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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귀족 '금수저'가 많으면 그 사회는 고여버린다


입력 2017.06.03 23:08 수정 2017.06.04 03:58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세상의 먹고 사는 틀에 대하여②>

진보 좌파 안에도 대기업 노조처럼 귀족 많아

지난 2015년 4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총투표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민노총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5년 4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총투표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민노총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앞의 글에서 오늘날엔 전사 상인 즉 성공한 기업가만이 아니라 누구나 귀족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타고난 신분에 의해 계급이 정해지는 사회가 아니라 기회만큼은 모든 이에게 부여하고자 애쓰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니 이게 바로 역사의 발전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고 그 부자가 자손에게 충분한 부를 물려주면 그 자손은 귀족이 되는 세상이다. (재미난 점은 최근 들어 부를 물려받아서 귀족적 생활을 누리는 이를 ‘금수저’라 부른다는 점이다.)

귀족이 되는 것은 사실 모든 이가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풍요로운 생활, 이른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으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역설적으로 어떤 사회 내에 귀족의 비중이 커지면 그들을 떠받쳐야 하는 하층의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일, 사회가 정체되고 퇴보한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저성장 흐름 역시 귀족이 많아졌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창업주로서 엄청난 부를 모은 1세대 전사 상인과 그 후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실로 많은 이들이 귀족이 되었거나 귀족화되었기 때문이다.

잠깐 예를 들면 실로 다양하다.

대기업의 사장이나 등기임원, 공직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 채용된 고액 연봉의 변호사, 고액 연봉의 대형 종합 병원 병원장, 정년까지 신분을 보장받은 이른바 테뉴어 교수, 사학 재단의 임직원, 대기업의 노조위원장, 그리고 지금까지 열거한 사람들의 자녀들은 이미 귀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대기업의 노조원, 안정된 급여에 연금 또한 충분해서 노후가 보장된 교사들도 사실은 일종의 귀족화된 사람들이다. 이처럼 수준의 차이야 있겠으나 아무튼 이미 우리 사회엔 미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귀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귀족이나 귀족화된 사람이 많아지면 그 사회는 정체된다.

사실 오늘날 선진 여러 나라들의 경우 국가의 재정 여력은 사라진 반면 청년 실업자가 들끓게 된 이면에는 바로 이런 문제가 놓여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복지와 연금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역시 같은 얘기이다.

예로서 프랑스의 경우 국가재정은 부채 덩어리이건만 나이든 세대 소위 과거 ‘68세대’들의 연금수령은 여전히 지나치게 많다. 이번 프랑스에서 대표정당이 모두 무너지고 전혀 엉뚱한 신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 역시 그에 대한 반발이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한때 복지국가의 상징이었던 스웨덴과 같은 국가는 기본 정책을 완전히 바꾸었다. 미국 역시 트럼프와 같은 아웃사이더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민주당 지지계층의 상당수가 실은 귀족화된 사람들이기에 이에 대한 반발로 풀이할 수 있다. 귀족 이미지의 힐러리가 싫었던 것이다.

일본 역시 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나이든 세대가 수령하는 연금이 너무나도 과도한 반면 국가 부채는 실로 엄청나다.

귀족 내지는 귀족화된 계층을 달리 표현하면 기득권층이다. 오늘날 우리를 포함해서 이른바 선진화된 나라들의 핵심 문제점은 기득권층이 너무나도 두텁게 퇴적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게 문제의 본질이다.

귀족이 되는 과정이 합법적이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귀족계층이 비대해지고 비중이 커지면 그 사회는 정체되고 퇴보한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옛날 쿠데타를 통해 기존의 왕조를 전복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왕조들은 으레 부정부패가 누적되고 서민들에 대한 가렴주구가 너무 심해서 하늘이 기존 왕조를 버렸다는 식의 설명을 제시했다. 천명(天命)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시대에도 정권 교체 시엔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은 설명이 만들어지고 또 제공된다. 민심은 곧 하늘인데 그런 민심을 잃었으니 새 정권이 등장한다는 식이다, 여전히 신화(神話)적인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우려를 한다. 이대로 가면 그야말로 기득권이 공고해져서 서민과 빈곤층의 삶만 더 힘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엔 교육이 부와 신분이 대물림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들려온다.

