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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유혹하는 프레임 전쟁…후보 진면목 통찰해야


입력 2017.04.26 00:00 수정 2017.04.27 09:05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프레임, 후보 약점을 침소봉대해 전체 위상 뒤덮는 폐단

대중 속에 굳은살 각인…TV토론·정책역량 무용지물 전락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왼쪽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토론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왼쪽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토론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주요 대선후보 TV토론이 지난 23일 중앙선관위 주관 토론회까지 세 차례 진행되는 동안 하위권 후보들의 토론 역량이 이목을 끌고 있다. 참가자 5명 중 지지율 4·5위인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남다른 실력을 발휘하며 토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들은 정책 콘텐츠도 풍부했고 의견 전달력도 좋았으며 상황대처 능력도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호평이 뒤따랐다.

유승민·심상정 후보, TV토론 호평에도 지지율 정체 못벗어나

그러나 두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여전히 5%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25일 중앙일보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23~24일 전국 유권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 응답률 32.4%, 신뢰수준 95%에서 표본오차 ±2.2%)를 보더라도 심 후보와 유 후보는 각각 5.0%, 4.4% 지지율에 그쳤다. 전주 대비 각각 1.3%p, 0.5%p가 올랐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TV 토론에서 풍부한 정책 식견에다 호소력 있는 언변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지만 지지율 정체상태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39.8%(1.3%p↑),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29.4%(7.9%p↓),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11.7%(4.3%p↑) 등이 나름대로 토론회 결과를 반영해 지지율이 움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프레임’의 위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있다. ‘선거는 프레임 전쟁’이란 말이 있듯이 이번 대선에서도 상대후보를 과녁 삼아 다양한 프레임이 양산됐다. 선거전 초반에는 문 후보를 겨냥해 중도 진영에서 제기한 ‘패권세력’이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반문연대’도 그것에서 파생됐다. 홍 후보가 안 후보에게 주장한 ‘얼치기 좌파’, 유 후보가 안 후보에게 강조한 ‘보수 코스프레’,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제기한 ‘적폐연대’, 유 후보가 홍 후보에게 주장해온 ‘자격미달’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프레임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졌고 또 일부는 여전히 힘을 떨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2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 젊음의 거리에서 집중유세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2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 젊음의 거리에서 집중유세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패권세력', '보수 코스프레', '자격미달', '배신자'…수많은 프레임 명멸

그중에서도 유 후보의 지지율 침체를 설명할 수 있는 프레임은 ‘배신자’. 유 후보가 안간힘을 써도 좀체 빠져 나오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물밑에서 꿈틀거렸던 정서가 홍 후보의 “살인범은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 않는 게 TK 정서” 발언을 계기로 돌처럼 굳어버렸다. ‘홍 후보 찍으면 문 후보 당선된다’며 보수표심의 사표 방지심리를 자극했던 ‘홍찍문’도 아직 유효해 보인다. 그에 비해 문 후보에게 던져졌던 ‘안보불안’ ‘종북좌파’ 프레임은 고정지지층 앞에서 약발이 별로 안 듣는 양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4일 오후 전남 광주 북구 전남대 앞에서 가진 집중유세에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데일리안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4일 오후 전남 광주 북구 전남대 앞에서 가진 집중유세에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데일리안

프레임은 약점을 침소봉대해 전체 위상을 덮어버리는 폐단

프레임이란 용어를 선거에 처음 적용한 사람은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했다. 현실 정치에서 용례를 보면 그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액자'라는 사전적 의미 대로 프레임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특정 부분만 부각해서 액자처럼 덮어씌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상대를 공격할 때 사용되는 프레임은 상대의 약점을 침소봉대해서 전체 위상을 덮어 버리는 속성을 갖는다.

프레임의 소재가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이라면 ‘흑색선전’, ‘마타도어’로 치부돼 파급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는 약점을 끄집어내 정곡을 찌르면 국민 여론 속에 요원의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몇 차례 반복해서 언론에 오르내리면 대중 의식 속에 ‘굳은살’처럼 각인이 될 수 있다. 대체로 가치, 인간관계, 진정성, 신뢰, 정체성 등과 관련된 언어로 돼있다. 지금 대선판을 떠돌아다니는 ‘친북좌파’, ‘꼴통보수’, ‘배신자’, ‘거짓말쟁이’, ‘적폐세력’ 등이 그 사례들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씨티비지니스센터에서 열린 '청년 창업자 간담회'에 참석해 청년창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씨티비지니스센터에서 열린 '청년 창업자 간담회'에 참석해 청년창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나무가 숲을 규정,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

프레임은 특성상 나무가 숲을 규정하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 된다. 몇 가지 폐단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정책공약을 내세워도 시선을 끌지 못한다는 점이다. 태양 빛에 눈이 부셔 은은한 달빛의 존재감을 놓치는 것과 유사하다. 아무리 정책 콘텐츠가 다양하게 구비돼 있고 공약이행 방안이 치밀하게 준비돼 있다 하더라도 유권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한다. 오히려 홍 후보가 정책 사항을 세세히 따지는 유 후보를 향해 “기재부 국장 같다”고 깎아내리는 핀잔이 더 그럴싸하게 들린다.

정책 공약이 국민 관심사에서 멀어진 데는 정치인 본인들에게 책임이 있다. 역대정권에서 내걸었던 선거 공약들이 이행 과정에서 국민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연평균 7% 성장과 10년 뒤 1인당 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장밋빛 공약(空約)’으로 귀결됐다. 박근혜 정부의 제1호 공약인 ‘경제민주화’는 경제 여건상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탈바꿈해 추진됐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의 부인 오선혜 씨가 25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의 부인 오선혜 씨가 25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역대정권 공약 불이행 사례가 정책공약에 대한 국민 불신 부채질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1호 공약인 ‘오바마케어 폐기’를 위해 ‘트럼프케어’를 추진하려다 의회 벽을 넘지 못해 무산 위기에 있다. 외교정책도 선거기간 내내 ‘고립주의’를 외쳤으나 집권 뒤에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하는 등 ‘개입주의’로 180도 바뀌었다. 밖에 있을 때는 쉬워 보여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보면 구조적 한계 때문에 호락호락 않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후보들이 거창한 공약을 앞세우며 지지를 호소해도 많은 국민들은 에누리(discount)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해(利害)가 직접 맞물려 있는 이익집단들은 민감하게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특히 추가 예산이 소요되는 정책공약은 증세든 세출 구조조정을 통하든 기득권층의 양보와 동의, 여야 정치권 합의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가 보여줬기 때문에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유·심 후보의 풍부한 정책능력과 조리 있는 언변이 표심의 변죽만 울리고 지나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남편 이승배 씨가 25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심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남편 이승배 씨가 25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심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프레임 뒤에 가려진 후보들 진면목 통찰하는 안목 필요

선거전이 중반전에 들어서면서 네거티브 성격의 프레임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선거지형 자체를 뒤흔들 ‘후보 단일화’, ‘타당 후보 지지선언’ 등 대형변수가 현실화하지 않는 이상, 각 캠프는 프레임에 사활을 걸려고 할 것이다. 판세 굳히기와 뒤집기 세력이 맞붙어 포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선거전에서 ‘공자왈 맹자왈’ 정책을 논하면서 표심을 두드릴 시간이 없다. 기존 프레임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 표심을 유혹할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국민들로선 시선을 빼앗는 프레임 뒤에 가려진 후보들의 진면목을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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