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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 주는' 정부…국민연금 투자 행보는?


입력 2017.06.13 06:00 수정 2017.06.13 06:11        부광우 기자

"삼성물산 합병 찬성" 기금운용본부장 실형…의사결정 위축 우려

금융위 "스튜어드십 코드 5% 룰 예외 인정"…기관 투자부담 완화

투자 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공단이 사법부와 행정부의 사뭇 엇갈린 판단 앞에서 고민에 빠지고 있다.ⓒ연합뉴스 투자 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공단이 사법부와 행정부의 사뭇 엇갈린 판단 앞에서 고민에 빠지고 있다.ⓒ연합뉴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공단이 사법부와 행정부의 사뭇 엇갈린 판단 앞에서 고민에 빠지고 있다. 최근 기관투자가의 상장기업 의결권 행사를 독려하는 기조와 별도로 과거 투자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책임을 과도하게 묻는 갈짓자 행보로 국민연금의 실질적 행동 범위를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법조계와 국민연금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직권남용 혐의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는 업무 상 배임 혐의로 각각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사실상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도록 지시했다고 봤다. 홍 전 본부장에 대해서는 기금운용본부장으로서 자산의 수익성과 주주가치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함에도 기금에 불리한 합병 안건에 투자위원회의 찬성을 끌어냈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이 손해를 입게 됐다고 판단했다.

문형표(왼쪽)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지난 8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문형표(왼쪽)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지난 8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외부 입김 강해질까…투자 보신주의 염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국민연금의 의사 결정을 과도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를 두고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높은 수익률 보다는 안전성을 추구하는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얘기다.

더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견이 여론과 반대된 판단도 아니었다는 점도 제기된다. 당시 자본시장에의 여론도 합병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삼성물산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경영권 공격에 시달리면서 외국계 투기 자본의 국내 기업 흔들기를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국민연금이 국익 보호 차원에서 백기사로 나서야 한다는 역할론이 대두됐다. 실제 삼성물산 소액 주주들도 55%가 주주총회에 참석해 84%가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을 둘러싸고 금융권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사법부가 기금 운용의 의사결정에 대해 과한 법 적용을 했다는 주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헤지펀드와의 경영권 분쟁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시장 논리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기금운용본부장이 이 같은 사안에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며 "앞으로 국민연금이 투자 방향을 잡을 때 외부 분위기를 살피며 보신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법령 해석집 배포를 통해 5% 보고 의무의 예외를 인정하면서, 기관투자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가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법령 해석집 배포를 통해 5% 보고 의무의 예외를 인정하면서, 기관투자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금융위원회

금융당국, 법령 해석 완화…연기금 향한 '손짓'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한층 완화된 법령 해석으로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확대를 독려하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이 국내 최대 규모의 연기금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장 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법령 해석집을 배포하면서 5% 보고 의무의 예외를 인정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인데, 금융위의 이번 해석으로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에 따른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 보고 의무는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가 해당 기업의 지분을 1%포인트 이상 사고팔 때 반드시 5영업일 이내에 공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기업 사냥꾼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고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공격하던 엘리엇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런 긍정적 효과와 별개로 스튜어드십 코드에 담긴 5% 룰이 기관 투자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기관투자자들은 적대적 M&A 의사가 전혀 없는데도 지분을 5% 이상 가졌다는 이유로 주식 거래 내역을 거의 실시간 보고해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자산운용 전략 노출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들은 지금까지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를 망설여 왔다.

그런데 이번에 금융위가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보유했더라도 지분 변동을 반드시 바로 보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국내 주식 투자만 10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여부에 더욱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는 시간문제일 것"이라며 "시장의 최고 큰 손인 국민연금의 결정에 따라 기타 연기금들도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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