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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통합위원회 일곱빛깔무지개-16] 탈북민에게 한국은 '감사'…"'헬조선' 타당치 않아"


입력 2017.05.09 06:00 수정 2017.05.09 06:53        박진여 기자

"자유와 부강한 대한민국,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

"자유와 부강한 대한민국,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존중, 배려, 소통 등의 기본가치가 바로선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런 가치들을 중시하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회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통합가치포럼'을 운영해왔다.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엮어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일곱빛깔 무지개'를 펴냈고, 데일리안과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러한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매주3회, 총 27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주 >

김수진 탈북여성 시인 김수진 탈북여성 시인
한국에 와서 한동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이 언어에 매혹돼 있었다. 감사를 주고받으며 전체국민이 웃고 마음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누리는 평범한 얘기들 속에 정감이 교체하지 않는 일이란 거의 없다. 특히 우리국민과 연예인, 체육인 같은 유명인들 사이의 정감이 교체되는 자리들에서 좋은 노래들을 불러줘서 감사하고, 경기에 나가서 이겨줘서 감사하고, 열렬히 응원해줘서 감사하다는 만감이 환호로 답례가 되고 사랑으로 마음이 교차된다. 더 평범하게는 흔히 거리에서 길을 물어봐도, 전철 안에서 노인이나 환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을 봐도 거기에는 뜨거운 감사가 오고 간다. 나는 이것이 나라를 잘 둔 국민이 누리는 복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무조건 '수령님 덕', 한국에서는 모든 게 '대통령 탓'

내가 왜 이런 평범한 얘기들에 마음이 사무치는지는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를 것이다. 나는 북한에서 태어나 47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 북한에서 '감사'라는 단어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만 사용되는 충성언어다. 그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해서가 아니라 김 씨 독재자들에게만 쓰는 그 존엄스러운 언어를 인민들 사이에서 함부로 쓰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정도로 경계하고 거북해하고 있다. 북한 인민들은 아기들이 태어나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 무조건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 앞에 세워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손을 들어올리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게 한다. 나도 그렇게 자랐고 내 자식에게도 그렇게 교육했다. 그러니 김 씨에 대한 '감사'가 아무 의식도 없이 독재에 의해 스스로 뼈에 사무치고 살이 되어버렸다.

북한에서는 상장을 받거나 공적을 올렸을 때 김 씨 초상화 앞에 머리 숙여 "어버이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아버지 김정일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들께서 우리를 이렇게 키워주었습니다" 하고 감사를 표시한다. 정작 키워준 우리의 부모님들은 먼 뒷전에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못 듣고 김씨 독재자들이 마치 우리를 키워준 진정한 부모가 된 듯이 그들이 공적을 다 가진다. "아버지, 키워줘서 감사합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자식들이 부모님께 종종 올리는 이 따뜻하고 숭엄한 감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에서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님께 단 한 번도 이 훌륭한 말을 드리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도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북한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께 잘 키워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못 드리고 가게 한 것이 기가 막히게 안타깝다.

이렇게 북한에서의 '감사'는 한 개인인 독재자를 위해 정치적 목적에 도용되고 있다. 그것과 달리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이 잘해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 안 되는 일은 다 대통령의 몫으로 떠넘기고 대통령을 탓하고 무조건 몰아세운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해가 안가서 선배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설명도 매우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때는 대통령도 국민을 위해 애쓰지 않느냐, 대통령이 뭘 잘못하고 있느냐 하며 무조건 대통령의 편을 들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이 국민의 생각과 어긋난다는 것을 조금 씩 깨달아가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노력한대로 이룰 수 있는 '천국' 한국, 선대에 '감사함' 가져야

갈 곳 없는 탈북자를 국민으로 받아주고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국민과 똑같은 모습으로 대해 주는 동족의 감사함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 한국에서 감사라는 단어가 많이 활용되지만 역시 문제가 많다고 본다. 애국 앞에 감사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제2연평해전의 주역인 고 한상국 열사의 흉상이 반대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당초 흉상를 세운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비가 어렵지 않게 마련되었는데 몇몇 교사가 그걸 통일에 빙자하면서 반대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 통일이 되면 어떻단 말인가. 나는 통일이 되어도 그들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열사들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애석하게 돌아간 열사에 대한 가슴 아픔과 감사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적게나마 애국이 매도당하는 것은 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살 1위 대한민국을 놓고 의문과 걱정을 품을 때가 많다. 한국의 자살은 믿어지지 않는다. 한국처럼 복지가 잘 되어있고 먹을 것, 입을 것이 흔한 세상에서 자살자 수는 상상이 안가는 수치다. 나는 한국을 북한에서 우리가 꿈꾸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훨씬 능가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나의 눈엔 틀림없이 대한민국이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마련되어있는 천국이다. 천국에서는 뭐나 부족한 것이 없다. 단지 자기 운명의 주인인 자기가 열심히 일해 살아가면 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도대체 '헬조선'이라는 말의 의미가 뭘까 하고 인터넷을 들여다보았다. 2010년 1월에 등장한 인터넷 신조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로 쓰여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인들이 제 스스로 이런 용어를 만들어내 제나라에 침 뱉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누워서 침 뱉으면 제 얼굴에 떨어진다는 말을 모르는가. 한국 사람들의 정서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한국은 선대를 잘 만났다. 선대들이 그토록 가난했던 나라를 천국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들이 천국을 헬조선으로 부른다는 것은 너무 배부른 흥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대들에게 감사해야 하고 그들을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역사에서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 보나 지당한 일이다. 이 당연한 '감사' 앞에서 망설인다는 것은 도덕 앞에 상실한 국민일 수밖에 없다. 훌륭한 부모 밑에 훌륭한 자식이 있듯이 훌륭한 조국이 훌륭한 국민을 키워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기는 쉬워도 어려운 숙제다. 더욱이 분열된 나라에서 이 숙제는 엄숙한 과제이기도 하다. 지옥은 북한에 있고 북한인민들이 한국을 우러르고 동경하는 조건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은 너무도 타당치 않다. 이 절실한 교육을 나라의 의정으로 정하고 정치가들이 먼저 바로 잡아줌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사 불감증'교육이 어릴 때부터 시작돼 어른이 되어서도 뼈와 살이 되도록 교육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글/김수진 탈북여성 시인

△주요 약력

·현직 : 시인(탈북시인)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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