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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신(神)의 자리가 돼버린 국무총리, 민주당은 누굴 탓하랴


입력 2017.05.28 11:43 수정 2017.06.02 23:29        황정민 기자

'탈탈 털린' 이틀간의 이낙연 국무총리 청문회 현장을 보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인간계에선 넘보기 힘든 영역?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에 답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에 답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탈탈 털린' 이틀간의 청문회 여정

결국 제 발등을 찍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에 여당을 향해 휘둘렀던 ‘도끼’가 그렇게 된 것이다. 지난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바로 그 현장이었다. 민주당으로부터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에 시달렸던 자유한국당이 이제는 거꾸로 상대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청문회에선 후보자 본인은 물론, 부인과 아들의 도덕성까지 시험대에 올랐다. 시쳇말로 ‘탈탈 털린다’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이틀간의 여정이었다.

한국에서 총리 후보자가 감당해야하는 모멸감은 당연한 절차가 된 지 오래

그 결과는 참담했다. 거론된 ‘의혹’만 해도 위장전입에서부터 병역면제, 그림강매, 당비대납, 보은인사, 작품대작까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중 부인의 위장전입에 대해선 후보자가 잘못을 시인했다. ‘투기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항변도 위장전입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주진 못했다. 나머지 의혹들도 속 시원히 해명되지 못한 채 후보자에게 수많은 ‘자료제출’의 과제만 남겼다. 후보자는 청문회 도중 “모멸감이 느껴진다”는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자신을 방어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국무총리 후보자와 그 가족이 감당해야하는 모멸감은 당연한 절차가 된 지 오래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 국무총리는 “이틀째 청문회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껴안고 엉엉 울었다”고 했을 정도다.

결국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자 청와대가 수습에 나섰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대국민 사과가 전파를 탔다. 기대와 달리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입장을 밝히라며 공세를 펼쳤다. 대선후보 시절 약속했던 ‘공직배제 5대 원칙’을 스스로 허무는 것인지 국민 앞에 명확히 얘기하라고 요구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인사에서부터 난항을 겪는 모양새가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인간계에선 함부로 넘보기 힘든 영역

이렇듯 국무총리는 어느새 ‘신의 자리’가 되어버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인간계에선 함부로 넘보기 힘든 영역이다. 신만이 가능한 도덕적 완벽함을 요하는 자리가 생긴 것이다. 항간에선 ‘이러다 공직에 서는 건 평생 산 속에서 도 닦던 사람만 가능하지 않겠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정치인들이 옥석 구분이 힘든 정책 역량보다는 국민의 감성을 쉽게 자극할 수 있는 도덕성을 후보자 검증의 주요 잣대로 삼은 결과다.

새로운 청문회 기준은 적어도 '5년 적용' 뒤 주장해야 형평성 맞아

민주당은 작금의 난감한 상황에 대해 누구 탓도 할 수 없다. 늘 상대를 부패했다고 손가락질 했으니 스스로는 누구보다 깨끗해야만 하는 처지다. 더욱이 전임 대통령이 도덕성 문제로 파면까지 당한 초유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이제 와서 인사청문회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자는 민주당 대변인의 논평은 어쩐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적어도 5년간은 본인들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 뒤에 그런 주장을 해야 형평성에 맞다. 그렇게 해야 국민 앞에도 떳떳할 수 있다. “총리가 되면 막걸리 마시면서 야당의원들과 낮은 자세로 소통해 달라”는 민주당 초선의원의 어설픈 여유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정치부 황정민 기자 ⓒ데일리안 정치부 황정민 기자 ⓒ데일리안



황정민 기자 (jungmini@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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