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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협치'의 정치공학과 '철학의 빈곤'


입력 2017.06.13 03:42 수정 2017.06.25 08:01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여당, 협치 이상의 야당 협조 끌어낼 근거 없다는 방증

야당도 여당 독단 저지할 논리 부재…성찰과 반성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국회에서 첫 시정연설로 '일자리 추경' 시정연설을 갖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국회에서 첫 시정연설로 '일자리 추경' 시정연설을 갖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여당, 협치 이상의 야당 협조 끌어낼 근거 없다는 방증
야당도 여당 독단 저지할 논리 부재…성찰과 반성 필요


요즘 여야 정치권은 틈만 나면 '협치'를 입에 올린다. 여야 구분을 떠나 국익과 국민을 위해 힘을 합치자는 취지이니 나쁜 말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회와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치’하고자 하는 저의 노력으로 받아들여주십시오"라며 협치의 진정성을 호소했다. 이를 받은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오늘 시정연설은 말로는 '협치'와 '국회 존중'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일방적' 협조요구와 '밀어붙이기' 의지를 통보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며칠 전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협치는 여당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야당도 같이 해줘야 한다"며 야당의 태도 변화를 요청했고,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야당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추경안의 내용을 재검토하는 진정한 협치의 자세가 요구된다"며 여권을 향해 같은 주문을 냈다.

여야가 공용하는 협치, 의미는 아전인수 격

다들 협치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지만 의미는 아전인수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집권 여당이 하는 일을 믿고 야당이 지지해 주길 바란다”는 희망을 담아 협치를 얘기한다. 여소야대를 무마하기 위한 고육책이란 점에서 여당으로선 전혀 쓸모 없는 레토릭은 아니다. 반면에 한국당을 비롯한 야3당은 “집권 여당이 독단으로 밀어붙여선 안된다. 야당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며 협치를 내세운다. 집권 여당의 독주에 협치만큼 제동 걸기 좋은 구실은 없으니 외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안다. 현 정치판도에서 협치가 얼마나 실속 없는 공염불이자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뒤돌아 보면, 협치는 지난 3월 각당 대선후보 경선 때 가장 시세가 좋았다. 어느 당도 과반의석을 확보 못한 20대 총선 결과로 인해 어느 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여소야대 정국을 피할 수 없는 정치 여건이 배경이었다. 가정법이지만, 4당 중에서 이념적 좌표가 중간에 있는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이 대선에 승리했다면 상호간에 연정(연립정부) 내지는 협치가 현실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 결과는 국민의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고, 바른정당보다 더 오른 쪽에 있는 한국당이 2위를 차지한 데다 제1야당의 위치도 굳혔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이념적 성향과 지향점은 물과 기름이다. 민주당만 보더라도 선거 때는 중도표심을 겨냥해 ‘국민통합’을 한두번 거론하곤 했지만 집권 이후에는 점차 제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 색깔 내는 좌파정권 앞에 협치는 실속 없는 공염불

국회의 간섭을 피해갈 수 있는 정책들은 이미 적폐청산 작업의 도마 위에 올라 좌파의 칼날에 난도질 당하고 있다. 올바른역사교과서(국정역사교과서) 폐기, 환경론에 입각한 4대강 보 개방,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사드 환경영향평가 등이 일부 사례다. 그들에게 적폐는 보수정권 9년 동안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됐던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도 정부가 노동시장에 직접 개입하려는 측면에서 정권의 색깔이 진하게 배어 있다.

야당이 버티고 있는 국회 통과 사안에 대해선 일단 여권은 협치가 새겨진 ‘백기’를 앞세우고 접근한다. 국회 인사청문 대상자들이 청문회를 거치고도 보고서 채택이 지연되자 전병헌 정무수석이 야당 지도부를 찾아다니며 읍소를 했고, 12일 시정연설 차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이 재차 협조를 요청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야당이 협치에 공감해 입장 선회할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명분쌓기에 무게중심이 가 있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야당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김상조․강경화 후보자에 대해선 청문보고서 채택 시한 이후 날을 잡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 본회의 통과가 필요한 김이수 후보자와 일자리 추경예산안에 미칠 후폭풍이 염려되지만, 80%에 육박하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여권의 용기를 북돋워준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으면 ‘윈-윈’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부채질할 것이다.

‘백기’ 앞세운 여권 공세에 결말은 야권 ‘빈손’ 개연성

최악의 경우 야당으로선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도 있다. 공격보다 수비가 몇 배 더 어려운 법이다. 그 때쯤이면 협치는 꼬깃꼬깃 구겨져 휴지통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불태워 버리기는 어렵다. 화가 좀 풀리면 다시 끄집어내 쫙쫙 펴서는 협치를 다시 운운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당 스스로 채무이행각서를 발행했는데, 야당 입장에선 채권자 행세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기세 좋은 좌파 정권이 제 색깔을 희석시켜 가면서 보수 야당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협치를 외칠 야당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달리 시비 걸 만한 구실이 없으니 ‘밑져 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툭툭 던져보는 게 협치라는 인상을 받는다.

결국 여당은 협치를 내세워 실컷 어르다가 끝에는 뺨을 때리는 식이고, 야당은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게 협치에 얽힌 여야의 공생구조다.

협치를 뛰어넘는 치밀한 논거로 제 역할 다듬어야

이제는 가식을 벗어던질 때가 됐다. 어찌보면 ‘철학의 빈곤’을 감추기 위한 분식회계의 단면일 수도 있다. 여당은 협치 이상으로 야당의 협조와 지지를 끌어낼 근거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야당 또한 협치를 대신해서 여당의 독단과 편향성을 저지할 논리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 상태에서 보수적폐 청산을 주장하며 선무당처럼 휘젓고 다니니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좌파정권의 독주를 견제하겠다는 보수정당의 야성(野性) 또한 아직은 국민들에게 미숙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야가 공히 보다 진지한 자세로 본연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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