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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지지율이면 어떤 것을 해도 무조건 옳다고?


입력 2017.06.19 04:49 수정 2017.10.16 09:55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정치를 선악으로 재단하려는 문 대통령의 오만

민주적 정당성은 대중적 인기 아닌 집권자의 민주정신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통령 국민직선제는 권력의 민주적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담보한다. 과거 유신체제나 5공체제가 간선제를 채택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상시적으로 도전을 받았던 기억은 언제나 새롭다. 이 간선제를 폐지하고 직선제를 채택한 것이 1987년 제9차 개정헌법이다. 대통령 직선제 회복은 곧 민주정치의 회생으로 인식되었다.

그렇지만 직선제가 정치권력의 민주화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오히려 권력 강화와 재집권을 위해 직선제 개헌을 단행했다. 52년 7월 4일의 제1차 개헌(발췌개헌)이다. 정부는 부산정치파동까지 일으켜 가며 기어이 그 개헌안을 통과(1952년 7월 4일)시켰다. 국회 간선으로는 도저히 재선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기와 정당성은 별개

이해 8월 5일 실시된 제2대 대통령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나선 이 전 대통령은 유효투표 수의 74.6%인 523만 8769표를 얻어 당선했다. 물론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직선제로 개헌한지 불과 1달 만에 치러진 선거였다. 게다가 여러 사회단체들이 결합한 원외 자유당을 기반으로 한 만큼 국민직선제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민 대중들 사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정치지도자였다. 이 전 대통령이 족청계 등의 힘만을 믿고 직선제를 고집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발췌개헌은 정치민주화를 위한 개헌이었는가. 국회 간선이 아니라 국민 직선으로 당선되었으므로, 또 국민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으므로 이 전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과 정통성을 확보했던 것일까?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에게 정당성‧정통성이 있다는 것은 상식적 판단이다. 그렇다고 간선제로 뽑힌 대통령에겐 그게 결여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기로 하면 미국의 대통령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겠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우, 대통령 직선제 회복 후 유일하게 국민의 과반수 득표를 한 만큼 이 점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을 압도한다고 할 것인가. 그런 대통령이 광장의 시위대와 여론조사, 그리고 야당의 공격과 헌재의 결정으로 현직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구속 수감되어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내란 또는 외환의 죄나 그에 버금갈만한 과오를 저지른 것 같지도 않은데?

반면에 투표자 41.4%의 지지를 받았을 뿐인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이 만든 대통령이라고 도덕성 정당성을 독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불과 41%의 득표로! 그게 좀 부담스러운지 정부 여당 측은 여론조사 지지율이 80%를 넘어서고 있는 것을 자랑한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5%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탄핵받아 마땅하다고 공격하던 그들이 80%를 넘는 지지율의 문 대통령은 어떤 일을 하든 옳다는 투로 말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참고용일 뿐”

그 대표적인 예가 정부 인사다. 문 대통령은 선거 때 스스로 공약한 ‘인사 배제 5대 원칙’에 해당되는 전력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국무총리,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여당 쪽에서는 문 대통령의 원칙은 큰 틀에서 말한 것일 뿐 세부사항이나 시행령은 이제부터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방어하고 나섰다. 애초에 공약할 때는 사안의 정도나 성격에 따라 구분하겠다는 말을 한바 없다. 그랬다가 이제 와서 말을 당당히 바꾸는 것은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믿기 때문일까?

청와대측은 지난 15일 마침내 “국회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 참고하는 과정일 뿐”(박수현 대변인)이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워원장 임명 강행과 관련한 입장 발표가 그랬다. 과거에, 야당이 정부 인사에 문제를 제기하면 청와대측에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반박하곤 했었다. 그때 그 말을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정부에서 다시 듣는 기분은 많이 고약하다.

