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시간 : 2017년 05월 26일 10:33:08
문재인 정부의 좌파 정책 밀어붙이기, 한국당 야성만 키운다
우파 정권 흔적 지우기, 그 자체만으로 좌파스럽다
한국당, 당한 대로 발목잡기 나서면 여권은 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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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5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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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취임식을 마친 후 국회대로를 지나며 국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문재인 정부의 '좌파스러운' 두 갈래 행보

지난 10일 닻을 올린 문재인 정부는 시작부터 ‘좌파’스러웠다. 승자의 권위는 내려놓고 국민을 대하는 눈높이를 낮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취임식에 앞서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당 대표들을 만나 신고식을 했고, 취임식도 국회 앞마당 대신에 본관 실내(로텐더홀)에서 간소하게 치렀다. 대통령 집무를 청와대 본관 대신에 비서동(여민관)에서 참모들과 함께 보기로 했고 점심은 청와대 직원식당에서 직접 식판을 들고 셀프 서비스를 했다. 식사 후에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참모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해 이목을 끌었다.

높은 권좌에 앉아 군림하지 않고 바닥으로 내려와 탈권위와 소통의 정치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때 간판이 바뀐 ‘위민관(爲民館)’을 원래 이름인 ‘여민관(與民館)’으로 환원한 게 우파정권에서 좌파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또 다른 각도에서 '좌파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조국 정무수석에게 특별조사위 조사를 마치고 선체조사 단계까지 진행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사실상 재조사를 지시했다.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전임 대통령까지 구속 기소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서도 재수사를 언급했다. 이에 화답한 조 수석은 12일 국정농단 사건의 전조로 ‘정윤회 문건 사건’을 지목하고 “당시 민정수석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겠다”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정조준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검정교과서와 ‘혼용’ 방침을 정해 사실상 ‘국정’이 아닌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구시대적 획일적 역사교육의 상징”이라고 ‘국정 프레임’을 억지로 덮어씌워 ‘폐지’를 지시했다. 또한 올 5·18 기념식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이 아닌 모든 참가자가 부르는 ‘제창’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들 조치들은 굳이 좌파 성향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전임 우파 정권의 흔적 지우기라는 측면에서 좌파스럽다고 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양 갈래의 좌파스러운 행태에 보수진영은 잠시 헷갈렸을지도 모른다. 계속 쳐다만 봐야할지 아니면 언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할지…. 전자의 좌파스러움은 그동안 국민들을 짜증나게 했던 보수 정권의 권위주의 행태 및 불통 정치문화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가득이나 선거 패배로 주눅이 들어 있는 보수진영으로선 열패감에 파묻히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후자의 좌파스러움은 지난 10년간 휴면기에 있던 보수정당의 야성(野性)을 서서히 일깨우는 각성제가 되고 있다. 첫 일성은 자유한국당에서 나왔다. 지난 11일 정준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세월호와 국정농단 재수사 지시를 내린 것을 겨냥 "문재인발(發) 적폐청산의 서막을 올리는가"라며 제1야당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격의 없이 소통하는 열린 리더십과 이념적 보수적폐 척결에 주력하는 새 정부의 양면성

이런 양 갈래 움직임은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지향하게 될 국정운영 방향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국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소통할 것이며 열린 리더십으로 사회 약자의 주장을 들어주고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데 힘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이념적인 문제에선 철저히 보수를 가려내서 ‘적폐’로 규정하고 척결 내지는 청산 대상으로 삼으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홍준표 한국당 대선 후보가 ‘3대 적폐세력’이라면서 청산을 주장했던 강성귀족노조, 전교조, 종북 시민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장 유연성 저지, 교원 성과급제 폐지, 대북 민간교류 활성화 등에서 예전보다 훨씬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 편에는 공수처 설치 및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통한 검찰 개혁, 상법 개정을 통한 대기업지배구조 개선, 국정원의 국내정보수입 업무 폐지, 공정거래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장치 마련과 권력 분산을 위한 공약사항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우파를 단죄하는 심정으로 철저한 이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 반대하면 단 하나의 안건도 통과 못하는 게 ‘식물국회’ 현실

그런데 문제는 여소야대 국회에 있다. 검찰 수사를 재개하고 국정교과서를 폐지하는 따위는 대통령 지시 한마디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대다수 공약 과제는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률 개정이 선행돼야 추진이 가능하다. 여당인 민주당은 120석에 불과하고 연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국민의당(40석)과 바른정당(20석)을 모두 합쳐야 겨우 180석에 이른다. 여기에 여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을 합치면 국회선진화법에서 ‘안건 신속처리(패스트 트랙)제’가 요구하는 상임위 5분의 3 의석은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스트 트랙을 이용하기 위해선 안건처리를 11개월 정도 지체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활용하려면 야당 원내대표들과 합의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107석을 갖고 있는 한국당이 반대하면 단 하나의 안건도 통과할 수 없는 게 이른바 ‘식물국회’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점을 노리고 대선 주자들 간에 ‘연대(후보단일화)론’, ‘연정(연합정부)론’이 끊이지 않았지만 모두 불발됐다. 그리고 지금에는 식물국회의 높은 장벽이 민주당과 청와대가 직면한 현실이 됐다. 당장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 동의안과 10조 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이 첫 실험대에 오른다.

한국당은 추경 예산안에 일찌감치 반대 입장을 선언했다.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12일 “세금으론 일자리를 계속 만들 수 없다”면서 “추경 목적이 대통령 공식 입장인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당론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정책위의장이 반기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추경안 전도에 난관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정 대표권한대행은 바른정당 탈당파 13명의 전원 복당과 친박 의원 3명의 당원권 정지 징계도 해제를 공식 발표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민주당, 보수정권에서 제 성향 정책 법안들 통과 안시키고 발목잡았던 경험

되돌아 보면, 민주당은 과거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회선진화법을 이용해 각종 정책 입법안의 발목을 잡았던 경험이 있다. 일부 안건은 막판에 반대급부를 챙기고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줬지만, 일부는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제활성화를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을 꼽을 수 있다.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가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지만 그간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반대로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위한 노동 4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파견법)도 마찬가지다. 이 바람에 보수 정권은 제 성향에 맞는 보수 정책을 펼쳐 볼 기회를 원천 봉쇄당했다. 보수 정책들은 실효성을 검증해볼 길이 없었고, 보수 정권은 국민들로부터 정책으로 평가받을 계기를 갖지 못했다.

한국당으로선 지난 정권에서 민주당에 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만도 하다. 겉으로 내색하기는 어렵지만 꼬투리가 잡히면 제대로 분풀이하려고 나설 것이다. 이낙연 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해 정준길 한국당 대변인은 13일 "원칙과 절차에 따라 후보자의 철학과 능력, 자질, 도덕성 등을 두루 살펴볼 것"이라고 논평을 냈다. 아직은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이지만 조금이라도 발목 잡을 단서가 생기면 호락호락 넘어갈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국당도 발목잡기 나서면 좌파 정책 일방 추진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는 좌파 성향의 정책을 거침없이 밀어붙여서 좋을 게 없다. 약오른 한국당의 야성만 키울 뿐이다.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주문이 그래서 나온다. 취임식 전에 야당 대표들을 만났던 초심을 잃지 말고, 야당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에 힘써야 한다. 괜한 색깔 드러내기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소탐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흘려들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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