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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바퀴벌레'와 진보의 '백의종군'


입력 2017.05.21 00:32 수정 2017.06.22 15:36        데스크 (desk@dailian.co.kr)

보수, 머리끄덩이 싸움...진보, 여대야소 위한 일보후퇴

한국당,'고름 짜내는 아픔' 없으면 권토중래 기대 난망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보수, 머리끄덩이 싸울 때 진보, '여대야소' 위한 1보 후퇴
한국당,'고름 짜내는 아픔' 없으면 권토중래 기대 난망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열흘이 지났다. 그 열흘 사이에 너무도 많은 일들이 벌어져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건너 하나씩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다.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이런 행보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19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7%가 문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고 있다. 그에 반해 이번 5․9 대선에서 참패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날이 갈수록 점점 깊은 내홍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홍준표 ‘바퀴벌레’ 대 홍문종 ‘낮술 드셨나’

이번 주 자유한국당에서는 적지 않은 어록들이 양산됐다. 대선 직후 출국하여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홍준표 전 후보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사람들 참 가증스럽다”고 적었다. 특유의 독설로 친(親)박을 공격했다.

이에 대해 오는 7월 전당대회에 당대표에 출마가 유력한 친박계 홍문종 의원이 역공에 나섰다. 홍 의원은 홍 전 후보의 ‘바퀴벌레’ 발언에 대해 17일 “그동안 선거운동하며 목이 터져라 그(홍준표)가 당선되는 게 우리(보수)가 살고 당이 사는 일이라고 얘길 했는데, 바퀴벌레고 탄핵이고 제정신인가 낮술 했느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친박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홍준표와 홍문종의 설전은 곧 자유한국당 내부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과 비슷한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원내대표를 지낸 정진석 의원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중진의원모임에서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된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빠개버려야 한다”며 당내 친박계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친박계 의원들은 비대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정우택 원내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새살이 돋기 위해서는 고름을 짜내는 아픔이 있어야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모습은 이번 대선에서 24%의 표를 주었던 보수층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기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토록 허망하게 정권을 잃어놓고도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적당히 봉합하고 간다면 더더욱 미래가 없을 수도 있다. 사실 지난해 초 4․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은 180석을 너끈히 넘길 것이란 전망에 취해서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야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었고, 두 야당을 다 합쳐도 100석이 채 되지 않을 것이란 위기감마저 휩쓸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진(眞)박 마케팅’이니 유승민 찍어내기니 김무성의 ‘옥새파동’이니 하면서 새누리당은 국민들에게 철퇴를 맞았다. 총선 결과 여소야대가 되었고, 국회의장 자리도 내주었다. 그리고도 오만과 불통, 폐쇄적 패권주의의 늪에 빠져 국민들과 벽을 쌓더니 결국 정권을 잃고 말았다. 지금 보수정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뉘었고, 자유한국당은 또다시 계파별로 짝을 지어 서로가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고 있다. 9년 만에 정권을 잃고 나니 그동안 켜켜이 쌓여있던 구원(舊怨)들이 마구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누구에게 책임이 더 있느냐를 두고 머리끄덩이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크든 작든 보수분열과 대선패배에 모두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처절한 자아성찰과 자기비판을 해야 한다. 스스로 자아비판이 어렵다면 다른 쪽에서 비판하는 것이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시쳇말로 ‘고름이 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썩어문드러진 상처에서 새 살이 돋기 위해서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 고름을 짜내야 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포수인치(包羞忍恥)해야 권토중래(捲土重來)도 가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사를 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문제는 패색이 완연할 때 질서 있는 퇴각을 하는 군대에겐 미래가 있고, 추풍낙엽처럼 무너진 군대는 결국 오합지졸로 다시는 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수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욕을 참는 것(包羞忍恥)이 다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기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1950년 12월 그 유명한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 1만5천 명은 중공군 12만 명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에 빠졌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은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진격한다”며 흔들리는 군심(軍心)을 추스르고 질서 있게 후퇴했다. 비록 4천5백 명의 미 해병대원이 전사했지만, 그나마 성공적으로 흥남철수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1951년 춘계대공세를 통해 다시 중공군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친(親)문 핵심들의 백의종군…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 가장 먼저 자리를 비운 인물이 이른바 삼철 중 맏형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곧이어 양정철 전 비서관이 백의종군을 선언했고, 최재성, 정청래 전 의원 등이 앞 다투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그들의 백의종군 선언을 보면서 “참, 이 사람들 선수다. 전략적 사고가 뛰어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권 초기에 할 일들은 이미 설계도가 준비되어 있으니 선발투수의 역할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내년 지방선거와 그 이후를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19일 홍준표 전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노무현 정권보다 더 세련된 좌파들은 전열이 정비되면 우파 궤멸작전에 돌입할 것”이란 지적도 이 점을 꿰뚫어 본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권력까지 완전히 장악한 다음, 계투투수로 들어와 2020년의 21대 총선까지 2년을 철저하게 준비해 가겠다는 뜻인 것 같다. 그래서 여소야대를 선거를 통해 여대야소로 만들고, 친문의 좌장 이해찬 의원이 말하는 20년 장기집권의 기틀을 단단히 준비하겠다는 그랜드디자인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지금 상태라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지금은 보수정당이 맡고 있는 광역단체장 중 경기, 인천, 부산, 울산, 경남(현재 공석)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등고자비(登高自卑) - 내년 지방선거부터 차분히 준비해야

정진석 의원이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똥볼' 찰 것만 기다리고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보수정당은 역발상을 해야 한다. 대선은 5년 후에 있다. 총선도 3년 후에나 있다. 그렇다면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영남권에서 광역 및 기초단체장 그리고 지방의원들을 대거 당선시키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그를 위해서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때로는 머리가 터지게 투쟁하고 결국은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다운 정치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목표가 분명하면 그렇게 싸울 일도 없어지는 것이 사실 정치의 묘미다.

글 / 황태순 정치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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