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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이 한심하다면 역색깔론은 위험하다


입력 2017.04.24 05:35 수정 2017.10.16 09:58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유승민 질문에 신경질적 반응 보인 문재인

곤란한 질문을 색깔론으로 역공하는 것도 시대역행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언론에 공개한 2007년 11월 인권결의안 투표와 관련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기권하기로 결정한 정황을 담은 수첩 모습. 수첩 위에는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물어보라고 해서"라고 적혀 있다.ⓒ연합뉴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언론에 공개한 2007년 11월 인권결의안 투표와 관련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기권하기로 결정한 정황을 담은 수첩 모습. 수첩 위에는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물어보라고 해서"라고 적혀 있다.ⓒ연합뉴스

‘공자님 말씀’ 좀 빌려야 하겠다. 바르고 옳은 말은 역사와 시대를 초월해 늘 새로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계강자(季康子)가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말했다. “정치란 바름이다. 그대가 솔선 몸을 바르게 가지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리오”(논어 위정편). 지도자가 정직하지 못하면 그가 행하는 정치가 바르기는 어렵다. 그럴 때는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을 리 없다.

자공이 정사를 묻자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족신(足信)”이라고 했다. 민생과 군사력, 그리고 인민에 대한 신의를 강조한 강조한 것이다. 공자는 이 가운데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신의라고 가르쳤다(논어 안연편). ‘민무신불립’이라는 말이 이에서 유래했다. 정치인이나 고위관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스스로 이를 실천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멋으로 그러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이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찌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십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서경에 이르기를 ‘오직 효도하고 우애함이 곧 정치를 행함이라’하니 이 또한 위정(爲政)이요. 어찌 참정(參政)만을 위정이라 하리오”(논어 위정편).

효제(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는 공자가 가장 앞세운 실천덕목이다. 인민이 효제충서(孝悌忠恕)를 행하면 그것으로 나라가 안정되고 천하는 평화로워진다. 정치란 고관대작이 되어 국가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국민’을 입에 달고 다니는 정치인들, 그들은 정말 사사로운 욕심 없이 오직 국민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정신만으로 선거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국가 최고 공직인 대통령직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이 와중에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의 ‘말 바꾸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예사로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몇 마디 거들어야 하겠다.

우리 정부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기 시작했던 2003년, 아예 표결에 불참해 버렸다. 아무리 ‘대북 포용’을 기반으로 한 ‘평화번영정책’을 표방했다고 해도 북한 동포들의 인권문제를 외면한 것은 너무 매몰찬 처사였다. 우리정부는 내외의 비판에 아랑곳없이 그 다음해, 또 그 다음해에도 기권으로 이 문제를 피해갔다. 그러다가 06년엔 찬성표를 던졌는데 아마도 북한의 1차 핵실험 때문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리고 그 다음해, 다시 ‘기권’ 재주넘기를 했다.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신의 회고록 ‘방하는 움직인다’에서 문제제기를 했던 바로 그 때의 그 일이다. 그해 11월 21일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의견을 들어봤고, 그 결과에 따라 ‘기권’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 후보가 그런 분위기를 주도한 것처럼 기술했다.

이 책은 작년 7월에 발간되었는데 정치적 논란은 10월부터 일었다. 문 후보는 증거를 제시하며 단호히 부인하지는 않으면서 대신 페이스북에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다수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한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어 “노 대통령은 항상 내부에서 찬반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으며 시스템을 무시하고 사적인 채널에서 결정하는 일은 없었다”며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고 오히려 훈계까지 했다(2016. 10. 15).

그는 그 다음 날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새누리당을 공격했다.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적과 내통’ 운운한 데 대해 “내통이라면 새누리당이 전문 아닌가요? 선거만 다가오면 북풍과 색깔론에 매달릴 뿐 남북관계에 철학이 없는 사람들. 이제 좀 다른 정치합시다”라고 몰아세웠다. 또 그 다음날에는 기자들에게 “기억에 없다. 사실관계는 당시를 잘 기억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한동안 잊힌듯했던 이 논란이 대선 후보들의 토론회를 계기로 다시 불거졌다. 지난 13일 한국기자협회-SBS 공동 주최 토론회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한에 물어봤느냐고 몇 차례나 따졌지만 문 후보는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어 19일 KBS주관으로 열렸던 후보 토론회에서 문 후보는 좀 다른 발언을 했다. 유 후보가, 2월 9일 JTBC ‘썰전’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했던 문 후보의 말을 두고 “북한에 물어봤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문 후보는 “북한의 반응을 판단해 보도록 했다는 것”이라고 되받았다. 그는 “국정원 자체 정보망을 가동했다. 여러 해외 정보망, 휴민트, 국정원 정보망이 많다”라고 덧붙였다.

