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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 정체성 혼란에 역할 인식마저 부족하다


입력 2017.06.03 02:04 수정 2017.06.03 23:34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민주당 사드대책특위의 '사드 청문회' 개최 움직임

국민을 보고 정치 하나? 청와대를 보고 정치 하나?

 더불어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 심재권 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국방부의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 보고누락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 심재권 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국방부의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 보고누락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사드대책특위의 '사드 청문회' 개최 움직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추가 반입 보고 누락 파문를 놓고 청와대가 국방부를 상대로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여당이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사드대책특위 심재권 위원장과 특위 위원들(유승희·김영호·김현권·소병훈·신동근 의원)은 1일 국회에서 대책회의를 가진 뒤 성명을 발표, "국방부가 지난 25∼26일 국정기획자문위 업무보고에서 의도적으로 사드와 관련한 사실을 은폐보고한 것이 밝혀졌다"며 "명백히 중대한 하극상이요 국기문란"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방부가 국정기획자문위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의도적으로 은폐 보고한 경위와 배후에 대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라며 "국방부가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문서 초안에는 포함돼 있었던 사드 발사대 6기 내용을 삭제하도록 지시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청문회가 열리면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증인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언론에 보도됐다.

민주당, 집권 여당으로서 역할 인식부족과 정체성 혼란

이같은 사드 청문회 추진 움직임을 보면서 민주당이 집권 여당으로서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심지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사드 파문은 행정부 내에서 일어난 일이다. 속을 들여다 보면, 보고를 올린 쪽은 전(前) 정권 인사들인 동시에 하급자들이고, 보고를 받은 쪽은 새 정권 인사들이며 상급자이다. 같은 행정부 내의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서 상급자가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진상을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역량과 권한이 있다.

특히 그 상급자는 행정부의 최고권력인 청와대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비서실의 민정수석과 안보실장에게 진상을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그 경과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조사가 미흡하면 감사원 감사도 지시할 수 있고, 그것도 부족하면 수사기관도 동원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사드 은폐 보고’의 진상을 규명해야겠다며 국회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겠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오지랖이 넓은 것인지, 할 일이 없어 그런지 의문이 들게 한다.

민주당은 국민을 보고 정치 하나? 청와대를 보고 정치 하나?

기본적으로 의회는 행정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세력이다. 정녕 국회가 청문회를 열겠다면 “행정부는 왜 ‘은폐보고’ 논란을 일으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는지, 과연 보고를 한 쪽이 장난을 친 것인지, 아니면 보고를 받은 쪽이 부실했는지 따져봐야겠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접근해야 정상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문회 증인도 보고를 올린 쪽뿐만 아니라 보고를 받은 쪽, 예컨대 정의용 안보실장도 함께 불러 경위를 추궁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청문회 증인으로 보고를 올린 쪽만 불러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것은 ‘상황인식이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자초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금 보고받은 쪽의 '대리인'을 자처하고 있는가? 혹 보고 받은 쪽에서 “아, 우리는 힘이 없어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없으니 당에서 대신 총대를 좀 매달라”고 물밑 요청이라도 하던가? 이 대목에서 민주당이 과연 청와대를 보고 정치를 하는지, 아니면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필자가 과민해서인가?

국회가 견제해야할 상대는 힘 있는 새 권력이지 힘 빠진 전(前) 정부 패장들이 아니다

민주당 사드대책특위는 지난 3월 중순 민주당이 야당 시절에 출범했다. 이후 사드 도입 문제를 놓고 김관진 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실랑이하던 관성이 여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들의 주 견제대상이 그들로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다. 이제는 정권을 쥐고 있는 새 권력의 전횡과 일탈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다. 같은 편이라서 그렇게 하기 싫다면 가만히라도 있으면 감점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은폐 보고’를 빌미로 전 정권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을 국회로 불러들여 사드 도입 전 과정을 들춰보고 싶은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그간 야당으로서 쌓였던 분풀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그런 생각이라면 당당하게 ‘전 정권에서 논란이 됐던 정책들은 모조리 심판대에 올려 좌파정권의 잣대로 재검증해 보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해라. 정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에 따른 후과(後果)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사드 과잉 반응…'완장 찬 점령군'의 또 다른 유세(有勢)인가

이번 사드 보고 누락 파문을 보면, 사건 발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 수뇌부의 반응은 ‘과잉(over)’으로 점철됐다. 문 대통령은 추가 반입 보고를 처음 받았을 때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한 것이 공개돼 야당으로부터 ‘호들갑’이란 비아냥을 받았다. 급기야 미국과 중국까지 나서서 자국의 이익을 반영한 성명을 발표하며 숟가락을 얹는 바람에 국제적인 갈등 요인으로 비화됐다. 이런 판국에 집권 여당마저 청문회를 거론하며 사태를 키우는 것은 국민들 눈에는 '완장 찬 점령군'의 또 다른 유세(有勢)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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