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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이 선거 벽보에 내건 구호를 살펴보니...


입력 2017.04.17 07:47 수정 2017.10.16 09:58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과욕을 부리다간 전임들의 비극 전철 밟을 것

국민과 함께 다만 반걸음만 앞서 걷는게 민주대통령

19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17일 자정부터 개시됐다. 사진은 공식 선거 벽보. 왼쪽부터 기호1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기호 2번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기호 3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기호 4번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기호 5번 심상정 정의당 후보.ⓒ연합뉴스 19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17일 자정부터 개시됐다. 사진은 공식 선거 벽보. 왼쪽부터 기호1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기호 2번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기호 3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기호 4번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기호 5번 심상정 정의당 후보.ⓒ연합뉴스

모두 열다섯 명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만큼 많은 후보가 출마한 적은 없었다. 이전 최고 기록은 17대 대선 때의 12명이었다. 그러나 중도에 두 사람이 사퇴함으로써 열 명이 완주했다. 1960년 8월 12일에 치러진 4대 대선 때도 12명이 출마했다. 이때는 모두가 끝까지 겨뤘다. 그렇지만 그것은 4‧19로 개정된 헌법이 채택한 의원내각제 하의 국회 간선제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서도 중간에 사퇴하는 후보가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나저러나 ‘최다후보’ 기록 하나는 세워진 셈이다.

탄핵으로 자리를 내놔야 했던 박근혜 전직 대통령이 기소되는 날, 이들은 일제히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박 전 대통령이 밀려난 자리에 앉게 된다. 정상적인 정치일정이라면 올 12월 19일 대선이 치러지고 차기 대통령은 내년 2월 25일 취임하게 될 것이었다. 대선은 7개월 열흘, 취임은 9개월 보름 앞당겨지는 셈이다.

그 몇 개월을 기다려서는 절대로 안 될 만큼 급박한 상황이나 엄청난 변고가 벌어졌었다고는 지금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앞당긴다 해서 새로이 얻게 될 별도의 국익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폭군을 방벌한 것도 아니다. 임기 초부터 정치적 반대자들에 의해 ‘퇴진’ 압박을 받으며 중대한 고비마다 국회에 시달려온 약체 대통령의 등 떠밀린 강판(降板)이라는 느낌이 여전하다.

“법치를 부정(否定)하는 것이냐?”

그렇게 따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미 결정 난 것을 부정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게 있겠는가. 말하자면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사적인 ‘부정’일 뿐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투표소로 가서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할 것이니까 공적인 의미에서는 ‘부정’이라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말을 하느냐면, 한 사람이 쫓겨난 자리를 향해 열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제히 내닫는 광경이 너무 살벌해 보여서다. 전임자가 검찰에 의해 기소되는 날 이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돌진한다. 비워둬선 안 되는 자리인 만큼 서둘러 후임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써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헌재 탄핵심판 때 피청구인 대리인단의 일원이었던 서석구 변호사가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말인데 박 전 대통령은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시민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이렇게 말했다.

“이미 시간이 다 되어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죽기 위하여, 여러분은 살기 위하여. 그러나 우리들 중의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에로 가는지, 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릅니다.”(플라톤의 대화-소크라테스의 변명, 최명관 역)

그는 델로스 섬의 연례 축제 기간이 시작되었을 때 선고를 받았다. 이 때문에 사형집행이 한 달간 미뤄졌다. 마침내 축제기간은 끝났다. 친구 크리톤이 도피를 권했다. 당시에는 그런 예가 흔했다. 어렵지 않게 탈옥해서 다른 폴리스로 도망갈 수가 있었고, 애써 추포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도망가서는 안 될 이유를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한 뒤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믿게나, 크리톤. 만일 내가 죽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불의의 희생자로 떠나는 게 되지만, 도망친다면 내 스스로 법전에 대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를 단죄했던 판관들의 말을 확인시켜주는 셈이 된다네.”(소크라테스와 아테네, 드니 랭동 저, 윤정임 역)

박 전 대통령도, 검찰의 기소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된다면 오랜 기간의 감옥생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걸 자신이 모를 리 없다. 그렇지만 그는 헌재의 탄핵 결정,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어떤 공개적 항변도 하지 않았다. 재임 기간 중의 검찰 및 특검 수사에 대한 비협조적 태도를 들어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닐 것 같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를 받지 않을 특권을 가진다. 소추 대상이 아닌데 왜 수사를 받아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피의자로서의 방어권 행사라는 측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유무죄는 법원이 다루게 된다. 따라서 그걸 말하자는 게 아니라 그가 국법에 순응해 왔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탄핵 결정이 난 직후에 청와대를 떠나지 않고 이틀을 더 머무른 것 외에는 법과 제도가 시키는 일을 거부한 적이 없다. 검찰에서 오라면 갔고, 실질심사를 받으라면 받았으며, 구치소로 가라면 갔다.