이런 생각들이 최근 들어 많은 공감을 얻었고 이에 이번 진보 혹은 좌파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던 커다란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진보와 좌파 안에도 이미 수많은 귀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렇긴 하지만 앞서의 우려는 영국의 철학자 로저 베이컨이 설파한 바와 같이 ‘동굴의 우상’이고 그로 인한 편견이라 본다.

세상 어디 만만한 가 말이다. 영원히 이어지는 것 세상에 없고 더구나 오늘날처럼 신분의 제약이 없을뿐더러 새로운 산업기술이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세상에서 귀족의 부와 지위를 장구한 세월 동안 이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어렵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은 늘 60년 순환을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 안에 사계절이 다 들어있으며 새 봄이 되면 새로운 싹이 돋아나서 여름을 만들어간다.

우리 국운의 경우 2024년이 입춘 시작이니 그로부터 18년이 경과하는 2042년 무렵이면 온 세상이 철저하리만큼 다 바뀌어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니 오늘의 귀족 중에 그때 가서도 귀족으로 남아있을 자는 지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것이 다 한 때의 일.

60년 한 사이클 안에서 만들어진 부와 권력, 지위는 다음 60년 사이클로 들어서면 어느새 옛 자취로만 기억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약간만 긴 안목에서 볼 것 같으면 별 문제 아니라고 여긴다. 이런 이치를 알고 있는 나 호호당은 사실 대단히 느긋하다.

우리 인간이란 동물은 참 특이한 존재이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미래를 예측하려는 존재인 까닭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미래가 불투명할 때 인간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바람에 그 결과가 좋은 반면, 미래를 보장해줄 때 그 순간 즉각적으로 인간은 해이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기대가 굳은 언약으로 결정되는 그 순간부터 그 언약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는 이 모순, 그리고 역설(逆說). 이는 나 호호당이 역사에 대한 탐구를 통해 무수히 확인해온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날 선진 여러 나라들은 물론이요 우리 스스로도 이미 귀족이 너무 많아졌긴 하지만 이런 문제는 조만간 새로운 산업의 물결이 밀어닥치면 빠른 속도로 무너져갈 것이라 확신을 한다. 슘페터가 말했던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귀족에 대한 얘기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귀족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소작농과 유맹(流氓)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대학졸업자와 그 이상의 학력을 갖춘 청년들로 득실한 세상이다. 이는 자녀들이 좋은 학력을 쌓아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그로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우리나라 보통 부모들의 마음 때문이다.

인생을 좀 겪은 부모들은 세상에 대해 나름 알고 있다. 가령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예체능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녀에게 특별히 물려줄 만한 재산이 없다면 그저 공부라도 시켜서 좋은 직장, 일류 직장, 대기업 등에서 승진 출세하는 길이 그나마 가장 무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란 그런데 과연 어떤 존재인가? 바로 과거의 소작농(小作農)에 해당된다. 지주에게 일정한 사용료를 내고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부가 바로 소작농이다. 농사를 지어 수확이 나오면 일정 부분을 바친 다음 나머지 산출로서 먹고 사는 존재가 소작농이다.

지주에게 바치는 것이 너무 가혹하지만 않다면 예로부터 소작농 역시 그런대로 먹고 살만한 일이었다. 오늘날 직장인들이 기업에 들어가 일하고 수익을 낸 다음 수익의 일부를 급여로 받고 있으니 실은 소작농이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은 좋은 조건의 소작농인 셈이고 그렇지 않은 기업의 직장인은 보다 열악한 상태의 소작농인 셈이다.

예전 우리나라가 지속 성장을 하던 시절, 직장인들은 대부분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으며 급여도 호봉에 따라 많아졌기에 사실 괜찮은 소작농이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런 풍토가 일거에 사라지고 말았다. 해마다 받는 급여를 새롭게 조정하는 연봉제, 계급정년, 성과제, 임금 피크제, 여기에 수시로 있는 구조조정과 감원까지 합쳐져서 오늘날 직장인은 더 이상 안정적인 소작농이 아니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안정성이 그 이후 크게 떨어진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던 것이다.

글이 길어졌다. 다음 글에서 잇기로 한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www.hohodang.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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