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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공적? 사드 들여와 배치한 것


입력 2017.05.31 07:31 수정 2017.05.31 11:08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민주주의는 자유를 유지하는 방편

자유에 대한 간접 침략, 자유주의자들이 분쇄해야

3월 6일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일부 체계가 한국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주한미군사령부 3월 6일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일부 체계가 한국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주한미군사령부

지도자에게는 공과(功過)가 있다. 세종 같은 위대한 군주에게도 과(過)는 있었다. 예를 들어 금광을 폐쇄한 것이나 무역과 상업을 철저한 국가 허가제 아래 묶은 것이 그렇다. 금을 캐내면 사치를 조장하고 상업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세종의 이런 꽉 막힌 생각이 아니었더라면 조선의 광공업과 상업에 큰 발전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민은 빈곤에서 크게 탈출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실책이 세종의 한글 창제 등 위대한 업적들을 조금이라도 깎아내리지는 못한다.

이승만을 독재자로 정체화(正體化)하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존립 이유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저항이었다. 3.8 이북을 소련과 그 도당이 점거한 이상 그 세력에서 분단되지 않고는 인민의 자유를 보장할 다른 방도는 없었다.

독재자는 궁극적으로 말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손상하는 존재다. 이승만이 남긴 체제와 김일성이 남긴 체제 가운데 어느 쪽이 개인의 자유를 더 억압하고 손상하고 있는가. 이승만은 독재자이기는커녕 대한민국을 탄생시키고 안보(安保)하는 데 공헌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데 공헌했다.

지금의 조선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을 비교하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승만에게 감사한다. 그의 독재라는 과(過)가 한 되라면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공(功)은 한 말이나 될 것이다. 분단된 남한 없는 통일된 조선인민공화국에 살게 되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분단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에게 질곡이라기보다는 축복이다.

1970년쯤에 고(故) 이한빈 교수의 4.19 혁명에 관한 흥미로운 증언을 들은 적이 있다. 이한빈은 재무부 관리로서 나중에는 부총리 지위에 이르렀고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그에 의하면 이승만이 가장 역점을 두었던 분야는 교육이었다는 것이다. 교육 중에서도 대학 교육을 한국에서 꽃피워 내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고, 그래서 백방으로 대학과 대학생들을 도왔다고 했다.

이한빈에 의하면 이승만은 대학생들을 끔찍이도 사랑하고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이승만을 몰아내는 혁명을 주도한 것은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모형은 남한이 처해 있던 당시의 발전 단계에서는 다음 단계로 발전하는 가장 바람직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의 말을 붙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슬기 새끼 기르기 모형을 연상했다. 다슬기는 알에서 나오면 모두 어미에게 착 붙어서 어미 살을 파먹고 자란다. 어미는 살을 다 파 먹히고는 죽는다. 그때 가서야 새끼 다슬기는 따로 따로 독립하여 살아간다. 어른 다슬기가 되는 것이다.

나는 박정희에 대해서도 이승만과 꼭 같은 공과를 매기고 싶다. 그의 5.16 혁명 공약의 요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의 간접 침략을 분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민생을 시급히 해결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주된 포인트는 민생 해결, 즉 경제 발전이라는 공(功)이다. 그의 이 공로는 영웅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발전은 직접적으로는 박정희의 경제 관련 정책이 아니라 기업가들의 창의력과 노력의 공이었다. 고속도로, 제철소, 발전소 등의 건설과 산림녹화, 수출제일주의 등이 박정희가 이룬 직접적인 공으로 흔히 꼽힌다. 그러나 나는 이들 사업이나 정책의 공과 과는 반반이거나 과가 오히려 더 컸다고 본다.

나는 북의 간접 침략을 분쇄한 것이야말로 박정희가 경제 발전에 끼친 으뜸가는 공(功)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은 경제에는 간접적인 공이었다. 그러나 정부에 의한 어떤 경제정책이나 사회간접자본 건설보다 한국 경제에 더 크게 공헌했다. 기업가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북의 간접 침략으로부터 기초적으로 면역(免疫)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간접 침략이란 무엇을 말했던가. 4.19 혁명 이후의 사회 혼란이 그것이었다.

이 혼란은 계급적 모순을 강조하는 경제혁명(80년에 PD 계열로 분화)과 민족통일혁명(80년대 NL 계열로 분화)을 기치로 내건 좌익분자들이 일으키고 있었다. 박정희의 권위주의 정치는 이 혼란을 분쇄하는 데 불가피하게 들어가는 비용이었다. 비용은 적으면 좋으나 안 생길 수는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1979년 가을 박정희 피살 후 이 간접 침략은 다시 활성화 되었다. 전두환이 등장하여 표면적으로는 잠시 숙지근해졌으나 민주화라는 슬로건 밑에서 북의 간접 침략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승리를 거두어 왔다.

분단, 또는 자유의 전선(戰線)을 지키는 일에서 한국 인민은 실종자가 되어 가고 있다. 자유가 민주주의한테 모살(謀殺)된 것이다. 원래는 민주주의는 자유를 획득, 확장,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였다.

북한의 직접 침략은 한동안 그들의 극한적 경제적 궁핍 등으로 말미암아 소강상태에 있다가 2006년 1차 핵실험을 계기로 다시 고조되고 있다. 작년에는 두 번이나, 즉 4, 5차 핵실험이 있었는데 성공적이었다.

이 총중에 작년에 한국에서는 대통령 박근혜 탄핵 운동이 벌어졌다. 국회가 그를 탄핵 소추하였고 헌법재판소는 뻔뻔하게도 이를 받아 들여 그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하였다. 그 후 검찰은 그를 감옥에 처넣었다. 모두 자유에 대한 간접 침략 행위의 모습들이다. 자유에 대한 간접 침략은 전선이 부재하기 때문에 캄캄하다. 누가 침략자인지, 무기는 무엇인지, 누가 내통자인지 아무 것도 모르게 되어 있다. 좌파가 정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다만 자유주의자의 개별적 촉감에 따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좌파가 정권을 차지하고 있으면 편리한 것도 있다. 도매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정부나 여당이 하는 것은 모두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자유주의자 민중운동을 조직하여, 예컨대 태극기 시위를 연중 상설화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자들은 불가피한 하나의 비용이라고 치고 이른바 민주 세력을 모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의 불출세의 공적은 미국과 사드협정을 성공시킨 것이다. 북의 직접 침략은 사드와, 사드 때문에 불편해진 중국의 대북 간섭의 힘으로 결국 다시 숙지근해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세력은 적폐, 개혁, 통합이라는 3색의 기를 내 걸었다. 그들에게 모든 우파는 적폐다. 분열적 좌파도 적폐다. 적폐는 회색분자와 반동분자다. 적폐는 개혁의 대상이다. 개혁의 내용은 궤멸 또는 청산이다. 통합은 상대의 항복 내지 복속이다. 자유주의자의 도매 저항은 이 3색의 기를 표적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간접 침략은 한미동맹으로도 어쩔 수 없다. 오히려 간접침략이 한미동맹마저 파괴할 수 있다. 이제는 박정희가 아니라 한국의 모든 자유주의자들만이 간접 침략을 분쇄할 수 있다.

글/강위석 시인·경제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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