앞으로 법정에서도 그가 자세를 흐트러뜨리거나 불평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날 이후의 대화상대는 역사가 아닐까. 그 외에는, 현실에서 그가 빠져나갈 길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 그가 피해갈 수 있는 곳은 역사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심경을 미루어 짐작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제 그가 단지 이틀 더 있었다는 것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그 청와대를 향한 23일간의 레이스가 막 펼쳐지기 시작했다. 열다섯 명의 후보 가운데 무소속은 단 한 사람이다. 현존하는 정당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이제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후보들 가운데는 낯선 이들도 있지만 낯익은 명망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장도에 보람과 건강과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그렇지만 마냥 축하를 보낼 기분은 들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들의 재임 기나 임기 후와 관련해서 좋은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희망에 넘쳐 장도에 오르지만 지켜보는 필부의 심정은 착잡하다. 저 청와대가 또 국민적 명망가, 남다른 능력자를 예기치 못한 덫에 가둬 버리지나 않을까 해서다.

각 후보의 슬로건이 주는 느낌도 썩 좋지는 않다.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 후보들이 선거 벽보에 내건 구호는 다음과 같다(기호 순).

문재인=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
홍준표=당당한 서민대통령,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
안철수=국민이 이긴다.
유승민=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보수의 새희망.
심상정=노동이 당당한 나라,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
조원진=대한민국을 확실히 살릴 대통령.

각 당마다 머리 좋은 참모들이 고심 끝에 만든 표어이겠지만 마음에 확 와 닿는 게 안 보인다. 굳이 흠을 잡을 일은 아니겠으나 유권자로서 평가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자면 이렇다.

‘나라를 나라답게’=우리가 아직도 나라답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인가.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나라다운 나라’와 흡사하다는 언론의 지적도 있었던 모양인데, 어쨌든 자기비하 자기경시는 정치리더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심리상태의 하나다.

‘당당한 서민대통령’=언제까지 서민 자랑을 할 것인가. 이른바 진보 정치인도 더 이상 가난을 내세우지 않는다. 흙수저 출신임을 자랑을 할 게 아니라 국민 모두를 금수저가 되게 하는 경국의 포부를 제시해야 하는 게 대선 후보의 도리일 것이다.

‘국민이 이긴다’=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인 듯한데 그건 민주 상식이다. 국민이 이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상황이 또 있어선 안 되지 않을까? ‘4차산업혁명의 기수(혹은 견인차)’처럼 쉽고 미래지향적인 표현을 찾을 일이었다.

‘보수의 새희망’=보수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 아니면 보수만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마한 인상을 준다. ‘보수’를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대통령은 전체 국민을 대표한다. 차라리 ‘진보를 아우르는 진짜 보수’라는 쪽이 더 호소력이 있을 듯하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진보정당 후보로서 내세울만한 슬로건이긴 하지만 상생의 느낌이 나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 기업이 떳떳한 나라’라 한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싫어할 까닭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대한민국을 확실히 살릴 대통령’=고색창연한데다 산문적이다. 임팩트가 없는 설명형의 구호는 호소력이 떨어진다. 또 대통령 한 사람이 나라를 살리고 말고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싫도록 확인했다.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인데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과욕을 부리지 말기를 바란다. 5년 동안 이룰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은 극히 적다. 그런데도 대통령직에 대한 과신과 환상에 추동되어 일 욕심을 내다보면 법과 제도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십상이다. 그 비극적 결과는 전임 대통령들이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자칫 독선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직은 국민의 투표 결과로 주어진다. 그런데 가끔은 ‘왕권신수설’에 입맛 다시는 대통령이 등장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대통령으로 타고난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하면 독선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독선의 대가는 국정의 실패다.

대통령은 대표적인 대중 정치인임을 잊어선 안 된다. 대중에 의해 뽑히고, 대중 속에서 대중을 위한 정치와 행정을 대중 앞에 펼쳐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직이다. 성층권에 올라갈 생각이나 시대를 앞서갈 생각 같은 것은 않는 게 좋다. 그건 철학자나 과학자들의 몫으로 넘겨줄 일이다. 국민과 함께, 국민과 소통하며, 다만 반걸음쯤 앞서서 걷는 것이 바람직한 민주 대통령의 모습일 것이다. 모든 후보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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