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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권율 "벼랑 끝에 선 심정…무너지지 않았죠"


입력 2017.05.27 08:00 수정 2017.05.29 09:38        부수정 기자

SBS 월화극 '귓속말'서 변호사 강정일 역

"불안한 캐릭터, 너무 힘들어 예민해져"

SBS 월화극 '귓속말'에서 강정일 역을 맡은 배우 권율은 "매 순간 치열하게 연기했다"고 털어놨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SBS 월화극 '귓속말'에서 강정일 역을 맡은 배우 권율은 "매 순간 치열하게 연기했다"고 털어놨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SBS 월화극 '귓속말'서 변호사 강정일 역
"불안한 캐릭터, 너무 힘들어 예민해져"


"매 순간,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치밀하게, 치열하게 연기해야만 했습니다."

배우 권율(34·본명 권세인)의 입에선 연기에 대한 곧은 심지가 묻은 말이 나왔다. 캐릭터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알 수 있는 말이다. 권율은 최근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종영한 SBS 월화극 '귓속말'에서 금수저 엘리트 변호사 강정일 역을 맡았다.

법률회사 태백 변호사인 강정일은 권력욕과 야망을 숨긴 인물이다. 사랑하는 여자 최수연(박세영)과 태백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지만, 결국 힘의 논리에 의해 최일환(김갑수)에게 배신당하고 태백의 후계자 자리를 잃자 폭주한다. 이후 아버지가 살해당자가 그는 최수연을 버리며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실감 나게 보여준다.

'귓속말'은 '펀치', '황금의 제국', '추적자' 등 권력 3부작을 만든 박경수 작가가 집필한 작품으로 화제가 됐다. 법률회사 태백을 배경으로 법률가들의 우아함 뒤에 가려진 속살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인간적인 사랑을 담았다. 마지막회에선 시청률 20.3%(전국 기준)를 나타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대한민국 가진 자들의 권력과 힘을 보여준 이 드라마는 결국 정의와 희망은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SBS 월화극 '귓속말'을 마친 배우 권율은 "말랑말랑한 캐릭터나 액션 연기에 욕심이 난다"고 전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SBS 월화극 '귓속말'을 마친 배우 권율은 "말랑말랑한 캐릭터나 액션 연기에 욕심이 난다"고 전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26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권율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서 감사하고, 기쁘다"며 "힘든 역할을 끝내게 돼서 홀가분하기도 하다"고 밝혔다.

권율은 캐릭터를 위해 몸무게 6kg을 감량하기도 했다. 그는 "살이 많이 빠져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며 "감정 소모가 큰 역할이라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귓속말' 최종회는 법비들을 향한 응징이 통쾌한 결말을 맺었다. 돈과 권력을 남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법비들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강정일은 사체 손괴 및 살인교사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마지막 장면에선 감옥에 있는 강정일이 아버지 사진을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낸다. 복수를 뜻하는 건지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권선징악'과 반대되는 결말은 아니에요. 강정일은 강정일의 방식대로 뉘우치고, 반성합니다. 출소 후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강정일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거든요. 강정일다운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권력 3부작'을 만든 박경수 작가와의 호흡은 영광이었다. 앞서 권율은 박 작가를 믿고 드라마에 출연했다고 밝혔다. 그는 "작가님의 의도를 대사를 통해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문학적이면서도 힘이 있는 대사들을 허투루 소화할 수 없었다. 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데 내 역량이 부족한 건 아닌지 걱정했다. 대사를 읽으면서 작가님의 내공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귓속말'이 호평만 받은 건 아니었다. 박 작가의 전작에 비해선 약하다는 비판도 받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배우 권율은 SBS 월화극 '귓속말' 속 강정일에 대해 "절대 악은 아니다"며 "선과 악이 공존한 역할"이라고 말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배우 권율은 SBS 월화극 '귓속말' 속 강정일에 대해 "절대 악은 아니다"며 "선과 악이 공존한 역할"이라고 말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권율은 "시리즈마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박 작가님의 작품은 모두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며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반전의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 드라마만의 강점이다"고 강조했다.

시청자들은 '귓속말'의 최대 수혜자로 권율을 꼽았다. 그 어려운 강정일이라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는 이유에서다. 권율은 권력에 취했다가 내동댕이 쳐지는 한 인간을 온몸으로 연기했다. 이명우 감독은 권율에게 강정일을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단다.

"이동준(이상윤), 신영주(이보영), 최수연을 만났을 때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단편적인 악역이 아닌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강정일이 섹시하다는 말도 이런 부분에서 나온 듯합니다. 작가님과 감독님 덕이지요(웃음)."

최수연과의 멜로는 '사랑과 전쟁' 격이었다. 집안끼리 이해관계 탓에 만난 두 사람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권율은 두 사람의 사랑을 '어른 멜로'라고 정의했다. 어렸을 때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연애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마음 하나만으론 만날 수 없다는 얘기다. 서글프고 슬픈 현실이란다.