북한에 직접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표결 이전에 북한의 입장을 파악하려 했다는 것 자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일도 아닌 북한 동포들의 인권에 대한 유엔 차원의 결의안 채택 절차였다. 그런데 왜 북한 당국의 반응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문 후보의 일관되지 못한 답변과 대응이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도 기억해야 할 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는 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이른바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한 헌재 답변서를, 짧게는 3분, 길게는 41분 단위로 15장이나 되게 작성해 제출했으나 보완요구를 받았다. 반면에 문 후보는 당당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력 좋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만약 그렇게 대응했다면 특검과 헌재, 국회, 언론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문 후보의 대변인인 김경수 의원은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의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열리기 몇 시간 전에 관련 문건들을 내놨다. △2007년 11월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인권결의안 기권을 결정했다는 기록(김경수 당시 연설비서관 작성) △11월18일 청와대 서별관에서 개최된 외교안보 간담회 배석자(박선원 안보전략비서관)의 기록 △11월 18일 간담회에서 논의된 북한에 대한 통지문 주요 내용 등 3건이었다.

‘빙하는 움직인다’ 내용을 뒤집기 위해서였을 텐데, 그리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송 전 장관은 그날 회의에서 다른 참석자들 모두가 기권을 주장했다고 썼다. 그는 이날 밤 10시경 대통령관저로 편지를 보냈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8일 회의가 다시 열렸다. 그렇다면 대통령 자신이 앞서 내린 결정을 유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김 대변인이 공개한 이날 회의기록에는 송 장관이 “북한에 사전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라면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는 대목도 있다. ‘사전 양해’라면 그 때까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이미 16일에 ‘기권’으로 결정됐었다고 할 때 북한에 사전 통보를 할 까닭이 없었다. 북한의 칭찬을 기대할 것이 아니었다면…. 그런데 우리 정부는 표결 이틀 전인 19일 북한에 전통문을 보냈다. 이 통보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든지 간에 10.4 남북정상선언을 비롯한 남북 간 합의 사항을 적극 실천해나간다는 우리의 의지는 분명하며…”라고 한 대목이다.

문맥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때까지 ‘기권’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송 전 장관이 지난 21일 제시한 ‘북한 문건’은 바로 이 통보문에 대한 북측의 답신이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북측 대답 문건이 대통령에게 전달된 날짜가 2007년 11월 20일이었다는 송 전 장관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렇든 저렇든 문 후보 측이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이나 관련 주장을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고발’ 운운할 입장은 아닌 게 분명하다.

23일 저녁의 토론회에서 유 후보가 다시 문 후보에게 따지고 들었다. 문 후보는 자신의 대변인이 토론회에 앞서 관련 문건들을 제시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거듭했다. 유 후보가 그간 문 후보는 이 문제와 관련 공개적으로 네 번이나 말을 바꿨다면서 만약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후보직을 사퇴할 것이냐고 물었다.

가끔 ‘정계은퇴’ 카드를 내밀곤 했던 문 후보가 이 질문에는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대신 ‘송민순 회고록’을 공격했다. 그는 이 논란을 ‘제2의 NLL(북방한계선)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이 부분 이미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이 문제만 제기되면 아주 짜증스런, 아니면 위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상대방의 질문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 온 때문에 ‘말의 진실성’은 오히려 퇴색하는 인상을 준다.

그는 이런 질문이 ‘색깔론’이라고 반박했지만 이 경우는 색깔론이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후보의 안보 및 대북정책에 대한 기본인식의 검증이다. 곤란한 질문이나 비판만 나오면 ‘색깔론’으로 규정짓곤 했던 지금까지의 대응 방식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색깔론’ 공격에 대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역색깔론’이라며 맞섰다. 그렇다. 색깔론이 한심하다면 역 색깔론은 위험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일찍이 없었던 안보·군사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남북 당국이 서로 허물없이 온갖 논의를 할 만큼 관계가 돈독했었는지 모르겠지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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