'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박열'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23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 감독에게 '박열'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 이야기 같았다고 하자 이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마음과 정신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 무한한 거리를 뛰어넘은 사랑을 한 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는 거다.

"최희서 씨가 둘 사랑을 정확히 이해해서 연기했지. 세상엔 없는 사랑이라고? 난 세상에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해. 이런 사랑을 안 해 봐서 세상에 없는 사랑이라고 느끼는 거야. 하하."

영화는 부당한 권력에 당당히 맞서 싸운 박열과 후미코의 심지 곧은 신념을 보여준다. 그간 시대극이 보여준 화려한 볼거리나 영웅들의 활약상보다는 두 사람의 가치관에 중점을 뒀다.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을 위해 각 신문사에 연락해 사건의 일어났던 날짜의 신문 기사 내용을 모두 요청해 검토하기도 했다. 일본 관객들이 볼 경우를 생각하면 완벽한 고증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영화 시작부터 '이 영화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는 자막이 나온다.

이 감독은 "영화 배경이 동경이고, 일본 사람들이 주가 된다"면서 "일본 관객들이 보면 일본 영화에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프레임을 넓혀 보고자 했지. 일본 관객이 봤을 때 엄청나게 고증을 따질 거 아냐? 고증이 형편없다면 이 영화의 본질부터 부정할 거라고 생각해. 일본인들도 모르는 지식을 영화에 넣었지."

극 중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같이 산 집에서 나온 책 100권도 미술팀이 직접 만들었다. 가네코 후미코가 쓴 안경 역시 고증을 거쳐 탄생했다.

대사 대부분을 차지한 일본어 대사는 배우들끼리 서로 점검했다고. 이 감독 본인은 한 일이 없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면서 극 중 교도관 캐릭터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화를 들려줬다.

영화 '박열'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을 잴 수 없는 사랑"이라고 정의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박열'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을 잴 수 없는 사랑"이라고 정의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옥중에서 감시했던 형무소 문서주임 후지시다 이사보로(藤下伊一郞)는 해방 후 참회의 뜻으로 자기 아들을 박열의 양자로 바치고, 이름을 박정진(朴定鎭)으로 개명했다고. 이름 '정진'은 잘못된 걸 바로잡는다는 의미란다.

박열은 1923년 간토(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 내각의 계략을 눈치채고, 일본의 끔찍한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스스로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한다. 그리고 조선 최초의 대역죄인이 돼 사형까지 무릅쓴 공판에 몸을 던진다.

이 감독은 박열이 사형선고를 받은 게 아니라 사형을 스스로 쟁취했다고 강조했다. "서구 사법 체계를 훙내 내서 야욕을 채우려는 일본의 본질을 깨뜨린 거야. 부도적한 짓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목숨을 던진 것이기도 하고. 마지막에 감형받았는데 가네코 후미코가 거절하잖아. 끝내주지 않아?"

이 감독은 "'박열'이 100% 가네코 후미코 이야기"라며 "가네코 후미코는 열정적인 페미니스트"라고도 했다. "아나키스트와 페미니스트는 같은 거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권력을 탐하지 않아. 이들의 목표는 권력을 잡으려는 게 아니야. 촛불 봐봐. 권력을 잡자는 게 아니잖아. 다 아나키즘이야. 권력을 잡으면 다 망가져.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 자체가 목표지."

그러면서 이 감독은 '박열'이 권력을 조롱한다는 의미로 쓴 시 '개새끼로소이다'를 언급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하늘을 보고 짖는/달을 보고 짖는/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나도 그의 다리에다/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나는 개새끼로소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이 시를 보고 '박열'과 자신의 사상이 같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다. "마음은 변하지. 내 마음이 변하는 건 관대하면서 상대방 마음이 변하면 배신자라고 하잖아. 근데 사상은 변치 않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처럼 말이야."

영화 '박열'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자유 의지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봐달라 얘기하는 건 반칙"이라고 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박열'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자유 의지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봐달라 얘기하는 건 반칙"이라고 했다.ⓒ메가박스(주)플러스엠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고 싶냐고 묻자 이 감독은 고개를 저으며 '관전 포인트'를 소개하는 건 '불법이자 반칙'이라고 했다. 관객들도 자유 의지를 갖고 영화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의 평가는 관객들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악성 댓글도 본다는 그는 "살다 보면 어떤 문을 열자마자 절벽으로 떨어지는 일도 겪는다"면서 "내일의 문을 열었을 때 절벽에 사다리를 놓고 잘 가느냐, 마느냐는 대중의 반응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다양한 반응을 보약으로 삼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1993년 영화 '키드 캅'으로 데뷔한 그는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라디오스타'(2006), '즐거운 인생'(2007), '님은 먼곳에'(2008),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평양성'(2010), '소원'(2013), '사도'(2015), '동주'(2016) 등 다양한 작품을 내놓으며 대중과 소통했다.

이 감독은 '성실'이 연출 활동의 밑천이라고 했다. "심심한 건 못 참아. 그래서 외로울 틈이 없어. 하하. '박열'은 일제 강점기를 분노의 감정으로만 보지 말고,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로 바라보고자 만든 영화야. 그래야 시야가 넓어지거든. 근데 '어떻게 봐달라' 이렇게 말하긴 싫어. 관객들도 아나키스트거든."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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