사실 신영주와 이동준도 처음부터 사랑을 느낀 관계는 아니다. 최수연과 강정일도 그렇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로 시작된 어른들의 멜로가 '귓속말'이 보여주는 사랑이란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최수연과 강정일은 그 관계가 끊어지자 겉잡을 수 없이 빨리 무너졌어요. 이해관계로 엮인 사람을 만나본 적 없어서 100% 공감할 순 없었지만 서로 더 냉정하게 돌아설 수 있다고 짐작했어요."

강정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캐릭터였다. 이런 인물을 두고 권율은 '치열함을 만들어 준 캐릭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정일의 불안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매회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어지요. 촬영 들어가기 전엔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힘들고 두려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캐릭터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대본을 놓지 않고 연구했고, 잠도 안 자면서 절박하게 매달렸어요. 고3 수능 준비하듯이 열심히 준비했답니다. 그랬더니 제 안의 의심을 뒤엎고 자신감을 되찾았어요."

SBS 월화극 '귓속말'을 마친 권율은 "대중에 위안을 주는 배우를 꿈꾼다"고 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SBS 월화극 '귓속말'을 마친 권율은 "대중에 위안을 주는 배우를 꿈꾼다"고 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점을 묻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은 자세"라며 "캐릭터 탓에 예민하기도 했다"고 웃었다.

소름 끼치도록 근성이 강한 강정일과 닮은 점을 묻자 "배우로서 강정일처럼 몰두하고 싶다"며 "근성과 끈기를 바탕으로 목표를 향해 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강정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듯했다. 인터뷰 내내 비유 섞인 표현을 쓴 그는 인상 깊은 말을 던졌다. "목표를 향해 가는 모습을 훌륭하지만 조금 더 남들을 배려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다독이며, 설득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그들을 함께 데려갈 수 있는 리더가 됐으면 해요. '송곳' 같은 리더가 아니라 모든 걸 담는 '그릇' 같은 리더죠. 강정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향후 목표에 대해선 "예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며 "말 한마디가 소중하고, 귀하게 쓰일 수 있는 사람, 신뢰감을 주는 배우고 되고 싶다"고 했다.

2007년 시트콤 SBS '달려라! 고등어'로 데뷔한 권율은 긴 무명의 시간을 견뎠다.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피에타'(2012), '잉투기'(2013) tvN '우와한 녀'(2013), KBS2 '천상여자'(2014)에 등에 출연하다 '명량'(2015), tvN '식샤를 합시다2'(2015)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한 번 더 해피엔딩'(2015), '사냥'(2016), '최악의 하루'(2016), '싸우자 귀신아'(2016), '달빛궁궐'(2016·더빙), '최악의 하루'(2016) 등에 출연했다. 곧 '박열' 개봉도 앞두고 있다.

'식샤' 이후 쉴 틈 없이 달려온 그는 "무명 시간이 길어서 더 열심히 하고 싶다"며 "공부하고 트레이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SBS 월화극 '귓속말'에서 강정일 역을 맡은 배우 권율은 "감정의 폭이 큰 캐릭터라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SBS 월화극 '귓속말'에서 강정일 역을 맡은 배우 권율은 "감정의 폭이 큰 캐릭터라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어느덧 연기 인생 10년째를 맞았다. 배우는 "힘들기도 했지만 감사한 시간"이라며 "예전에는 왜 나한테 작품 섭외가 들어오지 않을까 낙담했고, 그 시간이 빨리 지나 갔으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시간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시간을 견딘 덕분에 앞으로 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졌어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권율'이라는 배우를 알렸다면 이젠 '저 잘할 수 있으니 잘 봐주세요'라는 마음가짐으로 연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심지 곧은 가치관을 들려줬다. "대중과 함께 공감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힘든 일이 있으면 위로해주고 함께 슬퍼하고, 울기도 하고요.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배우가 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제 연기가 '진짜 내 얘기 같다'는 느낌을 주는 배우를 꿈꿔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안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답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선 "이미지와 맞는 안정적인 캐릭터보다는 힘들어서 극복해내야만 하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쉬운 길은 마다하겠다는 배우의 눈이 반짝였다.

무거운 캐릭터를 했으니 말랑말랑한 캐릭터도 하고 싶단다. 몸을 쓰는 액션 영화에도 욕심이 난다고.

쉴 때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축구나 농구 등 스포츠 경기를 즐겨 본다. 술은 좋아하지 않는단다. 사람 만날 기회가 없어 연애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틀에 박힌 대답이라고 했더니 '진짜'라며 항변해 웃음을 자아냈다.

권율은 작품이 끝날 때마다 인터뷰에 나선다. 취재진에겐 반가운 일이다. "작품에선 캐릭터를 좋아하고 쫓아가려고 해요. 그 사람이 되기 위해 그 사람인 척하고요. 작품을 다 마친 후 공허한 순간이 있는데 인터뷰하면서 마음이 풀어집니다. 인터뷰의 순기능 이지요(웃음)."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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