대통령직인수기간 없이 바로 임기를 시작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하루빨리 자신의 정부를 구성하고 싶을 것이다.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부적격자를 기용해도 된다는 법은 없다. 당선 즉시 취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대선기간 중에 준비가 됐어야 했다. 문 대통령 자신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때 “전부 다 확정은 안 되더라도 대체로 어떤 분들과 국정을 운영할 건가에 대해서 대강의 모습은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인사 배제 원칙’이라는 것도 대통령 스스로 한 약속이다. 그걸 지키라 한다고 반박하고 나서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됐으나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가, 허위 혼인신고 전력과 아들의 대학입학과 관련된 야당의 의혹 제기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큰 상처를 입은 셈이 됐다. 그래서 더욱 청와대측의 검증과정이 중요하다. 제대로 걸러냈더라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이 와중에도 문 대통령은 야당의 공세가 잘못이라고 오히려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1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대통령과 야당 간에 승부를,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하지 못하다”며 불편한 심사를 내비쳤다. 그는 또 “국정이 안정된 시기에 하는 인사와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기에 하는 개혁을 위한 인사는 많이 다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말꼬리를 잡는 것 같아 안 됐지만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에 대해, 전비를 검증하는 대신 선행과 청렴에 대한 칭찬만 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려 귀를 의심하게 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의혹을 확대재생산하는 것(과거에 그때의 야당 청문위원들이 자주 그랬던 것처럼)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근거를 가지고 제기하는 의문까지 ‘온당치 못한’ 즉 ‘부당한’ 것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청문회가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싫은 소리일수록 귀 기울여야

그리고 지금이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기’라고 해서 하는 말인데, 그럴수록 인사도 개혁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통령을 도와 ‘근본적 개혁’을 추진할 인사를 기용하는 데는 과거 어느 정부 때보다 엄정한 검증의 잣대가 필요할 것이다. 청와대 인사 관련자들은 과연 어느 정도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인사 검증에 임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대통령의 언급이다.

강 장관을 기용해야 한미정상회담 준비가 제대로 되고 우리의 외교적 역량도 더 커진다는 청와대측의 설명 또한 난해하긴 마찬가지다. 하필이면 청문회 과정에서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된 인사를, 한국 외교의 새장을 열 인물로 고집하는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일개 필부로서는!

인기가 없는 대통령은 오히려 덜 위험하다. 주눅이 들어 과욕을 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의 박수갈채가 과도한 대통령의 경우다. 자신이 어떤 말, 어떤 결정을 하든 그것은 대다수 국민의 의사를 대신하는 것으로 믿어 버릴 수가 있다. 거기에 더해 자신감이 넘칠수록 모든 대상을 선과 악 이분법적 시각으로 판단하게 될 위험성이 커진다.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에 강조했던 ‘적폐청산’도 그 같은 인식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대통령이 선악의 잣대로 세상을 보게 되면 ‘개혁정치’는 악에 대한 징벌‧추방의 정치가 된다. 그리고 이의 정당화를 위해 국민의 인식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벌이게 될 수도 있다. 획일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되는 검정교과서들의 문제점은 들여다 볼 생각 없이 직전 정부가 주도해 만든 국정역사교과서를 취임일성으로 폐지시킨 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까지 선악의 관점에서만 파악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그 기간 동안에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정부 핵심 요직에, 이른바 진보좌파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헌법의 기본 얼개를 바꾸자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런 의욕이 있다고 해도 5년의 시간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징벌이나 추방으로는 개혁이 되지 않는다. 구소련을 비롯, 공산체제들의 말로가 보여준 바가 그것이다. 햇볕정책을 신봉해 온 사람들이라면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선은 나라 안의 정치적 경쟁자들에게 햇볕을 쬐어주는 게 순서에도 맞지 않을까?

문 대통령이 명념해야 할 것은 오늘 하루가 가면 그만큼 임기가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여론지지율의 고공행진이란 것은 시간에 취약하다. 언젠가 떨어질 때가 있다. 그 충격을 줄이는 방법은 높은 지지율에 우쭐해지지 않는 것이다. ‘역대 최고’, ‘사상 최고’라는 표현에 현혹되면 길을 잃게 된다.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간다는 원칙을 분명히 할 때 국민을 개혁에 동참시키기가 더 쉬워진다. 민주적 정당성 정통성은 선거방식, 대중적 인기가 아니라 집권자의 민주정신과 실천의지로 확보되는 것이다.

공자 가어(家語)에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라고 했다. 권세 있는 분들이라면 귀담아 들어둘 만한 말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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