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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리자, 직장살이, 쉼포족...직장인의 신풍속도


입력 2017.05.20 07:28 수정 2017.05.20 07:29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우울한 신조어들 증가 걍팍한 세태 반영

tvn 드라마 '미생'의 한장면. tvn 드라마 '미생'의 한장면.

외환위기 이후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 등의 신조어가 나타났었다. 신조어로 직장인들의 팍팍한 삶이 표현된 것이다. 스마트폰, SNS 등의 활용이 보편화되면서 직장인의 삶을 나타내는 신조어는 더 많아지고 있다.

2010년 이후 나타난 신조어로는 ‘월급 로그아웃(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사라지는 현상)’, ‘회의(會議)주의자(시도 때도 없이 회의하자는 상사들)’, ‘월급고개(전달 월급이 떨어지고 다음 월급이 나오기 전 보릿고개처럼 힘든 시기를 보냄)’, ‘직장살이(회사에서 생활하기가 옛날 며느리 시집살이처럼 고단함.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으로 화를 꾹 참고 회사에 다녀야 함)’ 등이 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2015년 직장인 신조어 1위로 ‘메신저 감옥’을 꼽기도 했다.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직장 상사가 계속 해서 업무 메시지를 보내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같은 신세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메신저 지옥’도 있다.

‘출근충’도 있다. ‘출근’과 ‘벌레 충(蟲)’ 자가 합쳐진 말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오로지 일만 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직장인의 모습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대비되는 말은 ‘갓수’다. 부모 잘 만나서 취미도 즐기고 자기실현도 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혹은 그냥 백수로 지내면서 돈 버는 걸 포기한 대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어차피 ‘출근충’도 여유롭게 살 만큼 버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약간의 돈을 포기한 대신 편하게 노는 게 낫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결혼과 명절만 피하면 ‘갓수’가 ‘출근충’에 완승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난 연말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의 직장인 신조어를 조사했다. 응답자의 28.9%가 꼽은 ‘월급 로그아웃’이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직장살이가 2위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신조어였는데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2016년의 신조어로 뽑힌 것이다. 강산이 반 정도나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로그아웃된 월급으로 월급고개를 버티면서 상사 눈치에 직상살이’를 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처지가 하나도 안 변했다.

2012년 대선 때 국민이 박근혜 후보를 뽑은 것엔 이런 현실을 바꿔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신조어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넥타이 부대가 광화문에 집결했을 것이다.

3위는 ‘반퇴 세대’다. 퇴직을 해도 완전한 은퇴가 아니라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에 반퇴다. 이어 2015년에 1위를 했던 ‘메신저 감옥’이 여전히 살아남아 4위에 올랐다. 야근할 분위기라는 ‘야근각’이 5위다. 그밖에 휴식을 포기할 정도로 바쁘고 고달프다는 뜻의 ‘쉼포족’, 일하기 싫다는 ‘실어증’, 시간에 쫓기는 삶이라는 ‘타임푸어’, 혼자 밥 먹는 ‘혼밥족’, 회사가 사육하는 동물이란 의미의 ‘사축’ 등이 2016년에 떠오른 직장인 신조어였다.

단어들을 살펴보면 긍정적인 의미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에 나타난 ‘사오정’, ‘오륙도’ 등이 정리해고의 공포를 표현한 것이라면, 2010년대에 나타난 신조어는 직장인들의 괴로운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신조어들로 한국이 왜 행복지수가 떨어지고 우울증과 자살이 증가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요즘 뜨는 또다른 직장인 신조어로 ‘고나리자’가 있다. 관리자의 오타를 따서 만든 신조어인데, 이래라 저래라 관리하는 상사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나리자의 반대 이미지를 보고 있다. 뜨거운 대통령 지지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전의 두 전임 대통령은 위압적인 느낌이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히 차가운 명령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직장인들이 위로 받는 것일 게다.

‘고나리자’가 ‘직장살이’를 시키면 꼼짝없이 ‘야근각’, ‘메신저 감옥’에 빠져 사는 ‘쉼포인생’이 된다. ‘타임 푸어’인데 ‘월급 로그아웃’ 되어 주머니 사정도 ‘푸어’다. 보람 없이 일만 열심히 하는 ‘출근충’, ‘사축’의 신세. 신조어에 투영된 직장인들의 현실인식이다. 앞으로 5년 후엔 다른 신조어가 유행하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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