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업들 윽박질러서 정규직 전환한들 쇼인 이유


입력 2017.06.11 06:50 수정 2017.06.11 09:21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세상의 먹고 사는 틀에 대하여③>

귀족과 유맹이 넘치면 그 사회는 최악 소작농은 실종

앞글에서 소작농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직장인이고 직장인 중에서 정규직을 말한다.

또 앞에서 얘기한 바, 우리 부모들의 일차적인 바람은 자녀가 좋은 조건의 소작농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대기업에 들어가 능력을 인정받고 또 운이 따르다 보면 임원까지도 할 수 있으니 그 정도 되면 이제 단순 소작농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간부일 경우 옛 시절로 가보면 일종의 사(士) 클라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춘추전국 시절 사(士)는 하급 무사로서 소작농들을 관리 단속하면서 상당한 신분적 특권을 누렸으니 오늘날 이른바 고급 월급쟁이, 즉 대기업의 간부급에 해당된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러니 우리 부모들이 그런 소망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자녀를 대기업에 들여보내 소작농이 되게 하고 또 잘 하면 간부, 즉 사(士) 계층으로까지 출세해서 잘 살 수 있게 하려는 생각은 2000년대 초반 무렵이 되자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부모들의 염원이 되어 이른바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있었기에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들의 여망에 따라 대학을 대거 설립하도록 조치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 벌어졌다. 앞의 글에서 얘기했듯이 외환위기 이후 정년을 보장받던 풍토가 사라지고, 해마다 받는 급여를 정하는 연봉제라든가 계급정년, 성과제, 임금 피크제, 여기에 수시로 있는 구조조정과 감원이 기본적인 풍토가 되면서 대기업 취업의 문이 급격히 좁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소작농으로의 진로가 좁아진 것이다. 그러자 자녀를 대기업의 소작농이 되게 하려는 부모들의 투자는 사실상 무한경쟁으로 들어갔다. 엄청난 교육투자가 2000년 초반부터 사정없이 진행되었다.

좋은 대학에 수시모집으로 보내기 위한 갖은 노력이 있었으며, 대학을 갔더라도 해외유학과 어학연수, 스펙 쌓기 등 실로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착 딱하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기업들의 인력채용은 서서히 감소할 뿐 아니라 특히 정규직이라는 양질의 일자리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으니 그렇다.

최근엔 인성검사라는 것도 실시하는데, 그 본질은 결국 착한 소작농으로서의 자질을 지녔는지를 확인하는 테스트에 불과하다. 창의적인 인재라면 통과가 어렵다 봐도 무방하다.

우리 부모들의 교육투자가 무한경쟁으로 치닫기 시작했던 바로 그 무렵부터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그 대신에 비정규직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욱 무리하고 무모한 교육투자가 가속화되었다. 정규직이 될 확률이 희박해진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열정페이, 희망고문 등등 무수한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이제 비정규직, 다른 표현으론 임시직에 대해 얘기하자. 노골적으로 말하면 품팔이라 하겠으니 여기에도 다양한 단계가 존재한다. 품팔이란 품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해주는 이를 말하는데 그나마 2년 정도의 계약으로 일하는 품팔이에서부터 알바와 같이 수시로 다른 일을 하는 이는 날품팔이 혹은 막품팔이도 일반화되었다.

품을 파는 사람은 일자리를 찾아 품삯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그렇기에 이를 옛날식 표현으로 바꾸면 유맹(流氓)이 되는 것이다. 흐를 류(流)에 처지가 어려운 백성을 뜻하는 맹(氓)이 그것이다. 흘러 다니면서 간신히 먹고 사는 딱한 이를 말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너무나도 일반화된 비정규직 문제는 옛날로 치면 유맹(流氓)의 문제인 셈이다. 과거의 왕조들은 홍수나 자연재해 등으로 떠도는 유맹이 발생하면 민란이 발생하고 통치기반이 흔들렸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 또한 다른 게 아니라 유맹의 문제 즉 만연한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번의 문재인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민들이 기회를 주었지만 그 주어진 시간은 겨우 2년 안팎이라 본다.

그 시간 내에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박근혜 정권과 같은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권력을 잡았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라, 실은 칼날 위에 서있는 문재인 정부인 것이다.

유맹(流氓)으로 전락하고픈 청년들은 없다. 일단은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고 또 학비를 받아가면서 나름 공무원 시험이나 기타 그래도 희망이 있어 보이는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마냥 공무원 숫자를 늘릴 순 없는 노릇이고 유망한 자격증이나 일자리 또한 어차피 한정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여전히 ‘희망고문’인 것이다.

용돈을 타고 학비를 타고 있는 청년들 또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왜냐면 그 부모들이 지출할 수 있는 돈에도 엄연한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청년백수를 자녀로 둔 나이든 중산층들 역시 재원(財源)이 빠른 속도로 마르고 고갈되고 있다. 어쩌면 올해 2017년으로서 사실상 고갈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식 걱정에 무한정 돈을 대고 있는 우리 부모들이나 학비와 용돈을 타서 쓰는 청년들이나 막다른 곳으로 내몰리고 있는 2017년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며칠 전 오후 4시 무렵, 사람 만날 일이 있어 작업실 인근의 커피 집에 들렀다. 강남 교보타워 근처의 카페였다. 약속 시간이 조금 남은 터라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주변을 살폈다.

