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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통합위원회 일곱빛깔무지개-20] 자유와 책임이 낯선 나라, 배우고 가르쳐야


입력 2017.05.18 00:57 수정 2017.05.18 06:20        박진여 기자

국민통합의 시대, 필수 덕목은 '자유'와 '책임'

'노블리스 오블리주'…"많이 누리는 자들일수록 더 많은 책임 의식해야"

국민통합의 시대, 필수 덕목은 '자유'와 '책임'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존중, 배려, 소통 등의 기본가치가 바로선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런 가치들을 중시하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회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통합가치포럼'을 운영해왔다.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엮어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일곱빛깔 무지개'를 펴냈고, 데일리안과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러한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매주3회, 총 27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주 >

'자유'와 '책임'이 낯선 나라, 조선

배진영 통합가치포럼위원 배진영 통합가치포럼위원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나친 자유는 방종을 부른다"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것처럼 통용되는 주장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자유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자유를 향유하는 개인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의 후손이다. 제임스 팔레 교수나, 안병직·이영훈 교수 등에 의하면 조선 말기 인구의 30~50%가 노비였다고 한다. 상민도 신분제 체제 아래서 노비나 천민보다 크게 나을 것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의무는 있어도 권리는 없었다. 양반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전체 인구의 10%를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라는 말이 알려진 것은 100년 전이고, 그 자유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70년 전, 그리고 그 자유를 향유한 것은 30년가량에 불과하다. 사실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누려온 것인지도 의문이다. 영국인이나 미국인에게는 '자유'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우리에게 '자유'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낯선 것이다.

'책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나 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책임'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반이 하라는 대로, 관아에서 시키는 대로, 그것이 아무리 부당한 것일지라도 숙명처럼 여기고 묵묵히 복종해 온 것이 우리네 조상이었다. 때로는 홍경래의 난이니 동학란이니 하는 크고 작은 민란들이 발생했지만, 그것은 압제에 대한 1차원적 반응이었을 뿐이지, 자유나 평등을 향한 의미 있는 투쟁은 아니었다. 당시의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에게는 '책임 의식'이 있었을까? 없었다. 조선의 양반들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조차 회피했던 기생(寄生) 계층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 국가 개혁 차원에서 양반에게 세금을 부과하려 하면 그들은 "선비를 우대하는 뜻에 어긋난다", "사기(士氣)를 꺾는다"라며 결사 반대했다.

'노블리스'가 없는 나라, 대한민국

이런 가장 기본적인 책임조차 기피하는 자들에게 언필칭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조선이 무너질 때, 당시의 왕이나 조정 대신들 중에서 망국의 책임을 진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오히려 지방 군대의 일등병, 말단 주사, 그리고 매천 황현 같은 초야의 선비가 망국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선 선비로의 자존심 혹은 책임감이 매천으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것이다.

'책임'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떠올린다. 책임이라는 것이 꼭 가진 자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많이 누리는 자들일수록 더 많은 책임을 의식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솔선수범 같은 말들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병역 의무가 있는 4급 이상 고위 공직자 2만5천388명 가운데 병역 면제자는 2520명(9.9%)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역 의무가 있는 고위 공직자 직계 비속 1만7689명 가운데 병역 면제자는 785명으로, 4.4%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 징병 검사에서 병역 면제 비율은 0.3%, 제2국민역까지 합해도 2.1%밖에 안 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이런 통계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땅에 떨어졌다"라는 탄식을 자아낸다. 하지만 원로 사회학자인 송복 연세대 명예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노블리스'라고 할 만한 계층 자체가 없다고 한다. 정계, 관계, 재계 할 것은 없이 대개는 당대에 입신한 이들이고 길어야 2대 정도인 것이 우리나라의 '상층'이라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 정도면 'New High' 혹은 ‘New Rich'라고 일컬어지는 신흥 상층일 뿐, 사회적 인정을 받는 '상층'에 포함되기는 아직 이른 존재라고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기대할 만한 문화적·윤리적 축적이 없다는 얘기다. 이들이 보여주는 온갖 천민적 행태들은 국민 통합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국민통합의 시대, 필수 덕목은 '자유'와 '책임'

자유와 책임의 전통이 없는 나라에서 자유와 책임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막막한 일이다. 하지만 자유와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고 '국민 통합'을 이야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자유와 책임을 이야기하고 가르쳐야 한다. 올바른 자유의 개념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나는 특히 책임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도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판·검사, 변호인, 고위 공직자, 언론인들을 둘러싼 참담한 비리들이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는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대신 끼리끼리 덮어주고 감싸주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김영란법'은 논란의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법이 만들어진 것은 그 법이 적용 대상자들로 꼽고 있는 이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기의 위치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받는 사람은 쥐꼬리만큼이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학교,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그에 걸맞는 책임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의 무책임성, 특히 사회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의식의 결여가 국민 통합을 얼마나 저해하는 지에 대한 계량적 측정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에는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분식 회계를 방조한 회계 법인이나, 소비자에게 고의적으로 피해를 끼친 기업은 ‘징벌적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 기본적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사람은 책임 있는 공직에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얼마 전 일본 벳푸에 갔을 때, 불과 네 다섯 걸음이면 건널 수 있는 좁은 길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교통량도 거의 없는 길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신호등을 설치해 놓은 것은 "이렇게 신호등을 설치해 놓았는데도 무단으로 길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하면, 그건 무단횡단자의 책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책임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배진영 통합가치포럼위원

△주요 약력

·현직 : 월간조선(차장)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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