바로 곁의 테이블엔 20대 중반의 여성이 마스크를 쓴 채 앉아있었다. ‘다빈치 코드’의 인기 소설 작가 댄 브라운이 쓴 페이퍼백 영문 소설을 읽다가 졸다가 하고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미국 좀 다녀왔구나, 그래도 영문소설을 읽고 있으니, 그런데 취업은 아직 못했나 보지, 그간에 돈을 많이 쓴 저 여학생의 부모님들은 걱정이 많겠네 했다.

그러고 나서 가게 전체를 둘러보았더니 젊은이들만 정확하게 21명이 있었는데, 살펴보니 직업이 있겠다 싶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취업준비생 아니면 그냥 노는 젊은이들인성 싶었다. 노트북 보는 젊은이, 책을 보는 젊은이, 분명 한국인이건만 영어로 대화하는 젊은이, 각양각색이었지만 공통점은 모두 무직인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긴 서울 한 복판의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그나마 집안이 그런대로 여유가 좀 있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또 공부도 하고 있겠지만, 이 모습이 우리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모습은 분명 아닐 것이었다.

댄 브라운 영문소설을 그냥 읽을 정도라면 그 또한 능력이고 우리나라의 국력 축적이건만 당장은 아무 짝에 쓸 데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낭비? 하는 생각, 저 정도 영어를 하기까지 나라 전체적으로 엄청난 돈이 들어갔을 거란 생각, 한편으론 또 젊은이들인들 뭐 저러고 싶어서 평일 오후에 카페에 앉아 죽을 치고 있으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절로 길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에휴-.

서울 강남 거리가 저와 같은 고급의 젊은 유맹(流氓) 혹은 그 후보자들로 넘쳐나고 있는 2017년 6월의 어느 오후였다.

그런가 하면 진짜 유맹들도 너무나 많아졌다. 퇴직할 나이에 재취업하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로 인력시장이 넘쳐난다. 적은 보수라도 싫다 하지 않고 그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중년 이상의 구직자들로 인력시장이 활발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벌어놓은 것이 없을 것이니 사실상 진짜 유맹인 것이다.

그 바람에 소작농 즉 정규직만 된다면 소원이 없을 정도의 세상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되었다. 이에 새 대통령은 공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들에 대해 모종의 압력을 행사해서 정규직 전환을 권유 혹은 강제하고 있다.

그런데 저렇게 하는 것 역시 정상적인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걱정이 된다.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이 기존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저처럼 쉽게 전환할 수 있었으면 진작 했어야 할 일이지 왜 갑자기 새 정권이 등장했다고 순순히 응하는 것일까?

저렇게 압력이 통한다면 장차 정치인들이 기업에 대해 은밀하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도 아니라고 당당하게 거부할 기업인들이 얼마나 될까?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인들과의 독대를 통해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 이번 정권의 실세들은 과연 그런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까? 여러모로 우려가 되는 것이다.

한창 날이 선 정치권력이라고 해서 일단은 기업들이 순순히 정규직 전환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과연 얼마나 이어질 까? 물론 국민들의 여망을 받드는 그 의도는 좋다 하겠으나 이게 순리(順理)라는 생각은 들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새 정권의 서슬에 눌려 순순히 응하는 기업들의 저 모습은 해결이 아니고 해법도 아니다. 굳이 좋게 평한다면 잠시 보여주는 쇼(show)와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정리하자.

예나 지금이나 소작농의 비중이 커져야만 그 나라와 사회가 안정된다. 귀족과 유맹이 많아지면 가장 최악이다.

포럼 같은 곳에선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지적하고 있다. 서비스업으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충고가 그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서비스업이 아니라 괜찮은 조건의 소작농을 늘려야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중산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괜찮은 조건의 소작농은 갈수록 줄어들고 유맹(流氓)만 늘어나고 있다. 세상 살기가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귀족들 또한 늘어나서 화려한 삶을 구가하고 있다. 대조(對照) 즉 콘트라스트가 너무 심한 대한민국인 것이다.

유맹이 많아지면 사회는 살벌해진다. 살벌한 사회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항산(恒産)이 없는 사회, 안정된 벌이가 없는 사회인 것이니 그렇게 되면 세상은 각박해지고 사람들은 염치가 없어진다.

언젠가 지하철 문틀에 끼어 꽃다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청년, 가방 속에 달랑 컵라면 하나 들어있었던 청년의 죽음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했었는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끝난 서글픈 유맹의 삶이었던 것이다.

글의 분량이 찼다. 귀족과 소작농, 유맹에 대해 얘기했으니 이제 전사 상인과 소상인(자작농), 그리고 선생에 대해 차례로 얘기를 이어가겠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www.hohodang.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